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말하는 이별제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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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이었다면 참지 못하고 받아 줬을 것이다.
지금은 속이 뒤집힐 만큼 역겨웠다.
일주일 전, 청력을 되찾고 집에 돌아왔다. 남편과 딸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침실 옆방에서 강지환의 격한 신음이 들렸다.
온몸이 얼어붙었다.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침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딸이 숙제를 봐 달라며 나를 가로막았다. 늘 나를 귀찮아하던 아이였다.
나를 밀어내며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서윤 엄마랑 좋은 시간 보내는데 방해하게 둘 순 없지."
그제야 알았다. 딸이 그토록 나 대신 다른 엄마를 원하고 있었다는 걸.
그들은 내가 여전히 듣지 못하니 완벽하게 속였다고 믿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그날 나는 외딴 산골 마을의 교육 봉사에 지원하고 비행기 표를 샀다.
한때 우리가 약속했던 대로, 그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질 생각이었다.
남편도 딸도 더는 필요 없었다.
옆방에서 들었던 두 사람의 격한 소리가 순간 귓가를 메웠다.
벌떡 일어나 강지환을 밀쳤다. 비명과 함께 쿵, 바닥에 떨어졌다.
멈칫했다. 반사적으로 일으켜 주려다가, 끝내 손을 뻗지 않았다.
강지환은 화를 내기는커녕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다.
"채원아, 왜 그래?"
대답하려던 순간 떠올랐다. 그의 눈에 나는 아직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강지환도 뒤늦게 깨달았는지 수어를 쓰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몸이 좀 안 좋아서."
뭔가 떠오른 듯 강지환의 얼굴이 다급해졌다. 내 앞으로 달려와 수어로 정신없이 해명했다.
"채원아, 차서윤은 정말 그냥 학교 후배야. 오해하지 마."
늘 침착하던 사람이 오늘은 차서윤 때문에 몇 번이나 평정을 잃었다.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무심히 말했다.
"피곤해. 오늘은 그만 자자."
그러고는 옆으로 돌아누웠다. 강지환은 잠시 굳어 있더니 한참 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채원아, 사랑해. 정말 많이 사랑해."
"절대 날 떠나지 마. 그러면 나 죽어."
눈가에서 눈물이 자꾸만 흘러내렸다.
'사랑한다면서, 왜 날 배신했어?'
우리는 평생 떨어지지 않기로 약속했다.
단 한 번이라도 배신하면, 영원히 서로의 삶에서 사라지기로도 했다.
아름답던 추억은 잔혹한 현실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강지환이 딸과 함께 바람을 쐬러 가자고 했다. 내가 달라진 걸 느꼈는지, 아니면 죄책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 전부터 놀이공원 가고 싶었잖아. 시간이 안 났을 뿐이지."
"채원아, 나랑 딸이랑 같이 가 주면 안 돼?"
두 손을 비비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든 내 대답을 끌어내려는 듯했다.
딸도 드물게 짜증을 내지 않았다. 놀이공원에 갈 생각에 눈을 반짝일 뿐이었다.
하지만 강지환은 몰랐다. 제대로 여미지 않은 옷깃 사이로 드러난 목덜미에 차서윤의 흔적이 가득하다는 걸.
그 모습에 역겨움만 치밀었다.
딸은 재빨랐다.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제멋대로 나갈 짐을 챙겼다.
놀이공원에 도착한 뒤로 딸은 줄곧 내 손을 잡았다. 강지환도 쉴 새 없이 우리를 챙겼다.
내가 입술만 살짝 오므려도 물을 입가에 대 주고, 무언가에 눈길을 조금만 더 줘도 사 주겠다고 했다.
예전부터 내가 좋아했지만 둘은 무서워 타지 못하던 놀이기구까지 함께 타 주었다.
강지환은 온몸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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