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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혼약, 다시 찾은 삶제2화

이 화는 약 2480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혼례까지는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후작가의 살림을 맡은 곳에서 지출 목록 세 권을 보내왔다.

혼례용 초와 연회 음식, 비단은 물론 사당을 새로 칠하는 비용까지 적혀 있었다. 마지막에는 여느 때처럼 박씨 가문의 사재로 지불한다고 적혀 있었다.

지난 팔 년 동안 이 문구를 너무도 많이 보았다.

그날 나는 혼례복 치수를 적은 종이를 들고 포목점으로 향했다.

주인이 막 나를 맞으려던 순간, 위층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에 들어 한다면 값은 더 따지지 말거라."

별실에는 화려한 선홍빛 옷 한 벌이 펼쳐져 있었다. 금실로 수많은 새가 봉황을 향해 날아드는 문양을 수놓아, 촛불이 비치자 온 방이 눈부시게 빛났다.

황실 여인만 사용할 수 있는 문양이었다.

임지헌은 옷걸이 옆에 서서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저는 평생 혼인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저 혼례복 한 벌을 간직하며 위안으로 삼고 싶을 뿐입니다. 서윤이가 알게 되면 제가 분수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김연우가 나의 상단 패를 장부 위에 올려놓았다.

"서윤이는 이 정도 돈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문밖에 잠시 서 있다가 문을 열었다.

김연우가 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나의 상단 패를 쥐고 있었다.

"마침 잘 왔구나. 지헌이가 이 옷을 마음에 들어 하기에 우선 네 장부에 외상으로 올려 두었다. 나중에 갚으마."

임지헌은 황급히 겉옷을 가져와 화려한 옷을 가리려 했다.

나는 옷걸이 앞으로 다가가 촘촘하게 놓인 금실을 손끝으로 쓸어 보았다.

삼천 냥, 평범한 집안이라면 몇 대에 걸쳐 먹고살 수 있는 돈이었고, 후작가의 반년 치 살림을 꾸릴 수 있는 돈이기도 했다.

"주인장, 드리거라."

임지헌이 굳어 버렸다.

나는 사람을 시켜 붉은 종이를 가져오게 한 뒤 직접 선물이라는 두 글자를 적어 장부 위에 올려놓았다.

"임지헌 아가씨께서 혼례복을 갖고 싶으시다니, 이 삼천 냥은 제가 미리 드리는 혼례 선물로 하겠습니다. 훗날 정말 혼인하고 싶은 분을 만나더라도 남의 부군과 함께 혼례복을 고를 필요는 없겠지요."

임지헌의 창백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김연우가 장부를 덮자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그만해라."

그는 겉옷을 들어 그 옷을 덮었다. 내가 장부만이 아니라 임지헌이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하는 상처까지 들춰낸 셈이었다.

"지헌이는 어려서부터 온갖 규율에 얽매여 살았다. 이제야 겨우 자유롭게 살게 되었는데 어찌 돈으로 모욕하는 것이냐?"

나는 그의 앞에 놓인 상단 패를 바라보았다.

"제 돈입니다."

"우리는 다음 달이면 혼인할 사이인데, 어찌 네 것과 내 것을 따지는 것이냐?"

김연우가 상단 패를 내게 돌려주며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후작가의 사정이 나아지면 내가 갚으마. 오늘은 사람들도 보고 있으니 지헌이를 난처하게 만들지 말거라."

"후작가에서 지난 삼 년간 지출한 내역을 모두 박씨 가문으로 보내거라. 오늘부터 내 인장이 없으면 상단 장부에 그 어떤 외상도 올리지 못하게 하거라."

김연우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혼례가 한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장부를 정리하겠다는 것이냐? 온 경성 사람들이 후작가를 비웃는 꼴을 보고 싶은 것이냐?"

나는 상단 패를 소매 안에 넣었다.

"그저 지난 팔 년 동안 제가 세상 물정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얼마나 먹여 살렸는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임지헌은 입술을 깨물고 병풍 뒤로 들어갔다.

김연우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박서윤, 너는 돈밖에 모르니 지헌이가 어려운 처지에서도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온 고충을 이해할 리 없겠지."

창밖에서는 사람들이 비단을 나르고 있었고, 주판알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김연우가 몰락했을 때 박씨 가문의 상점에서 장부 보는 법을 배웠던 일을 떠올렸다.

처음 주판을 잘못 튕겼던 날, 나는 그의 손을 잡고 한 항목씩 손익을 가려 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제 그는 계산할 줄 알게 되었다.

다만 내가 베푼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임지헌이 쓴 돈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듯 여길 뿐이었다.

나는 돌아서기 전 탁자 위에 놓인 혼례복 치수표를 챙겼다.

"세자의 혼례복은 더 이상 맡지 않겠습니다."

그는 나를 따라 나오지 않았다.

저택으로 돌아온 나는 박씨 가문을 따라 경성으로 올라온 세 명의 나이 든 상인을 불러, 그동안 후작가에 들어간 은전과 증서를 모두 펼쳐 놓았다.

당장 모든 돈을 거둬들이지는 않았고 먼저 아직 지급되지 않은 자금부터 끊었다.

상단 패를 회수하고, 후작가의 이름으로 외상 거래한 장부도 따로 정리해 봉해 두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나니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혼례복 도안은 여전히 탁자 한쪽에 놓여 있었다.

일곱 번이나 고쳐 만든 도안이었다. 김연우가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 옷깃에는 구름무늬만 수놓기로 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다 장부 가장 아래에 넣어 두었다.

그때 한 주인장 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가씨, 후작가에서 겨울에 쓸 은전을 받으러 오면 어찌 합니까?"

나는 내 인장을 힘주어 찍었다.

"박씨 가문은 후작가의 곳간이 아니라고 전하거라."

선명한 붉은 인주가 종이 위에 찍혔다. 팔 년이나 늦게서야 지출을 막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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