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드세요? 그럼 버리겠습니다제1화
이 화는 약 3971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밥을 먹는 일이 조선시대 어전회의보다 더 엄격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를 향해 무려 일곱 번을 청해야 했다. 그래야만 할아버지가
수저를 드셨다. 한 번이라도 덜 부르면? 안 드신다. 어조가 마음에 안 들면? 처음부터 다시. 삼십 년. 우리 가족 모두가 그 미친 짓에
순응하며 살았다. 내 아내가 이 집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는. 아내는 차갑게 식어버린 반찬들을 한 번, 그리고 다섯 번째 부름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있는 할아버지를 한 번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밥그릇을 치웠다. "안 드세요? 네, 그럼 버리겠습니다."
* * *
내 이름은 서도진, 올해 스물여덟이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두려웠던 게 뭐냐고 묻는다면? 시험도, 매를 맞는 것도, 한밤중에
화장실에 가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식사 시간'이었다.
우리 집에서 매 끼니는 한 편의 지루한 지구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괴한 행위예술에 가까웠다.
어머니가 주방에서 반찬을 내와 상을 차리고, 수저를 놓은 뒤 깊은숨을 들이마신다. "아버님, 진지 드세요." 첫 번째.
할아버지는 거실의 낡은 원목 안락의자에 앉아 손에 오래된 라디오를 쥔 채 눈길조차 주지 않으셨다. 당연한 일이다. 이것이 '규칙'이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첫 번째 부름에는 절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치 직장 상사에게 카톡으로 "부장님, 계십니까?"라고 보냈을
때 절대 1이 바로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머니는 30초를 기다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식사 다 준비되었습니다. 따뜻할 때 드세요." 두 번째.
할아버지의 코끝이 미세하게 씰룩였다. 음식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미동조차 없었다.
나와 아버지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우리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갈비찜, 고등어조림, 시금치나물, 그리고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 진한 꼬리곰탕까지.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아무도 수저를 들지 않았다. 감히 그럴 수 없었다.
이 집에는 철칙이 하나 있었다. 할아버지가 수저를 들기 전까지는 온 가족이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할아버지가 수저를 드는 조건은 단
하나였다. 어머니가 반드시 '일곱 번'을 청해야 한다는 것. 한 번도 모자라선 안 됐다. 토씨 하나 틀려서도 안 됐다.
내가 지금 코미디 대본을 쓰고 있는 것 같나? 아니, 나는 우리 집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버님, 오늘 좋아하시는 꼬리곰탕 푹 끓였습니다. 시장 가서 제일 좋은 걸로 사 왔어요." 세 번째.
할아버지가 가볍게 "어." 하고 소리를 내셨다. 하지만 기뻐하긴 일렀다. 이 "어"는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그저 '수신 확인'을 의미할
뿐이었다. 기획서에 팀장이 결재 도장을 찍은 것, 딱 그 정도의 의미였다.
나는 슬쩍 스마트폰을 보았다. 6시 18분. 음식이 상에 올라온 건 5시 50분이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 모든 프로세스가 끝나려면
대략 6시 40분은 되어야 했다. 다시 말해, 저 윤기 흐르는 고등어조림이 냄비에서 나와 내 입으로 들어오기까지 최소 50분의 냉각기를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50분. 뜨거운 반찬이 미지근해지고. 미지근한 반찬이 차가워지고. 차가운 반찬이 결국엔... 하나의 행위예술 조형물로 변해버리는 시간.
"아버님,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 번째.
어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고, 얼굴에는 적당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30년의 내공. 이 미소는 이미 근육에 각인되어 절대 흐트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앞치마 끝을 꽉 쥐고 있는 어머니의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할아버지가 라디오를 끄셨다. 좋은 징조였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진 않으시고, 대신 찻잔을 들어 여유롭게 한 모금 축이셨다. 아버지가 식탁
밑으로 내 발을 툭 쳤다. 무슨 뜻인지 알았다. '조용히 해, 곧 끝난다.' 나는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를 억지로 삼켰다.
