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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전남편이 개처럼 빌기 시작했다제1화

이 화는 약 2932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소위 ‘온실 속의 화초’ 같은 로맨스 소설 속에서 5년 동안 여주인공으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호텔 룸에서 남편 한태준과 그의 여비서를 맞닥뜨렸다.

잔뜩 헝클어진 모습의 여비서는 두꺼운 뿔테 안경을 치켜올리며 사색이 되어 내게 사과를 늘어놓았다.

나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게 태준에게 이혼을 선언했다.

태준은 비서를 가소롭다는 듯 훑어보더니, 내 말이 농담이라도 되는 양 코웃음을 쳤다.

그는 여비서의 월급으로는 내 머리 손질 한 번도 못 한다며, 내 가방 하나가 평범한 사람들의 반년치 생활비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내가 자신을 떠나서 어떻게 이런 안락한 삶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오만한 질문과 함께.

그는 온 서울 시내가 나를 태준의 보살핌 없이는 살 수 없는 ‘능소화’ 같은 존재로 알고 있다며 자조 섞인 비아냥을 내뱉었다.

자신 말고는 누구도 나를 개처럼 떠받들며 비위를 맞춰주지 않을 거라면서.

내가 침묵에 잠긴 사이, 한동안 잠잠했던 시스템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시스템은 태준을 향해 혀를 찼다. 그의 개가 되고 싶어 줄을 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저 남자는 정말 모르는 거냐고.

나는 나직이 실소를 터뜨렸다.

어쩌면 5년이라는 안온한 세월이 너무 길었던 모양이다. 그는 잊고 있었다.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이자, 동시에 ‘기다려주지 않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 * *

나는 말없이 태준을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 출근 전까지만 해도 다정하게 우유를 데워주고, 칫솔에 치약까지 짜두었던 남자였다.

단 몇 시간 만에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난 5년 동안 서울 사교계에서 윤서연은 한태준의 심장이고, 손안의 보석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는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사생활이 깨끗했고, 이성과 단둘이 있는 법이 없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나는 고개를 숙이고 여비서 강희수를 곁눈질했다. 두꺼운 뿔테 안경이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시스템이 비명을 질렀다.

[숙주님, 사람 외모 가지고 뭐라 하긴 좀 그렇지만… 저 남자 눈이 삐었나요? 희수 씨랑 숙주님이 같이 서 있는데,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선택이 고민될 리가 없잖아요!]

나는 시스템의 말을 무시했다.

몸에 밴 교양 덕분에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내뱉지는 않았다.

그저 주먹을 꽉 쥐고 심호흡을 한 번 했을 뿐이다.

“이유가 뭐야?”

희수가 옆에서 메추리처럼 바들바들 떨자, 태준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나가서 기다려.”

두 사람의 거침없는 친밀함에 눈시울이 따끔거렸다.

대외적으로 태준은 늘 냉혹하고 과묵한 경영자였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그는 무자비한 포식자였고, 한강 그룹은 물론 재계 전체가 그를 경외하고 두려워했다.

그는 오직 나에게만 모든 다정함을 허락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깨달았다. 내가 유일한 예외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태준은 고개를 숙여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저 여자는 커피 한 잔만 사줘도 온 세상을 다 얻은 듯 고마워해. 그런데 당신은, 내가 수천만 원짜리 보석을 사다 줘도 혹시 이미 가지고 있는 디자인은 아닌지 눈치 보게 만들지.”

“서연아, 나도 좀 지쳤어. 내가 사랑하는 건 언제나 당신뿐이야. 다만 가끔은 나도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을 뿐이야.”

그는 담배를 끄고 냄새가 가시길 기다렸다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다정하게 내 눈가를 어루만졌다.

“울지 마. 나한테 시간을 좀 줄래? 마음 정리할 시간.”

나는 익숙한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옷자락을 꽉 쥐고 고개를 저으며 헛웃음을 삼켰다.

“참 가련하게도 말하네. 하지만 그 어떤 말로도 불륜이라는 사실은 가려지지 않아, 한태준. 결혼할 때 말했지? 난 어떤 형태의 배신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우린 끝이야.”

태준의 안색이 변했다.

“당신, 일 안 한 지 얼마나 됐지?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나 해? 지난 세월 동안 당신 의식주 중에 내 손 안 거친 게 하나라도 있어? 나 떠나면 당신은 한 달도 못 버텨.”

시스템이 적절한 타이밍에 목소리를 높였다.

[남주인공의 캐릭터 설정 붕괴 감지. 그에게 부여된 모든 보너스 광광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숙주님과의 결속이 깊어 회수 완료까지 한 달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나는 차갑게 웃었다.

“한 달이라. 충분해.”

지금 그의 세력이 막강할지 모르나, 내 세상에서 주인공은 오직 나뿐이다.

태준은 가식적인 미소를 거두고 오만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직접 겪어봐야 알겠군. 내 보호막 없이는 바깥세상이 얼마나 거친지.”

나는 가방을 챙겨 뒤도 안 돌아보고 방을 나섰다. 마지막 한 마디만 남긴 채.

“태준아, 내가 당신이랑 결혼해서 이 모든 걸 누리는 게 아니야. 반대지. 내가 당신을 선택했기 때문에 당신이 오늘날 이 자리에 있는 거야.”

문밖에는 여전히 희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으로 나를 보더니 용기를 낸 듯 입을 열었다.

“사모님… 제가 모든 면에서 사모님보다 부족하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한 대표님이 밤샘 근무로 위경련이 왔을 때 곁에서 따뜻한 물 한 잔 챙겨준 건 저뿐이었어요… 전 그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태준이 문가에 서서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나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집에 24시간 대기하는 영양사가 있는데, 고작 물 한 잔에 감동을 받아? 그동안 내가 챙겨준 위장약이며 보양식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나는 희수를 차갑게 훑었다.

“당신 말이 맞아. 당신은 모든 면에서 나보다 한참 모자라지. 그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와 수치심조차 없군.”

“그리고,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마. 앞으론 윤서연 씨라고 불러.”

나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두 사람을 지나쳐 걸어갔다.

머릿속에서 시스템이 한숨을 내쉬었다.

[숙주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이 소설의 유일한 주인공은 숙주님이에요. 마음이 변한 한태준은 이제 남주인공 자격 상실입니다. 다음 남자는 더 고분고분한 놈으로 골라보자고요.]

나는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서울의 야경을 보며 담담하게 읊조렸다.

“이혼 숙려 기간이 딱 한 달이지. 정말 후회하게 될 사람은 내가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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