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추석, 나는 이 집을 버렸다제3화
이 화는 약 1900자. 본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3화 미리 읽기 중 마지막 화입니다. 이어지는 제4화부터는 공식 앱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주호민이 약혼식 준비를 하지연에게 맡기겠다고 했을 때부터,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몇 번이고 내게 장담했다.
“약혼식도 결혼식이나 다름없어. 평생 한 번뿐인 날이잖니.”
“우리가 어떻게 이런 중요한 날에 지연이가 마음대로 장난치게 내버려두겠어.”
주호민 역시 몇 번이나 나를 설득했다.
“지연이는 그저 네가 준비할 게 많을까 봐 도와주려는 것뿐이야.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예비 신부가 되도록 도와주려는 거야.”
그 말을 믿고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이 하지연과 함께 쇼핑을 나간 사이에, 나는 서랍 깊숙한 곳에서 ‘지아의 행복한 추억’이라고 적힌 USB 하나를 꺼내 들었다.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그리고 영상을 재생한 순간, 스피커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너무나 익숙한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영상 속에는 내가 12살이던 생일날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부모님과 하지연은 번갈아 가며 나를 달래면서 생일 케이크를 먹였다.
나는 입안에 검고 하얀 덩어리를 가득 머금은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아빠... 이 케이크는 뭐로 만든 거예요? 나 진짜 더는 못 먹겠어요.]
내가 케이크를 다 먹자, 10살이었던 하지연은 얼굴이 새빨개질 때까지 웃음을 참더니 결국 폭소를 터뜨렸다.
[소똥이랑 구더기로 만든 거야. 이 멍청이야!]
[우리 언니 진짜 배가 고팠나 봐. 별걸 다 먹네!]
내가 미친 듯이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어서 억지로 토해내는 모습을 보며, 부모님은 핸드폰을 제대로 들지도 못할 만큼 웃었다.
화면은 가족들의 웃음에 따라 계속 흔들렸다.
곧이어 다음 영상이 재생됐다.
잠에서 깼다가 이불 속에 뱀이 있는 걸 발견하고 그대로 기절해 버린 나.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 갇혀 공포에 질린 나.
그리고 내가 짝사랑하던 남학생에 대한 일기를 하지연이 공개해 버려서, 고등학교 3년 내내 ‘두꺼비 언니’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나.
내가 가장 추하고 가장 처참하고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순간들을 하지연은 장난 영상 모음집으로 만들고 특수 효과음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그 영상은 내가 가장 행복해야 할 약혼식 날,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다.
더 끔찍한 건 이 모든 사실을 부모님도 알고 있었고, 주호민 역시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손발이 싸늘하게 식었다.
속이 뒤집히는 듯한 역겨움이 밀려왔다.
결국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 동안 구역질을 하며 토해냈다.
겨우 속이 진정되자,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다시 컴퓨터 앞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영상 파일을 하나씩 삭제했다.
대신 내가 준비해 둔 녹음과 영상을 그 자리에 넣었다.
가족들이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자 엄마가 나를 향해 손짓했다.
“약혼식 드레스 찾아왔어. 한번 입어보렴.”
나는 조심스럽게 드레스를 받아 들었다.
그러자 하지연이 코웃음을 치며 눈을 흘겼다.
“뭘 그렇게 새삼스럽게 굴어. 피해망상도 아니고. 무슨 세상 사람들이 다 너를 괴롭히려고 하는 줄 알아?”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부모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빠, 엄마. 정말 내가 행복하길 바라는 거예요?”
두 사람은 잠시 멈칫하더니 곧 웃었다.
“이 바보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장난은 장난이고, 엄마 아빠가 널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잖니.”
두 사람은 내 손을 잡았고, 마치 내일의 장난 게임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주호민이 다가와 내서 허리를 감싸안았다.
“됐어. 지연이는 원래 저런 성격이잖아.”
“네가 싫다면, 내가 형부로서 앞으로는 지연이한테 제대로 주의를 줄게.”
주호민은 가볍게 한마디로 상황을 넘겼다.
나는 네 사람의 눈빛에 어린 기대감을 모른 척했다.
내일 내가 얼마나 처참하게 망신을 당할지를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말없이 주호민의 손을 허리에서 떼어냈다.
“엄마, 아빠, 고마워. 그리고 지연이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인 만큼, 약혼식 날 나도 모두에게 준비한 선물이 하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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