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추석, 나는 이 집을 버렸다제2화
이 화는 약 1956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다음 날 동이 트자, 나는 흙과 물에 젖은 바짓단을 질질 끌며 첫차 버스에 올라탔다.
기사님에게 부탁해서 핸드폰을 충전할 보조배터리를 빌렸다.
하룻밤 내내 꺼져 있던 핸드폰을 켜자, 가족 단톡방에 메시지가 100개 넘게 쏟아져 있었다.
하지연이 올린 달구경 사진도 있었고, 부모님이 보내주신 추석 용돈 이야기도 있었다.
주호민이 직접 만든 요리 사진도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내게 개인적으로 연락이 온 건 회사뿐이었다.
[며칠 동안은 출근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에 가면 10년 동안 파견 근무하게 되니, 돌아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세요. 모레 정시에 출발합니다.]
나는 집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손에는 테마파크 입장권 5장이 들려 있었다.
한 달 내내 야근해서 번 돈으로 가족 모두를 위해 준비한 추석 선물이었다.
원래는 다 같이 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내 몫 한 장만 남기고, 나머지 4장은 문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문이 갑자기 안에서 열렸다.
하지연이 내 손목을 잡더니 거칠게 안으로 끌어당겼다. 주호민은 기다렸다는 듯 내 머리 위로 양동이에 담긴 찬물을 들이부었다.
온몸이 흠뻑 젖은 나는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하지연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난 언니가 먼저 울 거라고 했어!”
주호민이 나지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난 지아가 먼저 화를 낼 거라고 했고.”
부모님은 물에 흠뻑 젖어 꼴이 말이 아닌 나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서 지아 반응 좀 보자. 내기에서 진 사람은 딱밤 세 대씩 맞기!”
그제야 네 사람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향했다.
하지만 나는 울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대신 피가 배어 나오는 상처를 꾹 참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하지연의 이마 앞에 손을 내밀었다.
“다들 졌네. 한 사람당 딱밤 세 대야.”
하지연은 본능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비명을 질렀다.
“아!”
주호민이 순간적으로 나를 거칠게 밀쳤다.
“하지아, 너 뭐 하는 거야?!”
부모님도 새끼를 감싸듯 하지연을 두 사람 사이에 꼭 끌어안았다.
“이게 그렇게까지 따질 일이야? 가족끼리 장난치고 웃고 그러는 거지. 너만 왜 그렇게 사소한 걸 가지고 난리야?”
사실 나는 하지연의 이마에 딱밤을 때릴 생각이 없었다.
만약 다친 사람이 하지연이었다면, 가족들도 이렇게 재미있어했을지 알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 그 답은 알았다.
바닥에 떨어진 테마파크 입장권 네 장은 물에 젖어 엉망이 된 채 사람들의 발에 짓밟히고 있었다.
하지연은 내가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보다가 입장권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게 마음에 걸렸다고 생각했는지 발끈했다.
“고작 이런 종이 쪼가리 몇 장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 부모님이 진작에 나 데리고 갔다 왔거든.”
“장난도 못 하는 주제에!”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허공에 내민 손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늘 동생처럼 부모님을 웃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달 부모님이 무심코 흘리듯 말했던 말을 기억해 두었다.
“언젠가 가족끼리 테마파크에 가고 싶네.”
그런데 알고 보니 부모님은 이미 다녀온 뒤였다.
결국 그 사람들이 말하는 ‘가족’에 처음부터 나는 없었던 거다.
부모님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나에게 명령했다.
“지연이가 놀랐잖아. 사과해!”
주호민도 나서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아야, 모레가 약혼식이잖아. 가족끼리 너무 험하게 굴면 너한테도 좋을 게 없어.”
말만 들으면 나를 걱정해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주호민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 하지연의 편이었다.
맞은편에 서 있는 네 사람을 바라보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번에 집에 돌아온 건 주호민에게 약혼을 취소하자고 말하려던 거였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이 약혼식을 이용해서 가족들을 위한 특별히 준비한 나만의 장난을 완성하기로 했다.
나는 옷자락을 꾹 움켜쥐고 하지연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하지연은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흥, 그 정도는 해야지.”
그러고는 뒤돌아서 부모님과 주호민을 바라보며 몰래 웃었다.
“모레 약혼식은 내 장난의 최고 걸작이 될 거야.”
“두고 봐. 제대로 당하게 해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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