소리 없이 말하는 이별제2화
이 화는 약 1636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내 이름이 나오자 강지환의 웃음이 굳었다. 얼굴에서 순식간에 온기가 사라졌다.
"채원한테까지 들어가게는 하지 마."
친구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껄껄 웃었다.
딸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빠, 걱정하지 마. 엄마는 모를 거야. 귀가 안 들리잖아."
안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문밖에서 굳은 채 움직일 수 없었다.
얼마 뒤, 뒤에서 다가온 직원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세요?"
그 말에 별실 안이 뚝 조용해졌다.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특히 강지환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차서윤의 허리에 둘렀던 손을 황급히 떼더니 시선을 피했다.
왜 돌아왔느냐고 수어로 물으며, 차서윤은 그저 학교 후배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정작 자기 입가에 차서윤의 립스틱이 잔뜩 묻어 있다는 건 모르는 모양이었다. 차서윤의 손도 여전히 그의 허리를 꼭 감싸고 있었다.
나를 향한 차서윤의 눈빛에는 은근한 비웃음과 뻔뻔함이 배어 있었다.
떠날 마음을 굳혔는데도, 막상 눈앞에서 보니 숨이 막히도록 아팠다.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열쇠 주러 왔어. 재밌게 놀아."
열쇠를 탁자에 내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는 돌아보지 않았다.
거리는 오가는 차들로 붐볐다. 양옆으로 번쩍이는 불빛 속에서 나만 홀로 추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보이지 않았다. 귀에도 아무 소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문득 칠 년 전, 막 연애를 시작했을 때 함께 인적 드문 산으로 여행을 갔던 일이 떠올랐다.
우리는 길을 잃고 꼬박 하루 낮과 밤을 걸었다.
아무 소리도 없는 적막 속에서 내가 붙잡고 있던 건 강지환의 손뿐이었다.
그때 강지환은 두 손으로 말했다. 함께 죽는 것도 우리 사랑의 끝으로는 나쁘지 않겠다고.
늘 그랬다. 죽을 때까지 사랑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이제 사랑은 끝났고, 우리도 끝에 다다랐다.
집에 돌아오자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머릿속이 텅 빈 채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강지환을 처음 만난 건 채용 박람회였다.
첫눈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그날부터 누구나 알 만큼 강지환을 쫓아다녔다.
얼음처럼 차가운 사람이었다. 누가 마음을 고백해도 예외 없이 거절했다.
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매일 찾아가 먼저 말을 걸고, 밥을 사겠다고 졸랐다. 그렇게 삼 년을 끈질기게 다가갔다.
몇 번을 거절당해도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밤, 해고당한 직원이 술에 취해 회사 앞에서 강지환을 가로막았다.
사람들이 뿔뿔이 달아날 때 나는 강지환 앞으로 뛰어들었다.
그 직원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강지환과 나는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았고, 결국 의식까지 잃었다.
그 일로 나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게 됐다.
그제야 강지환도 내게 마음을 열었다.
피투성이인 나를 꼭 끌어안았다. 두려움에 떨며 꺼낸 말은 청혼이었다.
"양채원, 우리 결혼하자."
함께하게 된 뒤에도 내 사랑은 줄지 않았다. 강지환은 나보다 더 나를 사랑했다.
그런데 딸은 자라면서 귀가 안 들리는 나를 줄곧 싫어했다. 강지환은 딸에게 밤낮없이 수어를 가르쳤다. 나와 조금이라도 편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철컥,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에 회상에서 깨어났다.
옆으로 돌아누워 잠든 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곧 강지환의 두 손이 내 몸을 더듬었다. 뜨겁고 습한 숨이 목덜미에 닿았다.
욕정이 오른 것이다. 나는 그 신호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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