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드세요? 그럼 버리겠습니다제2화
이 화는 약 4512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 집의 이 '일곱 번 부르기' 규칙이 단군 할아버지가 나라를 세웠을 때부터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어머니의 기억에 따르면, 어머니가 이 집에 처음 시집왔을 무렵만 해도 규칙은 '세 번'이었다고 한다. 그렇다. 세 번.
그때 할아버지는 막 지역 농협 조합장 자리에서 은퇴하셨을 때였다. 평생 감투를 쓰고 대접받는 데 익숙했던 분이라, 집안에서도 그 '존경받는'
느낌을 유지하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나를 밥상에 부를 때는 세 번은 청해야 한다. 그게 예의라는 거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그렇게
선언하셨다.
아버지는 그때 막 결혼을 한 풋내기였고, 한창 효심이 깊을 나이라 앞뒤 재지 않고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갓
들어온 새댁이 무슨 힘이 있어 반대를 하겠는가.
"아버님, 진지 드세요." "아버님, 상 다 차렸습니다." "아버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세 번. 간단하고 빠르다. 15초면 끝났다. 반찬도 여전히 따뜻했다. 그 몇 년간은 모든 게 정상적이었다. 만약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우리
집은 그저 '조금 유별나게 예의를 따지는 평범한 집안' 정도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망이란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다. 처음엔 회사에서 10분만 딴짓을 하려던 사람이, 나중엔 8시간 근무 중 7시간 반을 월급루팡으로
보내게 되는 것처럼. 점진적으로, 그리고 소리 소문 없이.
5년 뒤, 세 번이 다섯 번으로 늘어났다. 이유는... 내가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의 논리는 이러했다. "집안에 식구가 늘었으니, 가풍도
그에 맞게 격을 높여야지. 며느리가 시아버지 밥 챙기는 것에 정성을 안 들이면 집안의 기강이 무너진다." 아버지는 지당하신 말씀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머니는 이번에도 참았다. 다섯 번. 그래, 그까짓 거 두 번 더 말하면 되는 거니까.
또 5년이 흘러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었다. 다섯 번은 어느새 일곱 번이 되어 있었다. 이번 이유는 더 황당했다. 할아버지가 우연히
사극 드라마를 보셨는데, 거기 나오는 대감마님 상을 차릴 때마다 온 집안 식구가 일제히 "대감마님, 수라를 드시옵소서" 하고 외치는 장면이
나왔다는 거다. 할아버지는 그날 밤 이렇게 선언하셨다. "저게 진짜 근본 있는 집안의 법도지. 칠(七)은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는 완벽한
숫자다. 앞으로는 일곱 번이다."
어머니는 그날 저녁 반찬에 소금을 두 줌이나 더 넣으셨다. 아버지는 그날 반찬이 목구멍이 타들어 갈 정도로 짰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규칙은 결국
일곱 번으로 굳어졌다.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물론 반항을 시도했던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큰어머니 장미화 여사는 성격이 급한 편이었다. 어느 해 설날, 온 가족이 모여 떡국을 먹을
때였다. 명절처럼 식구가 많을 때는 할아버지가 누가 자기를 부를지 지목하곤 했는데, 그날은 큰어머니 차례였다. 큰어머니는 다섯 번을
부르다가 짜증이 났는지 빽 소리를 질렀다. "아버님! 얼른 좀 오세요! 떡국 다 불어 터지겠네 진짜!"
할아버지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문을 잠그셨다. 안 드시겠다는
시위였다.
그 설날 저녁 내내 할아버지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으셨다. 큰아버지는 방문 앞에서 두 시간 동안 싹싹 빌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가
방문을 열고 나오며 던진 첫마디는 이거였다. "법도는 법도다. 감당 못 하겠으면 이 집에서 나가라."
그날 이후로 큰어머니는 두 번 다시 우리 집 밥상에 앉지 않으셨다. 매번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마침' 급한 일이 생겨서 못 온다고 했다.
이 사건 이후로 집안의 그 누구도 감히 이 규칙에 토를 달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가 유일하고 영구적인 '일곱 번의 호명자'가 되었다. 하루 또
하루, 일 년 또 일 년. 일곱 번을 부르고. 수저를 드시길 기다리고. 뜨겁게 요리해서 차갑게 식은 밥을 먹는 일상.
나는 그걸 태어날 때부터 보고 자랐다. 어릴 땐 몰랐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미리 내게 단단히 예방주사를 놓았기 때문이다.
"네 할아버지 성정이 원래 저러시다. 딴 건 몰라도 체면 깎이는 건 죽기보다 싫어하시는 분이야. 네 엄마도 평생을 맞춰주며 살았는데, 굳이 네가
나서서 벌집 쑤시지 마라."
