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결합은 잘못된 선택이었다제3화
이 화는 약 3720자. 본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3화 미리 읽기 중 마지막 화입니다. 이어지는 제4화부터는 공식 앱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수연은 작업실을 나서기 전 이혼 관련 서류를 출력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예상대로 고윤재는 정지안을 만나러 간 모양이었다. 넓은 집 안은 썰렁할 만큼 조용했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고윤재가 경매에서 낙찰받았다는 삼신할머니를 본떠 만든 옥패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집사 차주원이 웃으며 이수연을 맞았다.
“대표님께서 참 마음을 많이 쓰셨네요. 사모님께서 아이를 기다리시는 걸 아시고, 이렇게 뜻깊은 물건을 선물하셨나 봅니다. 어디에 두고 싶으세요?”
예전 같았으면 이수연도 기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고윤재에게는 이미 정지안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있었으니까.
‘나한테는 아이를 갖자면서 이런 것까지 선물하고, 가증스럽게 뒤에서는 다른 여자와 낳은 아이를 몰래 키우고 있었다니... 대체 언제까지 속일 생각일까.’
아이를 점지해 달라는 의미가 담긴 옥패를 보고 있자니 기가 막혀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때 이수연은 무심코 휴대폰을 확인했다.
공교롭게도 SNS 피드 가장 위에 정지안이 올린 게시물이 떠 있었다. 고윤재와 함께 찍은 생일 기념사진이었다.
성공한 사업가가 된 뒤로는 늘 점잖은 모습을 유지하며 좀처럼 흐트러지는 법이 없던 고윤재가 정지안의 카메라 앞에서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두 사람의 품에는 아이가 안겨 있었다.
누가 봐도 어린 시절의 고윤재를 빼닮은 얼굴이었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누구의 아이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사진 속 생일 케이크도 평범하지 않았다.
고씨 가문 계열사에서 운영하는 디저트 브랜드에서 특별히 제작한 케이크였다.
동문 모임에서 정지안이 자신은 ‘고씨 가문 사모님’이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으며 살고 있다고 했던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
게시물 아래에는 후배로 보이는 동문 한 명이 축하 댓글까지 남겨 놓았다.
[고 대표님이랑 사모님 정말 사이가 좋으시네요. 세 식구 너무 행복해 보여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댓글은 황급히 삭제됐다.
아마 사진 속 여자가 고윤재의 진짜 아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이수연은 그 모든 과정을 말없이 지켜봤다.
어느새 손에 들고 있던 이혼 관련 서류가 잔뜩 구겨져 있었다.
결혼한 뒤, 이수연도 두 사람의 일상을 기록하는 걸 좋아했다.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이면 고윤재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고,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을 축복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고윤재는 사업가로서 자신의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함께 찍은 사진을 더는 올리지 못하게 했다.
이수연은 그 말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그저 고윤재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정지안과 찍은 사진은 괜찮았던 모양이었다.
아내인 이수연과 찍은 일상 사진은 세상에 보여 주기 싫다던 남자가 정지안과 아이를 품에 안고 찍은 사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했다.
이수연은 한동안 휴대전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잠시 후, 정지안이 댓글에 일일이 답하는 대신 짧은 글 하나를 남겼다.
[다들 축하해 줘서 고마워요. 댓글은 전부 잘 봤어요. 시간이 늦어서 저희는 이제 먼저 자러 갈게요.]
‘저희?’
이수연의 시선이 그 두 글자에 오래 머물렀다.
이내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윤재가 부탁했던 꿀물을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오늘 밤 고윤재는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다음 날 아침.
새벽이 다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던 이수연은 고윤재 때문에 잠에서 깼다.
고윤재는 단단히 화가 난 얼굴이었다. 이수연의 팔을 움켜쥔 손에도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이수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수연, 우리 아이 사진이랑 신상 정보, 네가 퍼뜨린 거야? 나한테 적이 얼마나 많은지 알잖아. 이런 식으로 아이 신상이 알려지면 납치당할 수도 있어.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고!”
