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딸의 뒤늦은 후회제2화
이 화는 약 1995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내 말에 소파에 앉아 있던 모녀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내가 주제도 모르고 큰소리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강도윤,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원래 당신이 잘못했잖아. 밖에서 하룻밤 반성 좀 하라고 한 게 뭐가 잘못됐는데?”
나는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송서연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이맘때 북쪽 지방은 벌써 기온이 뚝 떨어진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었다.
나는 길거리에서 몇 시간이나 폭우를 맞으며 두 사람을 기다렸다. 그러고는 차가운 밖에서 밤새 추위에 떨다가 고열이 나고 폐렴까지 걸렸다.
다행히 이웃이 병원에 데려다줬기에 망정이지,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다.
나는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더 할 말 없어. 서명해.”
송서연의 얼굴에 뜻밖이라는 기색이 스쳤다.
그동안 이혼을 입에 올린 건 늘 화가 난 송서연 쪽이었다. 예전에는 항상 그녀가 투덜거리며 이혼을 말했지, 내가 먼저 이혼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
“강도윤, 지금 무슨 짓 하는 건지 알아?”
고열을 앓은 뒤라 아직 몸에 힘이 없었다. 나는 지친 몸을 가까스로 지탱하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알아. 이제는이 껍데기뿐인 결혼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
늘 떠받들리며 보살핌을 받아왔던 송서연은 내가 물러서지 않자 자존심이 상한 듯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좋아. 이혼하자고 하면 못 할 줄 알아?”
송서연은 이혼 합의서를 집어 들더니 내 얼굴에 거칠게 내던졌다.
“강도윤, 잘 들어. 당신 같은 남자는 나랑 어울리지도 않아. 돈도 빽도 없는 주제에 나랑 이혼하고 어떻게 사는지 두고 보겠어.”
“딸은 절대 못 데려가. 하은이 양육권은 무조건 내 거야. 당신 따라가서 가난하게 살게 둘 순 없으니까.”
그때 강하은이 얼른 송서연 다리를 끌어안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엄마한테는 아저씨처럼 잘생기고 다정한 사람이 어울려요. 아저씨는 피아노도 치고 나한테 다이빙도 가르쳐 주는데, 아빠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요.”
“이제 내 아빠 아니니까 우리 집에서 나가세요.”
나를 꼭 닮은 어린 얼굴에서 어떻게 가슴에 비수를 꽂는 것만 같은 말들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예전이었다면 딸의 말에 마음이 무너져 한참을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 아이와의 부녀 관계도 여기서 끝이야.’
“걱정하지 마. 양육권을 놓고 다툴 생각 없어.”
나는 강하은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이제 내 딸이 아니야. 누구를 아빠로 삼든 네 마음대로 해.”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송서연과 강하은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침실에 들어가 짐을 챙겼다.
내 물건은 얼마 없었다. 갈아입을 옷 몇 벌이 전부였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삶의 중심은 송서연과 강하은이였다.
두 사람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
나는 이 가정을 지키려고 모든 것을 포기했지만, 정작 두 사람에게 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였다.
마음을 다하면 진심으로 보답할 줄 알았던 내가 어리석었다.
집을 나서기 전, 나는 약지에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빼서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았다.
10년 동안 내 손가락에 있던 반지였다. 나를 10년 동안 옭아맨 반지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짐을 들고 나오자 송서연과 강하은은 누군가와 영상 통화 중이었다.
휴대전화 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하은이, 오늘도 착하게 있었어? 내일 아저씨가 선물 들고 갈게. 네가 갖고 싶어 하던 곰돌이야.”
심우진이었다.
강하은은 기다렸다는 듯 명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저씨가 최고예요. 내일 봐요.”
송서연도 한없이 다정한 표정이었다. 조금 전 내게 소리 지르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우진아, 하은이한테 너무 오냐오냐하지 마. 버릇 나빠져.”
집 안에는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그곳에서 불청객은 나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반복되는 상처 끝에 그들에 대한 나의 사랑은 이미 소진되었으니까.
머리가 더 어지러워졌다. 나는 이제 정말 떠날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현관문을 나섰다.
이번에는 아무 말도, 아무 미련도 없이 쿨하게 떠났다.
세로쓰기 표시 중: 본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스크롤합니다(← → 키로도 이동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