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뒤에 남겨진 나, 아빠의 조각이 되다제2화
이 화는 약 2051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둥그랬던 달은 이내 기울어졌다.
엄마는 문득 나를 떠올린 듯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하더니 입가를 비틀며 중얼거렸다.
“명절인데도 집에 오질 않네. 밖에서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야?”
언니는 소파에 누워 기분 좋은 얼굴로 대답했다.
“엄마, 이서아가 그랬어요. 명절엔 집에 못 온다고. 아마 남자친구랑 보내려고 그런 걸 거예요.”
‘무슨 소리야? 내가 어디서 남자친구를 만들었다고 그래?’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언니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그 말을 듣자 눈빛이 싸늘하게 변하며 쏘아붙였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이렇게 오래 안 오는 건 분명 뒤가 구린 일이 있기 때문이지.”
“대학 들어가자마자 남자 만나고 다닌다고? 그렇게 남자가 필요하면 차라리 술집에 가서 몸이나 팔아. 그러면 큰돈이나 벌어서 집에 갖다 줄 거 아니야.”
“학교에서 만나봤자 뭐가 좋아? 결국 공짜로 몸이나 줬겠지.”
엄마는 한동안 쉼 없이 날 비난했다.
“애초에, 이 불구자를 살리겠다고 애쓰지 않았으면 내가 이렇게 됐겠어? 내가 의대 석사인데 약국에서 벌이도 안 되는 일이나 하고 남들 눈치나 보고 살아야 했냐고.”
도대체 엄마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입에 담기도 힘든 말들을 쏟아낼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언니가 인형을 나무 위에 올려놨다며 내가 대신 찾아달라고 했던 날이었다. 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오른손을 다치게 된 것이었는데, 엄마는 내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는 날 노려보며 손바닥으로 뺨을 세게 때렸다.
“이 못된 년, 네 잘못을 왜 언니한테 덮어씌워? 네 언니가 얼마나 착한데 그런 짓을 하겠어? 네가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그러고는 다친 오른손을 힘겹게 비틀며 이를 악물었다.
“네가 날 이 모양으로 만들 줄 알았으면 네가 태어나기 전에 그냥 없애버렸어야 했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미 죽었는데도 이런 기억은 가슴을 아리게 했다.
언니는 엄마를 안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화내지 마세요. 서아 때문에 신경 쓰실 필요 없잖아요. 엄마에겐 제가 있잖아요!”
언니의 목소리에는 달콤함이 묻어났다. 늘 이렇게 상황에 따라 얼굴을 바꿔가며 두 가지 모습을 자유자재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언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그래, 내 딸 승아가 최고야. 서아는 마음대로 살다가 사고나 치고 인생 망치는 거나 봐야지. 나중에 어디까지 망가지는지 한 번 두고 보자고.”
나는 눈을 감았다.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날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왜 같은 자식인데, 엄마 아빠 눈에는 언니만 보일까?’
억울하고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자신을 억지로 그녀들 사이에 끼워 넣고, 엄마의 허리를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
평생 하고 싶었지만 한 번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아무런 온기도 느낄 수 없었다.
추석에 잠시 나를 떠올리더니 다시금 날 기억의 쓰레기통에 버린 그들. 그런 시간이 지나고, 아빠가 기쁜 얼굴로 문을 열며 들어왔다.
아빠는 손에 초대장을 들고 있었고, 너무 급했는지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다. 그가 이렇게 들떠 있는 모습을 본 것은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지역 대회 미술 경연에서 1등을 했고, 아빠는 우수 학생의 학부모 대표로 무대에 섰었다. 그때는 엄마가 날 좋아하지 않아도, 아빠만큼은 나를 감싸줬었다.
아빠는 초대장을 테이블 위에 올리며 말했다.
“승아야, 결승 결과 나왔어! 네가 금상을 받았단다. 이번 주에 직접 가서 시상식에 참석해야 한대!”
언니는 흥분해 방 안을 몇 바퀴나 돌았다. 엄마는 언니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우리 딸 너무 대단하다. 엄마가 너 정말 자랑스럽구나.”
엄마는 언니의 이마에 뽀뽀하고 웃었다.
한쪽 구석에는 내 뼈와 살로 만들어진 조각상이 외로이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속이 뒤집혔고, 내 안에서 무언가가 외치는 듯했다.
그 말라버린 뼈들이, 나를 원망하며 도와달라고 하는 듯했다. 나는 힘겹게 조각상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보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무기력과 절망감만이 날 휘감았다.
그 순간, 아빠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듯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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