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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당신 몫 나는 다 잊었으니까제1화

이 화는 약 1899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서른?

그 숫자가 거대한 망치처럼 내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찔렀고, 혼탁한 의식 속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익숙한 얼굴, 한설아였다. 그녀는 순백의 원피스를 입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곁에 서 있던 강민재가 안도 섞인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

“준우야, 드디어 깨어났구나.”

“한 달 넘게 혼수상태였어.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하지만 내 시선은 자석에 이끌리듯, 방금까지 맞잡고 있다가 내가 눈을 뜨자마자 감전된 듯 튕겨 나간 두 사람의 손등에 머물렀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한 달이나 누워 있는 동안, 너희는 아예 연애의 결실을 봤나 보네?”

“맞다, 내가 그때 그 산은 위험하다고 했잖아. 그래도 둘 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내 졸업 논문은 어떡해…… 너희 연애하느라 제출하는 거 잊은 건 아니지?”

그때 설아가 억눌린 화를 참지 못하고 날카롭게 내 말을 가로막았다.

“서준우! 제발 정신 좀 차려! 너 서른이야. 졸업 논문이 지금 말이 돼?”

그 한마디가 얼음 송곳처럼 내 뇌를 꿰뚫었다.

내 기억 속의 나는, 분명 이제 막 스물둘이 된 청춘인데.

……

* * *

병실 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정적이 감돌았다.

그제야 나는 침대 머리맡에 선 두 사람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과 설아는 사뭇 달랐다. 훨씬 성숙해졌고, 어딘가 그녀의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이제는 원피스를 입어도 어른 옷을 훔쳐 입은 아이 같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곁에 고요히 서 있는 민재 역시, 늘 티셔츠에 청바지만 걸치던 그 가난한 장학생이 아니었다.

내 시선은 그의 가슴팍에 달린 샤넬 브로치에 멎었다.

기억이 났다. 저것과 비슷한 디자인의 브로치. 내 열여덟 살 생일에 아버지가 선물해주셨던 것과 똑같았다.

민재가 처음 과 대표로 단상에 올라 연설하게 되었을 때, 내가 내 브로치를 빌려줄까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고개를 숙이고 수줍게 웃으며, 두 보조개에 당혹감을 가득 담아 말했었다.

“준우야, 이건 너무 비싸. 내 몇 년 치 생활비나 다름없는 걸 달고 나갈 순 없어.”

그런 그가 지금은 수천만 원짜리 시계를 차고, 명품 가방을 들고, 우아한 향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민재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입술을 달싹이며 변명하려 했다.

나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선수를 쳤다.

“우리 민재, 드디어 원하던 삶을 살게 됐구나. 축하해.”

“그만해!”

설아의 고함이 내 추억을 난폭하게 찢어놓았다. 그녀의 고운 눈썹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서준우, 대체 언제까지 미친 척 연기할 거야? 이러면 내가 다시 널 좋아해 줄 줄 알아?”

“꿈 깨.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나는 황당한 눈으로 설아를 바라보았다.

“네가 나를 왜 좋아해? 이미 민재랑 사귀고 있잖아.”

민재가 드디어 기회를 잡은 듯 입을 열었다. 웬일인지 그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준우야, 내 말 좀 들어봐. 설아랑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우린…… 우린 아무 일도……”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의사가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서준우 환자분, 지금 몸 상태는 좀 어떠신가요?”

나는 베개에 머리카락이 스치는 소리를 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 그런데…… 다들 왜 저보고 서른이라고 하는 거죠? 올해 2018년 아닌가요?”

“의사 선생님, 환자한테 이런 장난은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의사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결국 설아와 민재는 병실 밖으로 쫓겨나듯 나갔다.

그 뒤로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가 내 곁을 오갔다.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자취를 감출 때쯤, 그들은 결론을 내렸다.

“환자분은 기억상실증입니다.”

“2018년 산에서 추락했던 사고부터, 한 달 전 계단에서 구르기 전까지의 기억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의사의 입술이 움직이는 걸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 정말 서른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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