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말하는 이별제1화
이 화는 약 1693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모임 자리에서 딸이 일부러 남편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아빠, 서윤 이모 배 속에 아빠 아기가 있잖아. 이제 우리는 이모랑 같이 사는 거야?"
남편은 잘라 놓은 스테이크를 내 앞에 놓으며 나직이 대답했다.
"아빠랑 엄마는 약속했어. 누가 먼저 배신하면 영원히 서로의 삶에서 사라지기로. 아빠는 엄마를 잃을 자신이 없어. 그래서 들키지 않게 잘 숨기고 있잖아."
"아기가 태어나도 엄마 앞에 그 둘이 나타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그러고는 내게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수어로 말했다.
내 눈시울이 붉어진 건 보지도 못한 채.
남편은 몰랐다. 일주일 전에 내 청력이 돌아왔다는 것도, 그가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진작 알아챘다는 것도.
내가 멀리 떨어진 산골 마을로 교육 봉사를 떠나려고 몰래 비행기 표를 샀다는 건 더더욱 몰랐다.
이제 일주일 뒤 승인서가 나오기만 하면, 나는 그들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 * *
눈앞의 스테이크를 밀어냈다. 더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이들에게 맞춰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일어서자 강지환도 서둘러 몸을 일으켜 무슨 일이냐고 수어로 물었다.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말했다.
"시간이 늦었네. 난 집에 가서 쉴게."
강지환이 따라나서려 하자 친구들이 붙잡았다.
"몸도 안 좋다는데 푹 쉬게 해 줘. 너까지 벌써 가려고?"
"그러게. 서윤이 곧 온다잖아. 하루 못 봤는데 보고 싶지도 않아?"
딸도 강지환의 소매를 당겼다.
"아빠, 나 서윤 이모 보고 싶어. 엄마 따라 안 가면 안 돼?"
강지환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내 표정이 달라지지 않은 걸 보고서야 미간을 찌푸렸다.
"채원 앞에서 서윤 얘기 하지 마."
"왜? 엄마는 안 들리잖아."
딸의 말을 듣고 나는 강지환을 다시 의자에 앉혔다.
"혼자 가도 돼. 너희는 더 있다 와."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붙잡을 틈조차 주지 않았다.
문밖으로 나와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차서윤이 빠른 걸음으로 홀에 들어오는 게 보였다.
일부러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몸이 휘청했다.
별실로 들어간 차서윤은 두 팔을 내미는 딸을 익숙하게 안아 올렸다.
"채아야, 하루 못 봤는데 이모 보고 싶었어?"
"그럼요!"
차서윤이 작게 웃었다.
"그럼 상 줘야지."
딸은 곧장 차서윤의 얼굴을 감싸고 뽀뽀했다.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누가 보면 저 둘이 친모녀인 줄 알겠다.'
딸을 내려놓은 차서윤이 이번에는 강지환을 끌어안고 눈웃음을 쳤다.
강지환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내게는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표정이었다.
입을 열기도 전에 차서윤이 발뒤꿈치를 들고 입을 맞췄다. 뜨겁고 깊은 입맞춤이었다.
"야, 됐다. 벌써 몇 달째면서 아직도 그렇게 좋아?"
친구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딸도 익숙하다는 듯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싸늘하게 식었다.
'두 사람이 진작부터 그런 사이였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구나. 나만 몰랐던 거구나.'
놀리는 소리에 차서윤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이번에는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잔 게 언제냐며 저마다 짓궂게 캐물었다.
강지환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반대로 차서윤은 신이 난 얼굴이었다.
"그저께. 집 안방 바로 옆에서."
차서윤과 동시에 나도 그 말을 중얼거렸다. 별실 안에서는 들뜬 웃음과 고함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지환아. 이제야 좀 즐길 줄 아네."
"우리 정도 되는 사람들이 뭐 하러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살아?"
"안 들키면 평생 즐길 수 있어. 양채원은 귀도 안 들리는데 뭘 알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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