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시 첫날밤의 안대 · 제1화설정≡

첫날밤의 안대제1화

이 화는 약 1866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첫날밤, 아내는 내게 안대를 써야 한다고 요구했다. 자신의 몸은 오직 첫사랑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순간 내 마음은 완전히 식어버려 날카롭게 말했다.

“넌 내 마누라야, 아니면 그놈 마누라야?!”

아내는 나보다 더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너와 결혼했다고 해서 너에게 모든 걸 보여줘야 해? 부부 사이에도 강요는 안 돼. 난 내 몸을 오직 도훈 오빠에게만 보여줄 거야. 넌 자격 없어.”

나중에 그녀가 내 아내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그녀가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 * *

“쓸 거냐고, 안 쓸 거냐고!”

성하연은 온몸을 꽁꽁 싸매고는 검은 안대를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마치 장렬히 전사할 준비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멸감에 잠시 멍하니 있자, 성하연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직접 안대를 내 머리에 씌우려 했다.

“빨리 써.”

나는 눈앞의 여자를 빤히 쳐다봤다.

목까지 올라오는 터틀넥을 입고 목덜미는 물론 피부 한 점 보이지 않게 가린 모습에 수치심이 끓어올랐다.

더 이상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어 나는 그녀에게 따져 물었다.

“넌 내 마누라야, 아니면 그놈 마누라야?!”

안대를 쥔 그녀의 손을 탁 쳐내자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 오랫동안 좋아한 남자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첫날밤에 이런 식으로 나를 모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비록 결혼한다 해도 나는 그녀를 가질 자격이 없고 그녀의 몸과 마음은 다른 남자의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를 너무 얕본 것이다.

성하연은 조롱하는 말투로 말했다.

“나는 원래 그의 아내가 돼야 했었어!”

내가 놀라움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나는 오직 그에게만 내 몸을 보여주고 내 온몸 구석구석을 만지게 할 거야. 나는 몸부터 마음까지 온전히 도훈 오빠 거라고!”

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옷을 입고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그녀는 어떻게 이런 식으로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단 말인가? 오랜 소꿉친구였던 우리의 정이 그 남자의 달콤한 몇 마디에 못 미치다니, 난 모든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아니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결혼은 그녀의 아버지 성권휘가 먼저 제안한 거였다.

그녀의 집안 회사는 경영난에 빠져 돌파구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녀는 그동안 아무 걱정 없이 살아왔고 사업에는 문외한이라 성권휘는 회사 일을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문제 해결은커녕 괜히 그녀에게 부담만 줄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성권휘는 나를 찾아와 성씨 가문과 결혼해 성하연을 아내로 맞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 마음이었다.

그는 내가 성하연에게 품은 마음을 알고 있었고 결혼 후 내가 그녀를 평생 아껴줄 거라고 믿었다.

게다가 우리 두 집안이 결혼으로 맺어지면 내가 성씨 가문의 일에 어떻게든 관여하게 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오랫동안 좋아했기에 성권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부모님이 나를 회사에서 내쫓고 다시는 나를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회사 경영에 참여하면서 필요한 인맥과 자원들을 확보해 뒀기 때문에 성씨 가문을 돕는 데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성하연의 부모님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성하연은 분명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 부모님의 행동에 분개했고 나를 더욱 멸시했다.

그리고 나같이 작은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은 그녀의 남자친구이자 하급 관리직인 이도훈만도 못하다고 생각했다.

붉은색 스포츠카가 굉음을 내며 주택가를 빠져나갔다. 마침내 결판이 났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오히려 후련했다. 그녀는 이도훈에게 달려가고 싶어 안달이 났겠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나와 그녀는 각자 다른 길을 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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