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독립제2화
이 화는 약 2031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한소원은 바닥에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전에 없던 피로감이 온몸을 집어삼키는 듯한 느낌에 눈을 감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밤새도록 멍하니 침대 옆에 앉아 도대체 언제부터,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생긴 것인지 되짚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배민혁의 대시로 시작되었다.
한소원에게 첫눈에 반한 배민혁은 오직 한소원에게만 일편단심이었다.
학교 다닐 때 일부러 선생님께 찾아가 한소원 옆자리로 바꿔 달라고 할 때도 많았고 점심과 저녁 식사 시간 때면 항상 한소원 곁에 붙어 다니며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한소원이 친구와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줬을 뿐만 아니라 계속 같은 반이 되기 위해 자신이 잘하는 과목을 포기하고 한소원이 듣는 수업을 따라서 신청했다.
처음에 한소원은 배민혁의 고백을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들이 있는 도시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떨어진 물건에 발목이 삔 한소원은 걸을 수 없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운동장에 도착한 배민혁은 한소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선생님의 만류도 무시한 채 미친 듯이 교실로 다시 뛰어가 그녀를 업고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갈 때 여진으로 낡은 벽화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위험 속에서도 배민혁은 주저하지 않고 한소원을 품에 안아 보호했다. 반면 배민혁은 머리가 벽화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다.
병원으로 이송된 후 배민혁은 이가 떨릴 정도로 아팠지만 한소원을 달래는 데만 집중했다. 구해준 것에 보답하고 싶으면 사귀어 달라고 고백했다.
그 모습에 한소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한소원의 반응에 한참을 멍하니 있던 배민혁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상처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팔에 꽂혀 있던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웃다가 울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평생 잘해주겠다고, 영원히 그녀를 아끼며 사랑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 합격했다. 드라마 같은 사랑은 수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한소원은 고아라는 신분 때문에 늘 자격지심을 갖고 있었다. 배민혁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대학교 3학년 때 성대한 프러포즈를 준비하여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4년 동안 연애했다. 졸업하던 그해, 배민혁은 가족의 엄청난 압박과 외부의 안 좋은 유언비어들을 무시한 채 한소원에게 세기의 결혼식을 선물했다. 한소원을 모두가 꺼리는 고아에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배씨 가문의 행복한 안주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결혼한 지 7년, 한진우는 올해 7살이 되었다. 모든 것이 꿈처럼 행복하기만 했다.
그런데 반년 전부터 배민혁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밤새 돌아오지 않았고 출장도 잦았으며 한소원을 대하는 태도도 점점 더 형식적으로 변했다.
심지어 한소원이 한 번씩 적극적으로 다가가도 배민혁은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았다.
배민혁이 집에 잘 오지 않자 한진우도 불만이 점점 커졌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한 게 한소원 탓이라고 불평했으며 엄마가 아빠를 제대로 붙잡지 못해 자신이 아빠의 사랑을 잃었다면서 원망을 늘어놓기도 했다.
한소원은 남편이 회사 일 때문에 너무 바빠 자리를 비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조금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여겼지만 반년 후 장장 70분에 달하는 영상 하나를 받게 되었다.
배민혁은 한소원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바람을 피웠다. 지난 3년 동안 찍은 700여 개의 사진들과 영상들, 그 속에는 나체 상태의 배민혁과 김지연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목을 감싸 안은 채 뒤엉켰다. 한소원이 스스로를 의심하며 자기 탓이라고 여길 때, 그들은 밤낮 가릴 것 없이 늘 함께 있었다.
똑똑.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한소원은 하던 생각을 멈췄다. 눈물에 시야가 흐려진 것도 미처 몰랐다. 울렁거리는 속을 겨우 진정시킨 뒤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터벅터벅 걸어 문을 열었다.
문밖에 이유연이 서 있었다.
이유연은 한 번만 더 참으라고 한소원을 말리지도 않았고, 꼬치꼬치 캐묻지도 않았다. 대신 작성해 온 이혼 협의서를 건넸다.
한소원은 협의서를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몇 장 넘기다가 서명란에 거침없이 자신의 이름을 썼다.
서명하는 손놀림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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