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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혼만 남게 된다면제2화

이 화는 약 1963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병상에 누운 내가 고통으로 몸부림칠 때 이도진은 몇십만 원 하는 PCIA를 내게 써줄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한라희가 간호사의 시선을 피해 그에게 고개를 내젓자 이도진은 끝내 나의 고통을 무시한 채 단돈 몇십만 원을 아끼려 들었다.

나는 점점 의식이 흐릿해지고 온몸의 세포가 외쳐대는 것만 같았다.

PCIA 달라고, 나 혼자 그 돈 낼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온몸의 기운이 쫙 빠진 채 무기력하게 이도진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나와 함께 분만실에 들어오는 걸 포기했다.

내 아이는 배 속에 있었고, 남편이란 자는 분만실 밖에, 친정엄마는 병원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아파트에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나의 사활에 관심이 없었다.

친정엄마마저 우리 오빠네 아이를 돌봐준다면서 날 보러 오지 않았다.

내가 아이를 낳고 병원에 입원해 있던 한 달 내내 엄마는 단 한 번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다.

한편 식사 자리에서 내연녀는 아예 젓가락을 들지도 않았다.

이도진이 정성껏 음식을 집어주자 열성적으로 반겨주는 척하던 한라희도 끝내 본심을 드러냈다.

“이서야, 들어와서 나랑 함께 설거지해.”

“싫어요, 나 안 할래요.”

한라희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유이서를 쳐다봤다.

이에 유이서는 흐뭇해하며 이도진의 어깨에 기댄 채 거들먹거리면서 웃었다.

“아줌마, 나 임신했잖아요. 만에 하나 손에 물이 닿았다가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아줌마가 책임질래요?”

한라희는 어이가 없어 얼굴이 다 벌게졌다.

“임신이 뭐 벼슬이야? 설거지 안 하는 며느리가 어디 있다고 그래?”

“애까지 뱄으면서 우리 도진이한테 시집 안 오면 대체 누가 널 데려가겠니?”

이 말을 들은 유이서가 피식 웃었다.

“아이는 내 마음먹기 나름이죠. 싫으면 언제든지 떼버릴 수 있잖아요.”

“근데 도진 씨, 진짜 날 사랑하긴 하는 거야? 당신 엄마가 이렇게 날 괴롭히는데 계속 지켜보기만 하겠어?”

이도진은 순간 안쓰러운 표정으로 유이서를 품에 와락 안았다.

“엄마, 말이 너무 지나치잖아요. 이서가 임신했는데 엄마가 설거지 좀 해주면 안 돼요? 우리 이서 그만 괴롭혀요.”

유이서는 그의 품에 기대서 애교를 부렸고 한라희는 마지못해 주방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떠나갈 때 한라희는 속으로 이를 박박 갈았다.

자리를 떠난 유이서가 금세 한라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중에 저희 결혼하거든 절대 아줌마랑 함께 지낼 리 없어요. 그러니 미리 짐 싸서 나가주시죠. 우리 결혼식만 지체할라.]

근처 공원에 나온 한라희는 이웃에게 무려 두 시간이나 푸념해댔다. 줄곧 들어주던 이웃 아줌마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되물었다.

“당신 남편도 당신 임신했을 때 설거지 안 시켰잖아. 뭣 하러 며느리한테 강요하고 그래?”

“설거지하는 게 뭐가 덧나? 지유 그년은 임신 때 집안일을 거의 다 했어...”

결국 한라희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챘는지 말끝을 흐렸다.

서로 티격태격하는 한라희와 유이서의 모습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유이서의 표정을 따라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말이다.

그러니까 유이서는 한 성격하기에 감히 건드릴 수 없고 나는 만만하니까 제멋대로 짓밟은 걸까?

한라희는 문득 고분고분 말만 잘 듣던 내가 그리웠나 보다.

“그렇지만.”

하지만 갑자기 태도가 확 돌변하는 그녀였다.

“그년은 우리 집에 빌붙어 사는 신세라 집안일까지 안 하면 너무 날로 먹는 거지.”

나는 습관처럼 아예 못 들은 척했다.

나의 시어머니는 늘 이런 식이다. 애초에 나를 며느리로 들이려고 어떻게 어르고 달랬든지 까맣게 잊은 채, 결혼 뒤에 나를 얼마나 모질게 대했든지 까맣게 잊은 채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은 이 말 한마디뿐이다. 지유 그년은 애나 보는 가정주부라고...

한때 거액의 연봉을 받던 시절을 강제로 잊게 하고, 눈부시게 빛나던 나의 가치를 까마득히 잊게 하고는 제멋대로 나를 짓밟으며 야유를 퍼부었고 결혼이라는 무덤에 깊게 파묻은 후 이 한마디만 내던졌다.

“여자는 원래 다 이렇게 사는 거야.”

결국 결혼 뒤에도 이 말 한마디가 정정당당한 이유가 되어 나를 모질게 구박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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