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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혼약, 다시 찾은 삶제1화

이 화는 약 2940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나와 절친한 벗은 경성의 귀한 집안 아가씨들 사이에서도 성정이 정반대인 것으로 유명했다.

그녀는 혼례복을 세 번이나 찢어 버릴 만큼 혼인을 거부했고, 명문가들 사이에서는 혼인할 뜻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불문에 귀의해 평생을 보내겠다고 맹세했다.

반면 나는 몰락한 후작 가문의 세자와 팔 년째 혼약을 이어 오며, 어른들 눈에는 더없이 얌전하고 반듯한 예비 신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궁중 국화 연회에서 그녀가 술기운을 빌려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

"내가 아무래도 미친 모양이구나.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손수 음식을 지어 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내 이런 성정까지 이해해 주니 참으로 기쁘구나."

나는 웃으며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주고 축복했다.

"네가 원한다면, 두 사람이 백년해로하기를 빌어 주마."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녀에게 자신이 들고 있던 꽃가지를 마음에 둔 사내에게 건네게 했다.

그때 병풍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이런 자리를 싫어하는 줄 알고, 곁채에 네가 좋아하는 과자를 따로 준비해 두었다."

나는 그 자리에 굳었다.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린 순간, 그곳에 서 있던 사람은 내가 팔 년을 기다렸고 다음 달이면 나를 부인으로 맞이할 세자였다.

늘 자유만을 바라던 그녀는 어느새 마음을 줄 사람을 찾은 뒤였다.

모든 일이 지나고 나니, 결국 홀로 남은 것은 나였다. 돌이켜 보니, 지난 팔 년은 한낱 헛된 꿈에 불과했다.

* * *

김연우가 병풍 뒤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여전히 흰 비단 도포를 입고 있었고, 옷깃은 흐트러진 곳 하나 없이 단정했다.

나를 본 순간 그의 걸음이 잠시 멎었다. 하지만 이내 동요를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임지헌의 손에서 꽃가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순식간에 술이 깬 듯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더니, 황급히 내 소매를 붙잡았다.

"서윤아, 내가 술에 취해 정신이 흐렸다. 그저 너와 연우의 사이가 굳건한 게 부러워서 해서는 안 될 착각을 했을 뿐이다."

연우라는 이름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나는 손가락을 살짝 말아 쥐었지만 그녀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방금 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손수 밥을 지어 주고 싶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 마음도 착각이었느냐?"

임지헌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김연우가 한 걸음 옆으로 나서며 그녀를 등 뒤로 감쌌다.

"지헌이가 술을 못 마시는 걸 뻔히 알면서 어찌 말리지 않았느냐?"

나는 그를 바라보며 잠시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 연회에서 술을 직접 따른 사람은 임지헌이었다.

모처럼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났으니, 오늘만큼은 마음 놓고 즐기고 싶다고 했다.

김연우는 내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손목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내가 살짝 피하자 그는 손을 허공에서 멈췄다가 천천히 거뒀다.

"사람이 많으니 일을 크게 만들지 말거라. 돌아가면 내가 설명하마."

그 말은 팔 년 전과 똑같았다.

당시 후작가가 죄에 연루되자 찾아오던 손님들의 발길이 모두 끊겼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게 파혼하라고 권했다.

열다섯 살의 김연우는 박씨 가문 저택 앞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날이 밝은 뒤, 오래되어 닳은 옥 장식 하나를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지금 아무도 나를 믿어 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를 기다려 주기만 한다면, 이 혼약으로 평생 네가 불행해지는 일은 없게 하겠다."

나는 팔 년을 기다렸다.

그가 다시 세자의 옷을 입는 날까지 기다렸고, 점점 내 체면을 내세워 다른 여인을 감싸는 모습까지 보게 되었다.

임지헌이 김연우의 뒤에서 손을 뻗어 다시 나를 붙잡으려 했다.

"네가 마음에 걸린다면 앞으로는 연우를 만나지 않을게. 부디 나 때문에 혼사를 망치지는 말거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몸이 가볍게 휘청거렸다.

김연우는 곧바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부축하고는 낮은 목소리로 사람을 불러 술을 깨는 탕약을 가져오라 했다.

임지헌이 제대로 서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말투에는 이미 짜증이 묻어 있었다.

"지헌이는 본래 자유분방한 성정이라 서러운 일을 잘 견디지 못한다. 넌 앞으로 정실이 될 사람이니 사람을 포용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지헌이.'

나는 그가 나를 서윤이라 부르는 것도 들어 봤고, 병으로 정신이 흐릿할 때 몇 번이고 내 이름을 부르는 것도 들어 봤다.

그때는 호칭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가장 짧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 길도 오래 걷다 보면 다른 사람에게 닿는구나.'

"알겠습니다."

나는 허리를 굽혀 꽃가지를 주워 탁자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오늘 일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김연우는 골치 아픈 일이 마침내 무사히 정리된 듯 미간을 폈다.

그는 사람을 시켜 임지헌을 연회 자리로 돌려보낸 뒤 직접 나와 함께 궁을 나섰다.

마차 안에서 그가 비단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며칠 전 네 생일에 밖에서 볼일을 보느라 돌아오지 못했다. 이 비녀는 선물이다."

상자 안에는 백옥으로 만든 매화 비녀가 들어 있었다.

그 순간 비단함에서 은은한 침향 냄새가 풍겼다.

임지헌이 평소 침향이 든 연지와 분을 즐겨 쓴다는 사실은 경성의 귀한 집안 아가씨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나는 상자를 닫아 그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

"직접 고르신 것입니까?"

김연우는 비단 상자를 힐끗 보았다.

"마침 지헌이가 상점에 있었다. 이런 것은 나보다 보는 눈이 좋으니 말이다."

마차 바퀴가 궁궐 길을 지날 때마다 상자 속의 옥비녀가 가볍게 부딪혔다.

그는 내가 예전부터 좋아하던 것을 기억해 선물을 준비했지만, 그것을 고르는 일조차 다른 여인의 손을 빌렸다.

"혼례 전 한 달 동안은 지헌이와 단둘이 만나지 마십시오."

이것이 내가 그에게 내어 준 마지막 기회였다.

김연우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바람에 들린 마차 휘장을 여며 주었다.

"알아서 잘 처신할 테니 너도 지헌이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거라."

나는 비단 상자를 자리에 남겨 둔 채 홀로 마차에서 내렸다.

뒤에서 김연우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서윤아, 비녀 하나 가지고 어찌 그리 따지는 것이냐?"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세자께서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신다면, 소중히 여길 사람에게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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