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에 갇힌 거짓말제2화
이 화는 약 2201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이수정은 한숨을 내쉬며 컴퓨터에서 내 인사 기록을 열었다.
“지아 씨가 X국에서 보낸 5년은 본인이 자원해서 파견을 신청했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맡은 업무를 무사히 마친 걸로 기록되어 있어요.”
“맞아요.”
“그런데...”
이수정이 목소리를 낮췄다.
“지아 씨가 주도했던 세 가지 프로젝트 있잖아요. 성과 보고서에는 전부 임유라 씨가 책임자로 올라가 있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럴 리가요. 그건 제가...”
“지아 씨가 직접 서명해서 동의한 거예요.”
이수정이 파일 하나를 열어서 내 쪽으로 돌려놓았다.
“보세요. 5년 전에 작성된 합의서예요. 프로젝트 성과를 팀 전체가 공유하는 데 동의한다고 지아 씨가 서명했어요.”
분명 내 서명이었다.
하지만 이런 서류에 서명한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때 워낙 급하게 떠났잖아요. 서류 대부분은 대표님이 대신 처리해 주셨고요.”
이수정은 뭔가 더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지아 씨, 어떤 일들은... 됐어요. 일단 자리로 가세요.”
5년 만에 돌아온 내 자리는 사무실 구석, 프린터 바로 옆이었다.
책상 위에는 잡동사니가 잔뜩 쌓여 있었다.
동료들은 내 옆을 지나가면서 못 본 척하거나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다.
박나미만 다가와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지아 씨, 왜 돌아왔어요?”
“프로젝트가 끝났어요.”
“그럼...”
박나미는 임유라의 사무실 쪽을 한번 바라봤다.
“조심해요. 유라 씨가 지금 팀장이잖아요. 게다가 대표님이 남편이기도 하고요.”
나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알아요.”
오후가 되자 핸드폰이 울렸다.
심도윤이었다.
받지 않았다.
하지만 곧 다시 전화가 걸려 왔고, 연달아 세 번이나 울렸다.
네 번째 전화가 왔을 때야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지아야, 우리 얘기 좀 하자.]
“할 말 없어.”
[유라가 둘째를 임신했는데 상태가 좀 안 좋아. 의사가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된대.]
심도윤의 목소리에는 피곤한 기색이 묻어났다.
[그래서 말인데... 당분간 유라 눈앞에만 안 나타나 주면 안 될까?]
그때 핸드폰 너머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엄마가 토해요!]
[알았어, 갈게.]
심도윤은 다급하게 말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해 줘. 부탁이야.]
전화가 끊어졌다.
한동안 꺼진 핸드폰 화면만 바라보다 문득 5년 전이 떠올랐다.
인사 발령이 났던 날, 나는 울면서 심도윤에게 전화했다.
[기다려. 금방 갈게.]
잠시 후 달려온 심도윤은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다녀와. 경험 쌓는다고 생각해. 기다리고 있을게. 돌아오면 우리 결혼하자.”
그날 심도윤에게서는 희미한 향수 냄새가 났다.
평소 그가 쓰던 것과는 다른 향이었다.
이제야 알았다.
그게 임유라의 향수 냄새였다는 걸.
나는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검사 결과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서지아 씨, 검사 결과가...”
“그냥 말씀해 주세요.”
“자궁내막증이 있고, 난소 기능도 많이 저하된 상태입니다.”
의사가 안경을 고쳐 썼다.
“자연 임신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입니다.”
검사 결과지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종이 모서리를 깊이 파고들었다.
“근무 환경 때문인가요?”
“장기간 고강도 업무를 하셨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셨죠. 그런 생활을 오래 버틴 것도 몸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됐을 겁니다.”
의사가 잠시 말을 멈췄다.
“아직 젊으시니까 지금부터 꾸준히 치료하고 관리하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진료실을 나와 보니 복도에는 임산부 몇 명이 앉아 있었다.
배를 쓰다듬으면서 웃는 얼굴들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였다.
한 남자는 아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배에 귀를 대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의 곁을 지나서 비상계단의 문을 열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울면 안 돼.’
‘울면 지는 거야.’
사흘 뒤, 회사에서 송년회가 열렸다.
애초부터 갈 생각이 없었지만 박나미가 말했다.
“지아 씨도 오래 근무했는데 빠지면 보기에 안 좋아요.”
나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행사장 구석에 서 있었다.
조명은 밝았고 음악은 시끄러웠다.
잠시 후 심도윤과 임유라가 팔짱을 낀 채 입구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 몰려갔다.
“대표님, 유라 씨, 축하드려요!”
“둘째까지 생기셨다니 정말 경사네요!”
임유라는 웃으며 감사하다고 인사했고, 한 손은 계속 배 위에 올려 두고 있었다.
심도윤은 임유라의 허리를 감싼 채 다정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그때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슬쩍 눈짓했다.
웃음소리가 잠시 끊어졌다.
하지만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임유라가 불러온 배를 감싸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지아 씨, 오랜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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