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독립제3화
이 화는 약 2469자. 본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3화 미리 읽기 중 마지막 화입니다. 이어지는 제4화부터는 공식 앱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배민혁은 그날 집에서 나간 후, 며칠 동안 회사에 머물렀다.
매일 밤 열 시가 되면 한소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내용은 고작 몇 글자뿐이었다.
[요즘 좀 바빠.]
[진우 잘 챙겨, 네 몸도.]
한소원은 예전처럼 일일이 캐묻지 않았다. 잔소리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요즘 뭘 하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배민혁이 돌아오지 않으면 한소원은 더욱 일에 집중했다.
며칠 후 한진우의 생일이 되었다. 예년 같으면 이맘때쯤 세 가족이 모여 한소원이 직접 만든 케이크를 먹으며 심플하면서도 화기애애하게 한진우가 한 살 더 먹은 것을 축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생일은 예전과 달랐다. 한소원과 한진우는 밤 열 시까지 배민혁을 기다렸지만 배민혁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한진우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한소원을 바라보며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전화 한 번 더 해 봐, 케이크 크림이 다 녹겠어.”
한소원은 오늘 밤만 배민혁에게 벌써 다섯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들의 재촉에 다시 전화를 집어 들었다.
통화연결음이 한참 울린 후에야 전화가 연결되었다. 한소원이 묻기도 전에 배민혁이 먼저 한마디 했다.
“소원아, 오늘 밤에는 못 갈 것 같아. 너는... 음...”
“진우랑 생일 잘 보내. 돌아가면 제대로 보상해 줄게. 일단은 이만... 나 기다리지 마...”
배민혁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큼 무거웠다. 말을 마치자마자 한소원에게 말할 시간을 단 1초도 주지 않고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기자 한진우가 한소원 앞으로 다가왔다.
“아빠 언제 온대?”
“오늘 못 온대.”
한소원의 대답에 한진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난폭한 표정을 짓더니 한소원이 선물한 선물을 내리치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다 필요 없어! 재수 없어! 엄마가 아빠를 제대로 붙잡지 못하니까, 아빠가 집에 안 오는 거잖아!”
“엄마도 부모 사랑 못 받았잖아. 집도 없이 고아로 컸잖아. 그런데 왜 나까지 아빠 사랑 못 받게 하는 거야? 엄마랑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그러는 거야? 정말 지겨워!”
어린아이의 목소리는 마치 악마의 포효처럼 한소원의 고막을 찌르며 뇌리를 강타했다. 귓가에 윙윙거리는 이명이 울려 퍼지며 가슴이 오랫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경악한 표정으로 한진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진우는 자신이 한 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계속해서 공격적인 말을 쏟아냈다.
“엄마는 왜 그렇게 못난 거야? 그니까 한소원이란 사람이 왜 내 엄마냐고!”
“다른 애들 엄마는 변호사이고 의사인데, 엄마는? 엄마는 할 줄 아는 게 뭐야? 매일 그 가난하고 더러운 애들만 돌보고 다니잖아! 다른 애들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있는데 나는 엄마 때문에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없잖아!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겠어!”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채 말을 하는 한진우는 전혀 일곱 살짜리 아이로 보이지 않았다. 녀석은 코웃음을 치더니 화가 난 얼굴로 선물을 내리치고는 발을 동동 구르며 방으로 뛰어갔다.
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일 분이 지나기도 전에 혼자 화를 삼키기 힘들었는지 잔뜩 성난 표정으로 다시 뛰어나와 한소원 앞에 종이 한 장을 내던졌다.
“엄마랑 모자 인연 끊을 거야! 당신 같은 못난이 엄마를 내 엄마로 인정할 수 없어!”
한마디 외치고는 한소원이 만든 케이크를 힘껏 뒤엎은 후 몸을 돌려 방으로 달려갔다.
한소원은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멍한 눈빛으로 내던져진 종이 위의 글자를 확인한 순간 눈에 비통함이 스쳤다.
[가족관계해체사유서.]
[나 한진우는 한소원과의 모자 관계를 평생 단절합니다.]
뒤틀리고 흩어진 글씨 아래에는 빨갛게 피가 맺힌 듯한 지장이 찍혀 있었다.
한소원은 아이가 이런 글을 썼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아 오랫동안 멍하니 서서 종이만 응시했다. 가슴은 마치 차바퀴에 수없이 짓밟힌 듯 저릿저릿했다.
이내 방 안에서 어렴풋이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지연 이모, 아빠랑 언제 결혼할 거야? 나 이모 결혼식 때 꽃을 뿌리는 화동 해 줄게.”
“엄마가 너무 쓸모없어서 아빠가 집에 안 오는 거잖아. 이모가 내 엄마면 아빠도 분명 제때 집에 올 거야. 이모가 내 엄마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꿈에서조차 이모가 우리 엄마인 꿈을 꾼다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소원은 몸에 흐르는 피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한진우에게 정말로 혐오스러운 모양이었다.
한진우는 엄마의 신분이 창피하다고 생각했다. 한소원이 자신의 체면을 깎아 먹으며 엄마 때문에 아빠가 자기를 보러 오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래서 한소원에게는 끊임없이 저주만 퍼부었지만 김지연에게는 말끝마다 이모라고 부르며 상냥하게 대했다.
한소원은 입꼬리를 올렸지만 미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흉해 보였다.
넋이 나간 듯 발걸음을 옮겨 방으로 돌아간 뒤 한진우가 내던진 가족관계해체사유서를 꺼내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그러고는 잘 접어서 선물 봉투에 넣었다.
그러고는 생일 선물과 함께 한진우가 받은 선물 더미 속에 집어넣었다.
이 선물을 한진우가 보게 된다면 분명 매우 좋아하고 기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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