고윤재가 몰아붙였다.
“나한테 화가 났으면 나한테 따져. 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까지 끌어들여!”
잠에서 제대로 깨지도 못한 이수연은 영문을 몰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고윤재는 침대 옆에 놓인 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수연이 지난밤 마시다 남은 찬물을 그녀의 얼굴에 끼얹었다. 차가운 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잠옷까지 흠뻑 적셨다.
이수연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제야 흐릿했던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
“나 아니야.”
이수연은 어이가 없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고윤재는 동문 모임에서 정지안이 했던 말은 전부 사실이 아니라고 잡아뗐으니까.
‘나도 어젯밤 SNS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서야 처음으로 아이의 얼굴을 봤는데, 내가 대체 무슨 수로 사진과 신상 정보를 퍼뜨려?’
하지만 고윤재는 이미 이수연의 짓이라고 단정한 듯 따져 물었다.
“지안이가 그랬어. 우리 아이한테 악의를 품고 일부러 보복할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다른 사람이 대체 왜 그런 짓을 하겠어?”
이수연은 물끄러미 고윤재를 바라봤다.
고윤재는 원래 냉정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라면 섣불리 입을 열어 약점을 남기는 법도 없었다.
그런 사람이 정지안과 아이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앞뒤 가리지 못하고 제 입으로 아이의 존재를 인정해 버렸다.
이수연은 고윤재의 손을 뿌리쳤다.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 사진 속 아이가 당신 아이인 건 인정하는 거네?”
고윤재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듯했다.
잠시 침묵하던 고윤재는 결국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
“지안이가 유산하러 갔던 날 의사를 매수했어. 나한테도 계속 숨겼고. 내가 알았을 때는 이미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늦은 뒤였어.”
잠시 말을 멈췄던 고윤재가 이내 덧붙였다.
“수연아, 이제 그 아이를 보안도 제대로 안 되는 곳에서 계속 살게 둘 수는 없어. 내가 데려올게.”
이어진 말은 더욱 기가 막혔다.
“그냥 네 아이라고 생각하고 네가 키워. 앞으로는 우리 아이인 거야. 너도 이제 병원 다니면서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순간 이수연의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동안 견뎌 온 시험관 시술이 떠올랐다. 아이를 갖게 해 달라며 좋다는 곳은 어디든 찾아다니고,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던 시간도 떠올랐다.
그 모든 고통을 견딘 건 단 하나 때문이었다.
고윤재의 아이를 갖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고윤재는 다른 여자와 낳은 아이를 데려다 키우면 되지 않느냐는 말 한마디로 이수연이 견뎌 온 모든 시간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어떻게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어차피 며칠 뒤면 떠날 거니까.
이제 와 고윤재에게 무엇이 잘못됐는지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이수연은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 낸 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좋아. 대신 나도 원하는 게 있어.”
이수연은 잔뜩 구겨진 이혼 관련 서류를 꺼냈다.
“그 아이를 데려오는 걸 받아들이는 대신이야. 여기에 서명해 줘.”
이수연은 중요한 내용이 눈에 띄지 않도록 서류를 접은 채 고윤재에게 내밀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종이를 쥔 손끝에는 미세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
고윤재는 별다른 의심 없이 펜을 받아 들었다.
서류를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은 채 이수연이 가리킨 곳에 곧바로 서명했다.
그제야 이수연은 손끝에 들어갔던 힘을 천천히 풀었다.
고윤재는 자신이 방금 어떤 서류에 서명했는지도 모른 채 이수연을 품에 끌어안았다.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뭐든 사. 수연아, 미안해. 그동안 고생 많았어.”
이수연은 말없이 고윤재의 품에 안겨 있었다.
고윤재의 몸에서는 익숙한 향수 냄새가 짙게 풍겼다.
정지안이 가장 좋아하는 향이었다.
공교롭게도 이수연이 가장 싫어하는 향이기도 했다.
이수연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곧 떠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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