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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제 네 부서진 왕관을 원하지 않아제1화

이 화는 약 2631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상류층 스폰서 세계에는 누구나 알면서도 쉬쉬하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서그룹의 젊은 대표, 서연우가 그의 첫사랑에게 화풀이를 하기 위해 지난 5년 동안 곁에 끼고 살던 여자와 결혼하려 한다는 소문이었다.

그의 널찍한 침실, 연우는 내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으며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

"가은아, 벌써 5년이야. 이제는 남채원의 얼굴조차 가물가물해."

"결혼해서 내 아이를 낳아줘. 우리 이제 평범하게, 예쁘게 살자."

그의 빛나는 눈동자 속에 소용돌이치는 애정을 바라보며, 나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온 마음을 다해 그의 곁을 지켰으니, 마침내 연우의 차가운 마음을 녹인 줄만 알았다. 정말 그런 줄로만 믿었다.

하지만 결혼식을 바로 앞둔 그날 밤, 신혼집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이혼하고 막 귀국했다는 그의 첫사랑, 채원이 방 안에서 그를 향해 날카롭게 쏘아붙이고 있었다.

"서연우, 나를 붙잡겠다고 겨우 그런 싸구려 여자랑 결혼해서 나를 모욕하려는 거야?"

내가 5년 동안 사랑했던 남자는 그 소리를 듣고 콧방귀를 뀌더니, 이내 더 낮고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때 넌 그 자식 손을 잡고 아주 미련 없이 떠났잖아."

"이제는 너도 똑같이 당해봐야지. 내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기분이 어떤지 말이야."

방 안에서 이어지는 나지막한 대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울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그날 밤, 나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그저 내가 마음을 정하고 떠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 * *

방 안에서 채원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지며 떠보는 듯한 어조로 변했다.

"연우야, 네가 정말 사랑하는 건 나잖아. 임가은이라는 그 여자한테 너무 불공평한 짓 아니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의 낮고 무거운 숨소리가 들려왔다.

"설령 가은이에게 느끼는 감정이 그저 호감일 뿐이라 해도, 난 결혼할 거야."

"적어도 그 애는 날 등지고 다른 남자와 떠나지는 않으니까. 그것도 무려 5년 동안이나 말이지!"

연우의 목소리가 가라앉자, 방 안을 감돌던 묘한 공기는 순식간에 빙점 아래로 얼어붙었다.

이내 채원의 표독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서연우! 난 오직 너 때문에 남편이랑 이혼까지 하고 돌아왔어."

"그런데 정말로 내일 그 여자랑 식장에 들어가겠다는 거야?"

짧은 침묵 끝에 옷가지를 매만지는 사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 연우의 목소리는 평소의 그 냉정한 톤을 되찾고 있었다.

"채원아, 네가 나타나기만 하면 내 마음이 쉽게 바뀔 거라고 생각한 거야?"

"내일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해."

"하객석에 앉아, 내가 가은이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봐."

문밖에 서 있던 내 손에는 방금 병원에서 받아 든 검사 결과지가 쥐어져 있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고, 내게는 저 문을 열고 들어갈 자격조차 없었다.

마침내 고통의 끝에 찾아온 행복이라 믿었던 지난 5년의 동행.

하지만 연우에게 그것은 그저 옛 연인에게 복수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나는 악을 쓰며 방 안으로 처 들어가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았다.

대신 손에 쥐고 있던 종이를 옆에 놓인 쓰레기통에 조용히 밀어 넣고, 이내 차가운 가을바람이 부는 서울의 밤거리로 걸어 나갔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연우는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를 보자마자, 그는 아이처럼 자랑스럽게 포장된 리시안셔스 꽃다발을 내밀었다.

"가은아, 식장 전체가 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리시안셔스로 가득 찼어."

"내일 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될 거야."

말을 마친 그는 뒤에서 나를 품에 꼭 안으며, 갈구하듯 내 머리칼에 턱을 비벼댔다.

"역시 네 곁에 있을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해."

"임가은, 넌 평생 내 곁을 떠나지 않을 거지?"

나는 그 품에 안긴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만약 신혼집 문틈으로 흘러나온 채원과의 대화를 듣지 못했더라면, 나는 또 그가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피곤했을 거라며 마음을 쓰고,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굳게 믿으며 스스로를 위로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가까워질수록, 내 코끝을 찌르는 낯선 여자의 짙은 향수 냄새를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지난 세월 동안 철저히 길들여진 나의 인내심으로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미동 없이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허공에 머물던 연우의 팔이 어색하게 굳어졌다.

"지난달에 선물했던 넥타이핀은 어디 갔어?"

그의 눈을 바라보며 최대한 담담하게 물었다.

아주 잠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그는 이내 태연한 척 내 귓가를 어루만졌다.

"아, 술자리가 길어져서 어디 흘렸나 봐. 내일 비서 시켜서 찾아볼게."

그의 손길을 피하지 않은 채, 나는 오랫동안 높은 자리에 머물며 오만함이 몸에 밴 그의 눈을 묵묵히 응시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서연우, 남채원 씨가 너 때문에 이혼까지 하고 돌아왔잖아."

"내일 결혼식, 취소하자."

그 순간, 연우의 입꼬리에 걸려 있던 미소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5년 동안 늘 온순하게 굴던 내가 먼저 이 판을 깨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듯했다.

눈동자에서 다정함이 서서히 걷히고, 낯선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임가은, 내 결혼식은 네가 취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야."

"너답지 않게 왜 이래? 서그룹 사모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네가 가장 잘 알 텐데."

그는 한 걸음씩 다가오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짓눌렀다.

"마지막 순간에 네 분수를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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