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끝난 자리에서제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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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이 미리 작성해 둔 이혼 합의서를 내게 건넸다.
“5년이나 쫓아다녀서 겨우 유주원과 결혼했잖아. 그런데 갑자기 왜 이혼하려는 거야?”
나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같이 밥을 안 먹어주니까.”
5시간 전, 나는 레스토랑 주소를 유주원에게 보냈다.
“결혼 3주년이잖아. 여기 예약해 뒀어.”
답장은 거의 바로 왔다.
“바빠. 시간 없어.”
5년 동안 쫓아다니고 3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며 내가 돌려받은 것은 고작 그 한마디였다. 그날 회사 건물 아래에서, 나는 유주원이 단발머리 여자를 조심스럽게 챙겨 차에 태우는 모습을 봤다.
유주원을 5년 동안 쫓아다니는 동안 그의 답장은 처음엔 시큰둥한 한두 마디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희로애락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하지만 이제는 며칠 걸러 한 번씩 바쁘다며 시간이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나는 내가 예전만큼 잘하지 못해서 그런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저 유주원의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간 것뿐이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레스토랑에서 온 전화였다.
“강서안 씨, 오늘 몇 분이 함께 오시나요?”
나는 이혼 합의서를 가방에 넣었다.
“한 명이요.”
유주원이 그 여자와 그 레스토랑에 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잘됐네. 오늘부터 네가 누구와 그 집의 시그니처 메뉴를 나눠 먹든 나와는 상관없어. 난 오롯이 나만을 위해 즐길 테니까.’
* * *
절친과 헤어진 뒤, 나는 곧장 그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창가 구석 자리에서 한창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이 보였다.
유주원은 몸을 살짝 틀어 맞은편 여자와 대화하고 있었다.
“다음 주 인상파 전시회 표는 벌써 예매해 뒀어. 지난번에 보고 싶다던 모네 진품도 이번에 나온대.”
소예원은 내 시선을 알아차리더니 웃으며 포크로 유주원의 팔을 콕 찔렀다.
유주원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었다. 곧 그의 얼굴에 번져 있던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말투에는 짜증이 묻어 있었다.
“나 따라왔어? 내가 시간 없다고 했잖아. 굳이 여기까지 쫓아와서 왜 이래? 나 예원이랑 중요한 얘기 중이니까 먼저 가. 여기서 창피하게 굴지 말고.”
“일 끝나면 기념일은 다시 챙겨줄게. 오늘은 네가 알아서 대충 먹어.”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는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갔다.
“예원아, 캐러멜 푸딩이 여기 대표 메뉴래. 지난번에 단 거 좋아한다고 했지? 먹어볼래?”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메뉴를 보는 모습을 바라봤다. 어느새 손가락은 가방 속 이혼 합의서를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종이 모서리가 손바닥을 눌러 아팠다. 나는 입꼬리를 씩 올리며 씁쓸하게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예의를 갖춰 8년의 연애와 결혼을 마무리하길 바랐다.
그런데 유주원은 이제 내 앞에서 연기할 마음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마음이 무거운 만큼 몸도 점점 무기력해졌다.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 나는 몸을 돌려 미리 예약해 둔 자리로 가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주문했다.
예전에는 유주원과 함께라면 늘 내가 좋아하는 것은 뒷전이었다.
유주원은 고수를 먹지 않았고 매운 것도 싫어했으며 너무 단 음식도 먹지 않았다. 나는 그걸 꼬박 8년 동안 기억했다.
하지만 내가 뭘 좋아하냐고 물으면 한참을 고민하다 겨우 가리는 게 없다는 말만 했다.
반면 소예원이 딸기 맛 막대사탕과 말린 망고, 당도 70% 타로 펄 음료를 좋아한다는 건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나는 내가 좋아하지만 그가 싫어하는 음식만 골라 주문했다.
매운 갈비찜의 매콤한 소스가 혀끝에서 확 퍼졌다. 너무 매워 눈시울이 살짝 뜨거워졌다.
‘혼자 먹는 밥이 훨씬 더 맛있구나.’
해가 질 때부터 거리에 불이 하나둘 켜질 때까지, 옆 테이블 손님은 몇 번이나 바뀌었다.
내가 레스토랑을 나설 때도 두 사람은 여전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예원은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크게 웃고 있었고, 유주원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도 본 적 있는 눈빛이었다.
유주원과 막 연애를 시작했을 때 우리도 저랬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작은 들꽃 하나만 봐도 신이 나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씨앗이 퍼지는 방식에서 시작해 식물의 광합성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인간의 성장 주기까지 넘어가곤 했다.
그때의 우리는 할 말이 끝없이 많았고, 같은 박자 위에 올라탄 것처럼 대화가 잘 맞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대화가 10마디만 넘어가도 싸움으로 번진다.
더 우스운 건, 싸움의 중심에는 늘 그의 소꿉친구 소예원이 있었다는 것이다.
3개월 전, 우리의 두 번째 집 인테리어 공사가 끝났다.
가구를 고르던 날만큼은 드물게 평화로웠고 우리는 심지어 그 집에서 살아갈 미래를 함께 상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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