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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 네 부서진 왕관을 원하지 않아제2화

이 화는 약 2513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연우는 늘 나를 두고 '직접 굴러 들어온 새장 속 새'라고 불렀다.

그를 만나기 전, 나는 그저 연예계 변두리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던 무명 배우였다.

기름진 중년 스폰서들의 품을 전전하며 남은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연말 시상식 뒤풀이 자리, 연우가 개인 화장실로 향하는 틈을 타 그의 앞을 가로막고 내 소개를 건넸다.

어두운 조명 아래, 연우는 손가락 끝에 끼워진 담배 연기 사이로 오만하게 나를 훑어내렸다.

그리고 말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내 밑으로 들어오겠다고? 감당할 수 있겠어?"

그날 이후, 화면 위에서 반짝이던 여배우의 얼굴은 사라졌다.

그리고 서연우의 저택에는 말 잘 듣는 작은 새 한 마리가 갇히게 되었다.

비서가 계약서를 건네며 흘리던 부러움 섞인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했다.

"임가은 씨, 아주 운이 좋으시네요. 서 대표님은 그 누구도 밤늦게 곁에 머물게 두지 않으시는 분이거든요."

밤새도록 그와 처음 만났던 순간의 꿈을 꾸다 깨어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호텔 신부 대기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화려한 예식도, 나를 데려갈 신랑도 보이지 않았다.

이내 서그룹의 나이 지긋한 집사가 다가와 멸시가 담긴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임가은 씨, 사모님께서 어젯밤 다급히 역술인을 불러 궁합을 다시 보셨습니다."

"오늘 기운이 아주 흉하여 혼사를 치르기에 부적절하다고 하시는군요. 결혼식은 일단 연기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나는 억지로 미소를 유지하며 고개를 숙였다.

재벌가에 순수한 사랑 따위가 존재할 리 없다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거대한 자본과 권력 사이에서 힘없는 자가 치러야 할 대가일 뿐이었다.

휑한 대기실 안에는 에어컨 바람만이 시리도록 차갑게 불고 있었다.

소파에는 초조하게 굳어 있는 내 부모님과, 나를 축하해 주기 위해 먼 길을 날아온 몇 안 되는 친구들이 앉아 있었다.

나는 간신히 품위를 지키며 그들 앞으로 걸어갔다.

"엄마, 아빠, 죄송해요. 식에 차질이 생겨서요..."

나는 허리를 굽혀 고개를 깊이 숙였다.

부모님은 안절부절못하며 손만 비볐고, 친구들은 어색한 침묵 속에서 수근거렸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남편이 될 남자가 누구인지 제대로 말하지 못했었다.

갑작스럽게 대단한 사람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다가, 이제는 그 결혼이 무산되었다는 비참한 현실을 고해야 했다.

자존심이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되어 바닥에 사정없이 흩뿌려진 기분이었다.

부모님을 달래기도 전에 문이 거칠게 열렸다.

강렬한 붉은색 명품 드레스를 입은 채원이 거만한 걸음으로 들어와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무슨 식장 준비에 차질이 생겼다는 헛소릴 믿어?"

"서 회장님이 내가 돌아온 걸 아시고, 널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신 거야!"

내가 사색이 되어 굳어 있자, 그녀는 더욱 의기양양하게 다가와 이죽거렸다.

"회장님께서 그러시더라. 돈으로 몸뚱이 산 연예인 따위가 감히 드레스를 입고 서 씨 가문의 안주인 자리를 탐내냐고."

어머니의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고, 아버지는 분노로 온몸을 부르르 떨며 당장이라도 채원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나는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아버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내가 더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뺨이라도 갈겨주려던 찰나, 크고 따뜻한 손이 내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어느새 도착한 연우가 나를 등 뒤로 숨기며, 살기 띤 눈빛으로 채원을 노려보았다.

"누가 이 여자를 안으로 들여보냈지? 한 번만 더 이딴 분풀이를 했다간, 다시는 이 바닥에 발도 못 붙이게 만들어 주마."

채원은 순식간에 안색이 변했고, 이내 경호원들의 손에 붙잡혀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밖으로 끌려 나갔다.

무거운 정적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연우는 내 부모님 앞에서 내 손을 꼭 쥐며 나직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실은 식을 미룬 진짜 이유는, 가은이가 제 아이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산모의 안정이 최우선이라 판단되어, 결혼식은 아이의 백일잔치와 함께 올릴 생각입니다."

* * *

하객들이 모두 떠나고 대기실에는 우리 둘만 남았다.

나는 아직 평평한 아랫배를 나도 모르게 어루만지며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억눌렀다.

"서연우, 방금 어른들 앞에서 한 말... 진심이야?"

피곤한 듯 미간을 짚고 있던 연우가 동작을 멈추었다.

그는 내 배 위에 얹어진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내 비웃음이 섞인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임가은, 설마 진짜로 내 아이라도 낳을 생각이었어?"

내가 당황해 진실을 말하려던 순간, 그의 싸늘한 조소가 내 귓가에 꽂혔다.

"오늘 내가 그 말을 지어내지 않았다면, 내일 아침 서그룹의 주가는 예비 며느리를 내쫓았다는 스캔들로 곤두박질쳤을 거야."

"그리고 채원이가 나갈 때 충분히 비참해 보였잖아. 질투심에 며칠 밤은 지새우게 만들어야 버릇이 들지."

순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 내리는 기분이었다.

사색이 된 내 얼굴을 보며, 그는 장난감을 다루듯 가벼운 어조로 덧붙였다.

"스폰서나 받고 살던 애가 주제넘게 감정을 품고, 아이까지 낳아 안주인이 되려 하다니. 그런 소설 같은 일이 실제로 있을 법해?"

"임가은, 너랑 나는 원래 사는 세상이 달라. 내가 지불한 돈에는 네 감정 값 따윈 포함되어 있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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