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속 새제2화
이 화는 약 2322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도화에게는 돈이 많이 필요했다. 내가 줄 수 없는 돈이었다.
그래서 정실부인이 나를 찾아왔을 때, 도화가 그녀 뒤에 서 있는 모습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나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무릎을 꿇고 정실부인 곁의 어멈에게 뺨을 연달아 얻어맞았다.
정실부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뺨을 맞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듣자 하니 후작가의 적녀로, 이름은 심명주라고 했다.
화려한 붉은 비단옷을 입고 머리에는 온갖 보석을 장식한 심명주는 몸짓 하나하나에서도 귀티와 우아함이 흘러넘쳤다.
명주라는 이름처럼, 심명주는 집안에서 금지옥엽으로 귀하게 자란 여인이었다.
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연희라는 내 이름처럼, 나는 그저 연기 한 줄기에 불과했다. 바람이 불면 흔적도 없이 흩어져 버린다.
내 뺨을 스무 대나 때리고 나서야 심명주는 어멈을 멈춰 세웠다.
나를 바라보는 심명주의 눈에는 혐오와 경멸, 그리고 분노가 서려 있었다.
목숨을 건지려면 지금이라도 머리를 조아리며 살려 달라고 빌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쩌면 어진 부인이라는 평판을 지키려고 내 목숨만은 살려 줄지도 모른다.
그럼, 그다음에는?
인신매매꾼에게 팔아넘길까?
유곽에 팔아넘길까?
심명주의 고귀한 얼굴을 바라보니, 문득 모든 게 지긋지긋해졌다.
나 같은 사람이 왜 굳이 이 세상에서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 가야 한단 말인가?
더는 발버둥 치고 싶지 않았다.
심명주가 부채 끝으로 내 턱을 들어 올리고 막 입을 열려던 순간, 배현우가 급히 달려왔다.
배현우는 막 조회를 마치고 나온 조복 차림이었다. 말에서 훌쩍 내려 마당으로 서둘러 들어오더니,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심명주의 손을 잡고 내 앞을 가로막았다.
두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배현우의 다정한 목소리만 들려왔다.
"명주, 어찌 그리 화를 내시오?"
심명주는 배현우의 손을 뿌리치고 나를 가리켰다.
"배현우, 저 여자는 누구이오?"
배현우는 잠시 침묵하더니, 심명주의 비위를 맞추며 조심스레 달랬다.
"그저 내 계집종일 뿐이오. 그대가 싫다면 다시는 만나지 않겠소."
심명주가 그 말을 믿을 리 없었다.
심명주는 붉은 입술을 치켜올리며 배현우를 흘겨보았다.
"그렇소? 중요하지 않다면 때려죽여도 되겠구려."
배현우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스쳤다.
"엄연히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인데 어찌 죽이라고 한다고 함부로 죽일 수 있겠소?"
심명주는 나를 보며 차갑게 비웃었다.
"주인 침상에 기어든 계집종이니, 때려죽여도 싸오."
나는 몸을 움찔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늘 배현우가 오지 않았다면, 심명주는 나를 팔아넘기는 선에서 그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배현우가 온 이상, 나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언젠가 첩을 들이는 건 받아들일 수 있어도, 배현우가 유독 아끼고 감싸 주는 여자만큼은 용납할 수 없을 테니까.
배현우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 뒤에야 배현우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나를 자신의 마부 조만수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배현우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한 번 바라볼 뿐이었다.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한 사내가 내 곁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은혜에 감사드린다고 했지만,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도련님이 버린 여자를 떠맡았는데, 무엇이 그리 기쁘겠는가?
그래도 죽지 않았으니, 나는 계속 살아가야 했다.
나는 정신이 몽롱한 채 마부를 따라 고개를 숙여 절을 올렸다.
심명주는 여전히 못마땅해했지만, 배현우가 달랜 끝에 자리를 떠났다.
두 사람이 떠나갈 무렵,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잃기 직전, 멀리서 배현우가 나를 한 번 돌아보는 걸 보았다.
그러고는 심명주를 따라 마차에 올라 떠났다.
나는 몸져누웠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마치 불 위에 올려져 온몸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꿈속에서 나는 아홉 살이던 해로 돌아갔다.
그해에는 극심한 가뭄이 들어 곡식 한 톨 거두지 못했다. 결국 우리 가족은 먹을 것을 찾으러 남쪽으로 떠났다.
길가의 나무는 굶주린 유민들이 껍질까지 죄다 벗겨 먹어 앙상했다. 어머니는 한 살배기 남동생을 안고, 아버지는 세 살배기 여동생을 업었다. 우리 다섯 식구도 껍질이 벗겨진 백양나무처럼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우리 가족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겨우 숨만 붙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남동생이 끝내 버티지 못했다. 아직 어려 나무껍질조차 먹지 못하는 아이인데, 이제 남아 있던 식량마저 바닥나고 말았다.
아버지는 밤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좁쌀 한 사발을 구해 와서는 한 줌을 내게 건네며 죽을 끓이라고 했다.
여동생이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감히 묻지 못했다.
하지만 좁쌀 한 사발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좁쌀마저 바닥났다.
이번에 아버지는 노련하게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나를 데리고 유민들 틈에 있던 인신매매꾼을 찾아갔다.
세로쓰기 표시 중: 본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스크롤합니다(← → 키로도 이동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