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결합은 잘못된 선택이었다제2화
이 화는 약 3620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이수연과 고윤재가 서로를 알고 지낸 지는 어느덧 30년 가까이 됐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집안끼리 왕래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학창 시절에는 같은 학교 선후배로 지냈다.
어린 시절의 고윤재는 밥을 먹기 싫다고 떼쓰는 이수연을 달래 가며 한 숟갈씩 떠먹여 주던 다정한 옆집 오빠였다.
학교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학생 때는 이수연을 괴롭히던 아이들을 혼내줬고 대학생이 된 뒤에는 캠퍼스 반대편까지 찾아와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는 이수연의 피팅 모델을 자처하기도 했다.
고윤재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이수연을 아끼고 챙겼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한 두 사람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양가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혼사라며 기뻐했다.
이수연 역시 의심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아껴 준 고윤재와 함께라면 결혼 생활도 별다른 굴곡 없이 행복할 거라고 믿었다.
적어도 그 교통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교통사고 당시, 이수연은 고윤재를 보호하려다 크게 다쳤고 그 후유증으로 임신하기 어려운 몸이 됐다.
고윤재는 자신 때문에 이수연이 그렇게 됐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한동안 술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고윤재는 우연히 이수연의 대학 동기였던 정지안을 다시 만났다.
당시 정지안은 가진 돈 한 푼 없이 술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고 밝은 모습을 잃지 않았다.
정지안은 고윤재의 고민을 들어 주며 곁에서 위로해 줬다.
그렇게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졌다.
처음에 고윤재가 정지안에게 품었던 건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가끔 작은 선물을 건네고,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아파트를 구해 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어느새 보이지 않는 그 선을 넘고야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수연은 고씨 가문의 별장에서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채 함께 있는 고윤재와 정지안을 목격했다.
순간 이수연은 눈이 뒤집혔다. 정지안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움켜쥐었고, 두 사람은 한바탕 몸싸움을 벌였다.
정지안은 겁에 질린 얼굴로 황급히 고윤재의 뒤에 몸을 숨겼다.
“수연아, 오해야. 난 잠깐 별장에 머물게 된 것뿐이야. 선배가 새 일자리를 알아봐 줬는데,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보려고 찾아온 거야.”
이수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뭘 물어보려고 옷까지 벗은 건데?”
당시 혈기 왕성했던 고윤재는 이수연이 지나치게 몰아붙인다고 생각했다.
감정이 격해진 두 사람은 크게 다퉜고, 결국 화를 참지 못한 고윤재는 홧김에 이혼 관련 서류에 서명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다.
하지만 이수연이 떠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먼저 견디지 못한 건 고윤재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수연을 향한 그리움은 오히려 짙어졌고, 결국 고윤재는 미친 듯이 이수연을 찾아다니며 다시 돌아와 달라고 매달렸다.
정지안과는 완전히 끝냈다고 했고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어떤 관계도 맺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이수연은 별생각 없이 말했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면 모를까. 아니면 절대 용서 안 해.”
그런데 고윤재는 정말로 이수연에게 별을 선물했다.
당시 일곱 천체가 한 줄로 늘어서는 보기 드문 천문 현상이 나타나자, 고윤재는 그 일곱 별의 명명권을 사들여 ‘수연 별자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고윤재는 영원을 상징하는 우주처럼 두 사람의 사랑도 영원히 이어질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혼인신고를 했다. 그날 고윤재는 아이처럼 기뻐하며 이수연을 번쩍 들어 올렸다.
반면 이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혼인관계증명서에 나란히 적힌 두 사람의 이름을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이수연이 고윤재에게 돌아간 건 오랜 세월 이어진 관계를 완전히 놓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고씨 가문의 배경과 고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지위는 이수연이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 나가는 데 분명 도움이 됐다.
하지만 재결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지안이 다시 나타났다.
정지안은 아랫배를 감싸안은 채 이수연에게 애원했다.
“수연아, 나 선배 아이를 가졌어. 제발 아이만은 낳게 해 주면 안 될까...”
고윤재에게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차마 이수연과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어렵게 입을 열었다.
“수연아, 나 정말 지안이랑 끝냈어. 이 아이는 아마 그전에 생긴 것 같아...”
잠시 머뭇거리던 고윤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고씨 가문도 대를 이어야 하잖아. 우리 가문을 이어받을 아이가 없을 수는 없으니까...”
이수연은 말없이 고윤재를 바라봤다.
평생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남자가 그 순간만큼은 한없이 낯설고 우스워 보였다.
“내가 안 된다고 하면?”
고윤재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끝내 대답하는 대신 몸을 돌려 정지안을 부축해 데리고 나갔다.
그날 밤, 이수연은 눈에 보이는 물건을 모조리 깨부쉈다.
이수연은 자신이 비참하게 무너진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씨 가문 저택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있는 객실로 숨어들어 목 놓아 울었다. 그렇게 하면 아무도 듣지 못할 거로 생각했다.
고윤재가 집으로 돌아온 건 날이 밝고 나서였다.
고윤재가 이수연을 발견했을 때, 두 손은 깨진 물건에 베여 피투성이였고 다리에도 핏자국이 가득했다.
“수연아!”
고윤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다급히 이수연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이수연은 고윤재를 피해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차갑게 굳은 눈으로 고윤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랑 정지안, 둘 중 하나만 선택해.”
고윤재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지안이가 아이를 지우기로 했어. 이제 정말 지안이랑 완전히 끝이야.”
그 말을 들은 뒤에야 이수연은 더 이상 울지도, 따져 묻지도 않았다.
‘그래도 오빠가 선택한 사람은 나니까.’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더 망가져만 갔다.
정지안이 유산 후 몸조리를 하는 동안 고윤재는 보양식과 선물을 하루가 멀다고 보냈다. 그 뒤로도 마치 보상이라도 하듯 해마다 정지안의 생일을 챙겼다.
이를 용납할 수 없었던 이수연은 화를 냈고 수도 없이 고윤재와 싸웠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고윤재의 행동은 평범한 동문 선후배 사이에서 허용될 선을 이미 한참 넘어섰으니까.
하지만 그럴 때마다 고윤재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다 했잖아. 난 내 아이까지 포기했어! 나랑 지안이는 정말 완전히 끝났다고!”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이수연을 몰아세우기도 했다.
“그래도 지안이는 내 아이를 가졌던 사람이야. 기본적인 걱정조차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러고는 마지막에 꼭 한마디를 덧붙였다.
“수연아, 너 원래 이렇게까지 모질고 독한 사람 아니었잖아.”
‘내가 모질고 독하다고? 바람난 남편을 의심하고, 결혼 생활에 끼어든 남편의 내연녀를 용납하지 못한 게 모질고 독하다는 말까지 들어야 할 일이야?’
이수연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같은 문제로 몇 번이고 다투기를 반복하면서 이수연도 점점 지쳐 갔다.
그래도 더 나빠질 일은 없을 거로 생각했다. 적어도 동문 모임에서 정지안이 술김에 모든 진실을 털어놓기 전까지는.
그날 정지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두 사람이 오랫동안 감춰 왔던 마지막 진실까지 모조리 드러냈다.
고윤재와 정지안의 관계는 단 한 번도 끝난 적이 없었다.
고윤재가 이수연에게 숨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심지어 두 사람은 그때 지웠다고 했던 아이까지 몰래 낳아 키우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수연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기대마저 완전히 무너졌다.
이수연은 더 이상 고윤재를 위해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기로 했다.
세로쓰기 표시 중: 본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스크롤합니다(← → 키로도 이동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