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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난 자리에서제2화

이 화는 약 2183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주원이 곧바로 찬물을 끼얹었다.

“이 집은 예원이 취향대로 꾸미자. 가끔 와서 지낼 텐데 편안하게 느껴야지.”

나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유주원, 여긴 우리 집이야. 왜 예원 씨 취향대로 꾸며야 하는데?”

그의 얼굴이 굳었다.

“그냥 인테리어 스타일 뿐이야. 우리가 지금 사는 집은 네 뜻대로 꾸몄잖아. 예원이는 부모님이 늘 해외에 계셔서 혼자 지내기 힘들어해. 앞으로 자주 와서 지낼 텐데, 예원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꾸미는 게 뭐가 그렇게 문제야? 너 왜 이렇게 속이 좁아?”

나는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

‘내 집을 다른 여자의 취향에 맞춰 꾸미라고?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우리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고, 그 집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꾸며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바로 이혼했어야 했다.

괜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기념일까지 기다려 대화를 시도한 내가 바보였다. 결국 마음을 접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유주원이 집에 돌아온 건 새벽 2시였다.

나는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도 억지로 정신을 붙잡고 그를 올려다봤다.

“유주원, 우리 얘기 좀 해야 해.”

...

유주원은 지친 얼굴로 앉아 있는 나를 힐끗 봤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미간을 꾹 누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강서안, 꼭 이래야 해? 결혼기념일 한 번 못 챙긴 게 그렇게 큰일이야? 우리 이제 오래된 부부잖아. 그걸 붙잡고 밤새 이럴 거야?”

“지금 몇 시인지 좀 봐. 나 하루 종일 일해서 피곤해. 너랑 말싸움할 시간이 없어.”

그는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 10분 동안 물소리만 쏟아졌다.

씻고 나온 뒤에는 안방 문 근처에도 가지 않고 곧장 작은방으로 향했다.

쾅.

문을 세게 닫는 소리에 마지막 남은 졸음마저 완전히 흩어졌다.

집 안은 다시 죽은 듯 고요해졌다.

내 마음은 실타래처럼 엉망으로 헝클어졌고 가슴 속에는 서러움이 꽉 막혀 있었다. 나는 손에 든 이혼 합의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예고도 없이 눈물이 툭 떨어졌다.

언제부터 우리는 대화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사이가 된 걸까?

유주원이 가장 먼저 일상을 나누고 싶어 하는 사람이 소예원이 된 순간부터였을까?

내 그릇에 아무렇지 않게 고수를 집어넣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니면 유산의 아픔을 나 혼자 견디게 했을 때부터였을까?

어린 시절 앞뒤 가리지 않고 쫓아다니던 때부터 나란히 서서 평생을 약속하기까지. 그리고 지금은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됐다.

나와 유주원은 고작 8년 만에 이렇게 되어버렸다.

손바닥 위로 떨어진 눈물을 내려다보며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펜을 들어 이혼 합의서에 내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들어갔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칠 대로 지쳐서인지 그날은 깊은 잠에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정오가 가까워져 있었다.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뜻밖의 불청객과 마주쳤다.

내가 나오자 소예원은 반갑다는 듯 활짝 웃었다.

“서안 씨, 일어났어요?”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유주원이 주방에서 나오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제 일어나? 예원이는 온 지 한참 됐어.”

소예원은 유주원을 흘겨보며 타박하듯 말했다.

그러고는 테이블 위에 있던 벨벳 상자를 집어 들고 빠르게 다가와 내 손에 쥐여줬다.

“유주원, 그렇게 말하지 마.”

“서안 씨, 신경 쓰지 마세요. 원래 주원이는 말만 퉁명스럽지 속은 따뜻하잖아요. 이거 어제 서안 씨 주려고 일부러 고른 결혼기념일 선물이에요. 오는 내내 계속 고민하더라고요.”

나는 온몸이 불편했다. 구역질이 날 것처럼 불쾌했지만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마워. 뭔데?”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소예원이 상자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

안에는 작디작은 목걸이 하나가 들어 있었다. 어느 브랜드에서 사은품으로 주는 듯한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목걸이였다.

유주원이 상자를 받아 들고 딱딱하게 설명했다.

“예원이가 신상 가방 갖고 싶대서 같이 쇼핑하러 갔어. 마침 사은품 증정 금액에 딱 맞길래, 이 목걸이가 네 스타일이랑 잘 맞는 것 같아서 돈 조금 더 내고 샀어.”

내가 받지 않자 그는 한마디를 더 붙였다.

“넌 의사라 너무 화려한 건 안 어울리잖아. 그래서 일부러 무난한 걸로 골랐어.”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는 바닥에 놓인 명품 쇼핑백 몇 개를 집어 내 발치로 툭 던졌다.

“여기 예원이가 방금 갈아입은 옷들이야. 네가 좀 빨아서 정리해 줘. 우리 조금 있다 현대미술 살롱에도 가야 해서 먼저 나갈게.”

두 사람은 웃고 떠들며 끝까지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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