우리 아버지라는 사람은... 참, 뭐라고 해야 할까. 세계 갈등 회피 올림픽이 있다면 무조건 금메달을 딸 위인이었다. '상황 덮어두기'라는
학문이 있다면 종신 교수를 할 분이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아버지가 취하는 기본 행동 수칙은 다음과 같다. 고개 숙이기, 침묵하기,
전화 온 척하기, 화장실 가기. 30년 동안 아버지는 할아버지 앞에서 단 한 번도 "아니요"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를 위해 편을
들어준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의 인생철학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참으면 다 지나간다.'
대체 뭘 참는다는 걸까? 평생을? 하지만 나 역시 아버지를 비난할 자격은 없었다. 나도 20년 넘게 닥치고 참아왔으니까.
배지윤을 만나기 전까지는.
지윤이는 내 대학 동기다. 예쁘장한 외모에, 머리도 비상하게 잘 돌아가고, 무엇보다 성격이 깡다구 그 자체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대학교 3학년 때, 학생 식당 아주머니가 제육볶음을 한 주걱 덜 퍼줬다고 배식구 앞에서 15분 동안 물러서지 않고 논리정연하게
따진 적이 있다. 결국 뒤에 줄 서 있던 학생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아주머니가 백기를 들며 고기를 산더미처럼 쌓아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대학원생 시절, 지도교수가 주말에 무급으로 나와서 논문 작업이나 도우라고 하자 그녀는 곧바로 카톡을 보냈다. "교수님, 근로기준법
제36조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리고 정말로 안 나갔다. 교수도 딱히 그녀를 어쩌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었다. 세상 무서울 것
하나 없지만, 지루하고 부조리한 건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
우리는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사귀었다. 졸업 후 2년간 장거리 연애를 하다가, 그녀가 내가 있는 도시로 직장을 발령받으면서 우리는 동거를
시작했다. 우리의 일상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둘이 밥을 먹을 때면 먼저 배고픈 사람이 요리를 하고, 다 되면 "밥 먹어!"
하고 소리쳤다. 그럼 다른 한 명은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식탁으로 달려왔다. 청할 필요도 없었다.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먹고 싶을
때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게 이렇게 쉽고 당연한 일이었다는 걸.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혼을 한다는 건, 적어도 우리 고향에서는 아주 명확한 한 가지 관문을 의미했다. 그녀를 고향 집으로 데려가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
나는 이 일을 반년이나 미루고 또 미뤘다. 지윤이는 세 번이나 물었다. "도대체 집에 언제 인사 갈 거야?" 첫 두 번은 얼토당토않은 핑계로
넘어갔다. 세 번째 물었을 때, 그녀의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미루면 다음은 없다.' 아마 여자친구가 통째로 사라질 위기였다.
결국 어느 토요일 아침, 나는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고향 집으로 그녀를 태우고 출발했다. 운전대를 잡고 가면서 나는 한 가지 중대한 작업을
시작했다. 이른바 '예방주사 놓기'.
"저기, 지윤아." "응?" "내가 하나 고백할 게 있는데,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 "뭔데? 너희 집에 내가 모르는 비밀이라도 있어? 저번에
너희 집 화장실 문에 잠금장치 없다고 했을 때 이미 충분히 충격받았거든?" "화장실 문제는 아니고. 밥 먹는 거." "밥 먹는 게 왜? 너희 집
식사 예절 엄청 빡세? 젓가락질 정석대로 안 하면 혼나고 뭐 그런 거?"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어머니가 할아버지께 진지 드시라고
일곱 번을 청해야 해."
지윤이가 고개를 홱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매 끼니마다 우리 어머니가 할아버지 앞에 서서 일곱 번을
부르셔야 해. 그래야 할아버지가 식탁에 앉으시고, 수저를 드셔. 그제야 온 가족이 밥을 먹을 수 있어."
지윤이는 5초간 말이 없었다. "너 지금 나랑 장난해?" "아니, 진짜야." 다시 5초의 정적. "일곱 번?" "어, 일곱 번." "매
끼니마다?" "매 끼니마다." "하루 세끼 다?" "하루 세끼 다."
지윤이의 표정은 정확히 3단계를 거쳤다. 1단계: 의심. 내가 무슨 실없는 농담을 지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2단계: 경악. 내 표정이 장난이
아님을 깨달았다. 3단계: 학술적 호기심. "잠깐만... 이거 무슨 심리 조종이야? 가스라이팅? 아니면 할아버지한테 무슨 강박증 같은
질환이라도 있으셔?" "아니야. 할아버지는 그게 법도고, 어른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하셔." "누구 맘대로 정한 법도인데? 누굴
위한 존중이고?" "할아버지 본인이 정하셨어. 본인을 존중하라는 거지."
지윤이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래, 알았어. 오늘 그 대단한 법도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평온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6년이나 겪었다. 평온할수록 폭풍은 거세다. 나는 갑자기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가다가 핸들을 꺾어 논두렁에 처박히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러면 최소한 집에 도착하진 않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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