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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딸의 뒤늦은 후회제1화

이 화는 약 2428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광복절 연휴를 맞아 나는 한 달 전부터 여행 계획을 세웠다. 아내와 딸을 데리고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천을 구경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출발할 날이 다가오자 모녀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는 폭우가 쏟아지는 길거리에 홀로 서서 두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딸의 차갑고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는 지금 아저씨랑 밥 먹고 있어요. 우리는 여행 안 갈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고, 나는 곧바로 차단당했다.

모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일부러 집 문까지 잠가 나를 밖에 세워 뒀다. 나는 추위에 떨며 꼬박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전날 밤 폭우까지 흠뻑 맞은 탓에 나는 그날 밤 고열에 시달리다 결국 폐렴에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모녀는 심우진과 함께 여행을 떠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이번에야말로 우리의 결혼 생활이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 * *

눈을 뜨자 코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가 밀려왔다.

온몸 구석구석 쑤시지 않는 곳이 없었다. 머릿속은 멍했고,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고서야 어젯밤 집 앞에서 쓰러진 나를 이웃이 병원으로 데려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 문득 딸아이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우진 아저씨.’

심우진. 아내 송서연의 첫사랑이었다.

한낮의 병실에서는 다른 환자와 가족들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하지만 내 침대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송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SNS를 열어 보니 송서연이 얼마 전 올린 게시물이 눈에 들어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광복절을 축하하며.]

사진 속 송서연과 심우진은 딸아이를 양쪽에서 끌어안고 있었다. 셋 다 손에 작은 태극기를 든 채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누가 봐도 다정한 세 식구였다.

나도 모르게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마음이 쓰리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런 일이 워낙 잦다 보니 이제는 무뎌질 대로 무뎌졌다.

나는 그 게시물에 좋아요까지 누른 뒤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 뒤로도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내내 송서연은 딸을 데리고 심우진과 놀러 다녔다. 퇴원하는 날까지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나는 혼자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 안에서 송서연과 강하은의 즐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녀는 소파에 앉아 있었다. 곁에는 포장부터 고급스러운 값비싼 선물 상자들이 크고 작은 것 할 것 없이 잔뜩 쌓여 있었다.

내가 들어오자 두 사람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마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차갑고 거만한 눈빛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은 척 먼저 말을 걸어 어색한 분위기를 풀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그럴 기운조차 없었다.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송서연이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훑었다.

“강도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닌 거야? 며칠 동안 연락 한 통 없다가 이제야 들어와? 아빠라는 사람이 그게 할 짓이야?”

기가 막혔다.

송서연은 딸과 심우진이랑 노는 데 정신이 팔려 내가 수십 통이나 전화를 건 것도 몰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녀는 늘 이런 식이었다. 잘못은 늘 송서연이 해 놓고, 끝에 가서는 모든 책임을 내게 떠넘겼다.

더는 따질 마음도 없었다. 말해 봤자 무슨 소용인가.

내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송서연은 또 내가 심술을 부린다고 생각한 듯했다.

송서연은 경멸하듯 나를 흘겨보더니 새로 한 네일아트를 살펴보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강도윤, 이번엔 또 뭐가 불만인데? 나랑 하은이가 당신이랑 여행 안 갔다고 이러는 거야? 그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야?”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냐고? 그래, 그럴 일이었다.

“그날 우진이가 마침 나랑 하은이한테 밥을 사 준다고 해서 비행기를 놓친 거잖아. 우진이는 여기에 아는 사람도 없어. 내가 좀 같이 있어 주면 어때? 남자가 왜 그렇게 쪼잔해?”

심우진에게 아는 사람이 없다고? 그럼 나는?

부모님을 일찍 여읜 나야말로 의지할 가족 하나 없이 혼자였다.

나는 오랫동안 사랑했던 여자를 바라봤지만 이제는 낯설기만 했다.

지난 10년 동안 내가 쏟아부은 정성이 너무나 아까웠다.

딸 강하은까지 엄마 편을 들었다. 나를 얼마나 못마땅하게 여기는지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아빠는 왜 그렇게 속이 좁아요? 아저씨처럼 잘해 주지도 못하잖아요. 이것 보세요. 이거 다 아저씨가 사 준 선물이에요. 아빠는 맨날 엄마 기분만 상하게 하잖아요.”

“나 이제 아빠가 싫어요. 차라리 우진 아저씨가 내 아빠였으면 좋겠어요.”

내가 애지중지하며 키운 내 딸이었다. 온갖 정성을 다해서 키웠지만 정작 하은이에게는 친아빠인 내가 남보다 못한 존재였다.

우습기 짝이 없었다.

사람 마음이라고 아프지 않을 리 없다. 상처가 거듭되면 결국 마음도 식어 버리는 법이다.

모녀가 그렇게 나를 싫어한다면 원하는 대로 해 주면 그만이었다.

나는 가방에서 이혼 합의서를 꺼내 송서연 앞에 내려놓았다.

“이혼하자.”

그리고 입을 삐죽 내민 하은이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러면 네가 원하던 새 아빠도 생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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