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전남편이 개처럼 빌기 시작했다제2화
이 화는 약 1961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한태준의 실행력은 과연 대단했다.
그날 오후, 내 명의의 카드들이 정지되었다는 알림이 왔다.
스마트폰 화면에 뜬 은행 문자는 간결했다.
주거래 카드 분실 신고 완료, 가족 카드 한도 제로.
시스템이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
[세상에, 한태준 저 남자 진짜로 자기가 숙주님을 먹여 살렸다고 믿는 건가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그렇겠지. 근거 없는 자신감은 남자들의 공통된 질병이니까.”
지난 20여 년 동안 내 인생은 늘 탄탄대로였다.
부유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고, 청담동 사교계에서 언제나 가장 빛나는 존재였다.
5년 전, 내가 ‘모두에게 사랑받는 여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내 삶은 그 자체로 완벽했다.
잘생기고 재력 있는 남자를 만나 평생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내게 정해진 시나리오였다.
수많은 구애자 중 내가 선택한 남자가 바로 한태준이었다.
그 선택 덕분에 그는 시스템의 가호를 받아 승승장구했고, 지금의 기세등등한 한 대표가 될 수 있었다.
비록 결혼 후 태준의 카드를 쓰긴 했지만, 나 윤서연은 애초에 명문가 집안의 딸이다. 카드 몇 장 정지된다고 길거리에 나앉을 처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집에 도착하자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사모님, 오늘 저녁은 제일 좋아하시는 해신탕 준비했어요.”
식탁 위를 보니 그릇 두 세트가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태준은 아무리 바빠도 저녁 식사만큼은 반드시 나와 함께했다.
몇 년 전 태풍이 몰아쳐 온 도시가 마비되었던 날도 있었다.
그는 폭우를 뚫고 차를 몰아 돌아왔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와의 저녁 약속은 어기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문 안으로 들어설 때 그는 온몸이 젖어 있었지만, 품 안에서 멀쩡한 케이크 상자를 꺼내며 환하게 웃었다.
“당신이 어제 먹고 싶다고 했던 거.”
젖은 머리칼 사이로 빗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그의 눈빛만은 보석처럼 빛났었다.
그런 사람이 모든 다정함을 거두고, 고작 ‘좀 지쳤다’는 말로 모든 걸 끝내려 한다.
그때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희수가 SNS에 올린 게시물이었다.
두 사람은 어느 허름한 노포 식당에 앉아 매운 마라탕 한 그릇을 나눠 먹고 있었다.
자조 섞인 웃음이 났다.
한태준의 위장은 예민해서 보양식 하나도 수천만 원을 들여 공수해 왔다.
식단 하나하나 내가 세심하게 체크해 비서 편에 보냈던 것들이다.
나는 휴대폰을 덮고 무심히 말했다.
“앞으로는 1인분만 준비해 주세요.”
아주머니는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라탕 한 그릇에 흔들릴 남자라면, 버리는 게 답이다.
상류층 사회는 넓은 듯 좁다.
나와 태준의 일은 금세 소문이 퍼졌다.
그가 희수를 데리고 어느 비즈니스 파티에 참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앞에서는 비위를 맞췄겠지만, 내게는 뒤로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서연아, 미쳤나 봐. 한태준 제정신이니? 저런 여자를 데리고 나오다니, 비웃음 사려고 작정한 거야?]
[서연아, 그 성씨 가진 놈은 진작에 버렸어야 했어. 내가 괜찮은 애들 몇 명 아는데, 오늘 술이나 한잔할까?]
나는 바 라운지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어 그 메시지들을 읽으며 웃었다.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르자 옆에 앉은 남자를 구두 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나 못 걷겠어. 저기까지 좀 업어줘.”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렸다.
“윤서연, 너 취했어. 난 한태준이 아니야.”
나는 고개를 들어 그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했다.
이도현. 과거 내 남주인공 후보 중 한 명이었고, 지금은 이강 그룹의 수장이 된 남자.
나는 그의 귓가에 숨결을 불어넣으며 속삭였다.
“그래서, 업어줄 거야, 말 거야?”
그의 몸이 딱딱하게 굳더니, 이내 내 앞에서 천천히 등을 내주었다.
나는 창밖의 달빛을 보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한태준, 당신이 없으면 내 인생이 망가질 거라 생각했니? 천만에.
머릿속에서 시스템이 킥킥대며 웃었다.
[숙주님, 만약 이도현을 새 남주로 점찍으셨다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한태준의 기운 회수는 착착 진행 중입니다. 내일, 아주 재미있는 선물을 받게 되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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