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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의 겨울을 녹인 기적의 기술제1화

이 화는 약 1764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차가운 독일제 밀링 머신의 금속 표면을 손끝으로 훑었다. 이번만큼은 똑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내 이름은 한서윤. '남겨진 아이'라는 세 글자는 내 골수까지 깊게 박힌 낙인과도 같았다.

내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는 쌍둥이 언니를 품에 안고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었다고 한다. 간호사가 검고 왜소한 나를 뒤늦게 건네기 전까지는. 나를 본 아버지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이게 정말 내 자식이 맞나?"라고 중얼거렸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부모님은 사업을 하겠다며 서울로 상경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넌 착하고 속이 깊잖니. 여기 남아서 아빠가 다니던 공장을 네가 이어받으렴"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언니는 "서윤이는 튼튼하고 힘도 좋으니까 공장이 딱이야"라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지난 생에서 나는 철강 공장의 가장 젊은 여성 밀링공이 되었다. 월급은 한 푼도 빠짐없이 서울로 보내졌고, 그 돈은 그들의 사업 밑천이 되었다.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그들은 시대의 흐름을 타 수천억대 자산가가 되었지만, 정작 나는 대규모 구조조정의 파도 속에서 마지막 남은 퇴직금마저 가족들에게 빼앗겼다.

그 시리고 시렸던 겨울, 나는 고립된 공업 단지의 칼바람 속에서 홀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다. 누군가에게 수혈만 해주다 말라죽는 '혈액 팩'으로 살지 않을 것이다.

내 운명은 내 손으로 직접 고쳐 쓰겠다. 남겨지는 사람이 아닌, 스스로 미래를 향해 걸어 나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코끝을 찌르는 쇠비린내와 귀를 울리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내 눈앞에는 밀링 머신 한 대가 놓여 있었다. 왼쪽 방호판에는 찌든 기름때가 묻어 있었다.

세월이 쌓여 이젠 닦아낼 수도 없게 된 흔적.

지난 생에서 공장장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사용하는 데 지장 없으니 그냥 둬.”

그렇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그 기름때처럼, 나 역시 방치된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그 기름때가 노란 조명 아래에서 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엄지손가락으로 그 미끈거리고 차가운 감촉을 문지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때, 곁에 있던 아버지가 내 어깨를 짚으며 웃으며 말했다.

“공장장님, 보십시오. 이 녀석이 기계랑 궁합이 아주 잘 맞아요!”

“제 자리를 이 녀석한테 물려주면 마음 놓으셔도 될 겁니다.”

안경 너머로 나를 훑어본 왕 공장장이 입을 열었다.

“보통은 큰애가 자리를 물려받는데, 왜 굳이 작은애를 보냅니까?”

아버지의 미소가 살짝 일그러졌다.

“서윤이가 머리가 좀 둔해서요. 공장 들어오는 게 이 녀석에겐 유일한 살길입니다.”

공장장은 말이 없었다. 나는 이대로 내 운명이 결정되었음을 직감했다.

아버지는 서둘러 나를 밀링 머신 쪽으로 밀치며 말했다.

“여기 남아 성실히 일해라. 아빠는 기차 시간 때문에 먼저 간다.”

말을 마친 그는 언니 서나의 손을 잡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떠났다.

언니는 입모양으로 나를 조롱했다. '버려진 자식.'

하지만 내 마음은 평온했다. 나는 오늘이 어떤 날인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1990년 9월 15일.

부모님이 언니를 데리고 서울로 떠난 날.

대한민국이 아시안 게임 준비로 들썩이고, 공장 노동자들이 저녁 메뉴를 고민하며 웃음꽃을 피우던 평범한 날.

하지만 대규모 구조조정과 국가적 경제 위기가 닥치기까지 정확히 7년이 남은 시점이었다.

7년 후면 이곳의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릴 것이다.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나처럼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스러져가겠지.

나는 머리 위 벽면에 붙은 낡은 표어를 올려다보았다.

【땀 흘려 일하는 보람, 건설하는 우리 산업】

7년. 나에게는 이 운명을 뒤집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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