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바람에 갇힌 거짓말제1화
이 화는 약 2150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5년간의 해외 파견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나는 공항을 나서면서 심도윤이 약속대로 청혼해 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를 마중 나온 심도윤의 얼굴은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
“지아야, 미안해.”
내가 당황할 틈도 없이 그가 곧장 말을 이었다.
“그 인사 발령... 사실은 내가 뒤에서 손을 써서 일부러 널 X국 프로젝트로 보낸 거야. 유라와 같이 있으려고...”
“그때 유라가 임신해서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순간 말문이 턱 막혀서 한동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번질 때까지.
거센 모래바람과 숨이 막히는 더위 속에서 하루 16시간씩 뼈 빠지게 일했던 5년.
그 모든 시간이 처음부터 심도윤이 치밀하게 파놓은 덫이었다.
“넌 성격도 불같고 막무가내잖아. 유라가 상처받을까 봐 걱정됐어.”
“용서를 받자고 털어놓는 게 아니야. 그냥 네가 알고 차분하게 받아들였으면 해서 말하는 거야. 괜히 일 크게 만들지 말고.”
마치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구는 뻔뻔한 말투였다.
심도윤이 내게 손을 뻗었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눈가가 뜨거워졌지만, 기가 차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심도윤, 원래라면 우리는 좋게 끝낼 수도 있었어. 그런데 네가 스스로 그 기회를 걷어찬 거야.”
* * *
심도윤의 차는 내가 탄 택시 뒤를 줄곧 따라오더니 몇 번이나 헤드라이트를 깜빡였다.
기사가 백미러로 나를 힐끗 봤다.
“아가씨, 뒤에 저 BMW가 계속 따라오는데 아는 사람이에요?”
나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았다.
“아니요.”
“그럼 떼어 드릴까요?”
“괜찮아요. 저 사람도 제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요.”
아파트는 5년 전 그대로였다. 엘리베이터 안의 광고판만 바뀌어 있었다.
캐리어를 끌고 현관 앞에 도착해서 열쇠를 꺼냈다.
열쇠를 꽂으려던 순간, 안에서 문이 열렸다.
임유라가 실크 잠옷 차림으로 서 있었다. 품에는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안겨 있었다.
나를 본 임유라는 잠깐 놀란 표정이더니 금세 웃었다.
“돌아오셨네요.”
아이는 임유라의 목을 끌어안은 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엄마, 이 아줌마 누구예요?”
“예전에 여기 살던 아줌마야.”
임유라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나를 바라봤다.
“들어와서 잠깐 앉을래요? 도윤 씨한테 오늘 돌아온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나는 임유라의 뒤로 보이는 거실을 바라봤다.
벽에는 두 사람의 결혼사진이 걸려 있었고, 소파도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베란다에는 아이 옷이 널려 있었다.
“여기...”
“제 집이에요.”
임유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 말을 끊었다.
“5년 전부터요. 도윤 씨가 이 집을 넘겨받자마자 저한테 들어와 살라고 했어요.”
캐리어를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지아 씨가 X국으로 떠나면 결혼하자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몸을 비틀며 내려가겠다고 보챘다.
임유라가 아이를 내려놓자, 아이는 곧장 거실의 장난감 상자로 달려갔다.
임유라는 문틀에 기댄 채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살이 많이 빠졌네요. X국 생활이 많이 힘들었죠?”
나는 캐리어 손잡이를 꽉 쥐었다.
“도윤 씨는 이따 들어와요?”
“모르겠는데요.”
임유라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도윤 씨는 왜 찾으세요? 돈이라도 받으려고요? 아니면 따지러 온 거예요?”
“아무것도 안 바라요.”
“그럼 왜 돌아왔어요?”
말끔하게 관리된 임유라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제 걸 되찾으러 왔어요.”
임유라가 웃었다.
“지아 씨 물건이 아직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옷은 진작에 버렸고, 책은 도윤 씨가 자리만 차지한다고 해서 다 팔았어요. 아, 그리고 키우던 화분도 전부 죽었어요.”
잠시 뜸을 들인 임유라가 덧붙였다.
“제가 일부러 물을 안 줬거든요.”
나는 돌아서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뒤에서 임유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아 씨, 괜히 일을 크게 만들지 마세요. 지금 지아 씨한테 남은 게 뭐가 있다고 그래요? 어차피 저를 못 이겨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차가운 금속 벽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5년.
나는 그 시간을 내 커리어를 쌓는 5년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동안 두 사람은 내가 돌아갈 자리에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다음 날, 복귀 절차를 밟으러 회사에 갔다.
인사팀의 이수정이 나를 보더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지아 씨, 자리 말인데...”
“알아요. 제 자리, 지금 임유라 씨가 맡고 있죠.”
나는 캐리어를 구석에 세워 두었다.
“괜찮아요. 일반 업무로 배정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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