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제1화
이 화는 약 2574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삼 년 전, 맑고 고결한 세자 서지우가 찻잎을 따던 여인을 세자빈으로 맞았다는 소문이 온 경성에 퍼졌다.
삼 년 후, 경성에는 또 하나의 소문이 퍼졌다. 세자빈을 목숨보다 아끼던 세자 서지우가 연꽃을 따던 여인을 평처(平妻)로 들인다는 소식이었다.
채연은 윤안화의 허리를 감싼 서지우의 손을 바라보았다.
"서방님, 이 혼인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서지우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채연, 안화는 연약한 여인인 데다 기억까지 잃었다. 지금은 봄이라 연꽃도 없어 살아갈 방도조차 없다. 너도 한때 찻잎을 따며 생계를 이어 가지 않았느냐? 어찌 남의 처지를 헤아려 주지 못하느냐?"
채연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끝없는 서글픔이 배어 있었다.
"서방님께서 그저 안화를 돕고 싶은 것뿐이라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지요. 집을 마련해 주거나, 돈을 내어주거나, 어울리는 사내를 찾아주..."
"어울리는 사내"라는 말이 나오자, 서지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채연! 네게 알리는 것이지, 네 뜻을 묻는 게 아니다. 사흘 뒤 안화를 데려올 것이다!"
"그렇다면... 서방님과 저의 인연도 여기서 끝인 듯싶습니다."
* * *
채연의 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서지우의 귓가에 벼락처럼 울린 듯했다.
서지우의 눈빛에 낯선 매서움이 번졌다. 그는 눈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인을 노려보았다.
"채연! 세자빈 자리에 오래 앉아 있으니, 네 어미가 매일 비싼 탕약을 먹고 있다는 것은 잊은 것이냐?"
그가 손짓하며 몸을 비키자, 몇몇 하인들이 채연의 어머니를 들어 뒤에 세웠다. 어머니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고, 눈가의 주름 사이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한바탕 울었던 것이 분명했다.
채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서지우를 바라보다가 황급히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떨리는 손끝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낮은 소리로 흐느꼈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윤안화를 순조롭게 들이기 위해 서지우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듯했다.
"나를 떠나면 무엇으로 네 어미의 목숨을 이어 갈 셈이냐?"
채연은 울먹이며 고개를 들었다.
"제가 찻잎을 따면 됩니다..."
"네가 버는 푼돈으로는 낡은 그릇 하나 사기도 부족하다!"
서지우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그만하거라. 어린애처럼 떼쓰지 말거라. 안화는 그저 평처일 뿐이다. 네 세자빈 자리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
윤안화는 사슴처럼 맑은 눈망울에 눈물을 머금은 채 말했다.
"채연 언니, 저는 그저 지우 오라버니를 연모할 뿐입니다. 다른 뜻은 절대 없습니다..."
서지우의 눈빛이 누그러졌다. 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윤안화를 데리고 신방을 고르러 갔다. 채연의 어머니는 작은 마당으로 옮겨져 몸조리하게 되었고, 채연 혼자만 쓸쓸히 저택 문 앞에 남았다.
서지우가 마음먹은 일은 누구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채연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직접 겪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 년 전, 서지우가 다원을 지나던 순간이었다. 아침 햇살 아래 찻잎을 따던 채연의 모습에 홀린 듯 발걸음을 멈췄다. 맑은 눈동자와 차나무 끝을 스치는 그녀의 가벼운 손끝은 그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는 온화하고 단정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낭자, 이른 아침에 찻잎을 따는 데에도 특별한 비법이 있소?"
평온한 분위기에 젖어 있던 채연은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얼굴을 붉힌 채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자신에게 묻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채연은 오전 내내 그에게 봄 찻잎을 어떻게 따고, 어떻게 펼쳐 말리고, 어떻게 비벼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그녀는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했고, 그는 깊이 빠져들어 들었다.
그날 이후 서지우는 매일 날이 밝기도 전에 수십 리 길을 달려 다원으로 향했다. 오직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함께 찻잎을 따고, 함께 햇볕에 말리고, 채연의 어머니가 가져오는 밥을 함께 기다렸다.
채연의 어머니는 늘 소박한 음식이 귀한 도련님 입에 맞을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서지우는 항상 집밥이야말로 사람 사는 맛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자주 새로 만든 다과를 가져왔는데, 모두 채연이 본 적은 있어도 먹어 보지는 못한 것들이었다.
그런 평온한 나날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채연이 찻잎을 따던 중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졌다. 산에서 흙더미와 돌이 무너져 내렸고, 미처 피하지 못한 채연은 놀라서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서지우는 잠도 자지 않고 사흘 밤낮 내내 하인들을 이끌고 그녀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가 마침내 의식을 잃은 채연을 찾아냈다.
채연의 상처는 너무 심했다. 명의를 모두 불러 보았지만 아무도 방법이 없었다.
다급해진 서지우는 서지우 어머니의 막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문의 면사패(免死牌)를 들고 궁으로 가 폐하를 알현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구전환혼단(九轉還魂丹)을 얻어 마침내 채연을 죽음의 문턱에서 되살려냈다.
그날 이후 서지우는 다시 채연이 찻잎을 따게 두지 않았다. 사당에서 꼬박 마흔아홉 날을 무릎 꿇은 끝에, 마침내 서지우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찻잎을 따던 채연을 세자빈으로 맞이했다.
"채연, 우리 살아서는 한 이불을 덮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힐 것이다. 평생 내 곁에는 너 하나뿐이다. 네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도 혼자 살아가지 않겠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네게 알리는 것뿐이다. 안화를 평처로 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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