"아버님, 다 좋아하시는 반찬이에요. 갈비도 두 시간이나 푹 쪄서 아주 연하게 잘 익었습니다." 다섯 번째.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쉬어 있었다. 티가 나진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20년 넘게 이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렸으니까.
할아버지가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순간 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드디어! 곧이다!
할아버지가 식당 입구까지 걸어와 우뚝 멈춰 섰다. 식탁 위의 반찬들을 쓱 훑어보셨다. 그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국자는?"
어머니가 흠칫 놀라며 서둘러 주방으로 뛰어가 국자를 가져왔다. 조심스레 세팅이 끝났다. "아버님, 앉으세요. 이제 다 됐습니다." 여섯 번째.
할아버지가 상석을 향해 걸음을 옮기셨다. 내 목구멍에서 침이 꼴깍 넘어갔다. 아버지의 젓가락은 이미 식탁 위에서 3밀리미터 정도 허공으로 떠올라
있었다.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으셨다. 두 손을 식탁 위에 올렸다. 하지만... 수저는 들지 않으셨다. 그렇다. 아직 한 번이 남았다.
7이라는 숫자는 흔히들 행운이나 완전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할아버지도 그런 뜻으로 7을 고집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조건 일곱
번이어야 했다. 한 번이라도 모자라면, 온 가족이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할아버지는 조각상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계셨다.
어머니가 할아버지 곁에 서서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진지 드세요." 일곱 번째.
3초의 정적. 할아버지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움직이더니, 마침내 손을 뻗어 수저를 드셨다. 갈비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으셨다. 천천히 씹으셨다.
"음, 오늘 갈비가 괜찮네."
이 한마디는 우리 집 식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아버지의 젓가락이 빛의 속도로 튀어 나가 고등어조림의 뱃살을 정확히 명중시켰다. 나
역시 왼손으론 갈비를, 오른손으론 수저를 들고 얼굴을 접시에 처박을 기세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가장 마지막에 자리에 앉으셨다. 항상 그러셨다. 제일 마지막에.
당신들은 이 이야기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여덟 살 무렵이었을 거다. 처음으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던 때가. 옆집 철수네는 왜 밥 먹으라는 한마디에 다들 식탁에 모여 앉는 걸까? 나는 베란다에 엎드려 철수네 집 창문 너머의 불빛을
바라보며, 그 집 식구 세 명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너무도 자연스럽게 수저를 들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밥을 먹는 걸
지켜보았다.
의식 따위는 없었다. 기다림도 없었다. 일곱 번의 부름도 없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철수네 집은 참 야생적이구나.' 한 번 부르고 바로 밥을 먹다니? 예의가 없는 건가?
이것 보라. 사람이 길들여지면, 자신이 갇힌 새장이 정상이라고 믿게 되는 법이다.
나중에 커서 대학에 가고 룸메이트들과 자취를 하며, 밖에서 몇 년 동안 자유로운 식사를 해보고 나서야 깨달았다. 비정상인 건 우리 집이었다는
걸.
하지만 아는 것과 현실은 달랐다. 집에 돌아오면, 규칙은 여전히 규칙이었다. 할아버지가 그 자리에 앉아 계시는 한, 그건 절대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산이었다. 치울 수 없었다. 아무도 치울 수 없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큰아버지도, 고모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어른이시잖니." "노인네 고집인데 우리가 맞춰 드려야지." "본인이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둬라."
온 가족이 똑같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30년이 흘렀다. 30년.
어머니는 매년 겨울마다 인후염을 앓으셨다. 의사는 말을 줄이고 물을 많이 마시라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말을 줄일 수 있을까? 하루 세끼, 한
끼에 일곱 번, 일 년 365일. 계산해 보라. 일 년에 7,665번이다. 그 짓을 30년 동안 하셨다.
하지만 이게 내 고민의 핵심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내가 곧 결혼을 한다는 거였다. 나는 내 아내 될 사람을 이 집안으로 데리고 와야
했다.
나는 스마트폰 속 배지윤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햇살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얼굴. 하지만 한번 화가 나면 에어컨
실외기조차 욕해서 멈추게 만들 수 있는 성깔의 소유자.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우리 집의 이 빌어먹을 규칙, 머지않아 박살 날 것 같다는 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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