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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워온 재벌 후계자를 버리기로 했다제1화

이 화는 약 4734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100억 원 줄게. 일주일 안에 출국해서 다시는 내 아들 앞에 나타나지 마.”

김소아의 맞은편에 앉은 한미정은 노골적으로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

예전 같았으면 김소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저 준우 씨랑 돈 때문에 만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은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미정은 예상 밖의 대답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주제 파악은 할 줄 아는구나.”

마지막 ‘주제 파악’이라는 말에 유난히 힘이 들어갔다.

김소아와 서준우는 애초부터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뜻이었다.

김소아는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수표를 받아 든 뒤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100억 원 줄게. 일주일 안에 출국해서 다시는 내 아들 앞에 나타나지 마.”

김소아의 맞은편에 앉은 한미정은 노골적으로 경멸 어린 시선을 보냈다.

예전 같았으면 김소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저 준우 씨랑 돈 때문에 만나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은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미정은 예상 밖의 대답에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비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주제 파악은 할 줄 아는구나.”

마지막 ‘주제 파악’이라는 말에 유난히 힘이 들어갔다.

김소아와 서준우는 애초부터 사는 세계가 다르다는 뜻이었다.

김소아는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수표를 받아 든 뒤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집은 지나치게 넓었다.

여기 살고 있는 김소아조차 종종 길을 헷갈릴 정도였다.

그나마 익숙한 건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사진 한 장뿐이었다.

사진 속 서준우는 김소아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이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빛에는 다정함이 가득했다.

김소아는 사진을 가만히 쓸어보다 문득 3년 전의 그 비 오는 밤을 떠올렸다.

그날, 골목 어귀에서 서준우를 발견했다.

온몸은 피투성이였고 눈빛은 초점 없이 흐려져 있었다.

“누구세요?”

김소아가 묻자 서준우는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저... 기억이 안 나요.”

빗물과 피가 뒤섞이면서 머리카락을 타고 떨어졌다.

그렇게 김소아는 기억을 잃은 남자를 집으로 데려왔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내던 곳은 작은 단칸방이었다.

벽지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고 수도관에서는 물이 샜다.

겨울에는 이불을 세 겹이나 덮어야 겨우 추위를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가난했던 그 시절,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했다.

서로 의지하며 버텼고, 어느새 서로에게 유일한 사람이 됐다.

김소아가 야근하는 날이면 서준우는 세 시간씩 건물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렸다.

단지 함께 집에 가고 싶다는 이유로.

생리통이 심해서 식은땀을 흘릴 때면 밤새 잠도 자지 않고 배를 문질러 줬다.

김소아가 몇 번이나 들여다보고도 비싸서 포기했던 목걸이를 사 주겠다며,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루에 다섯 군데씩 뛰기도 했다.

굳이 힘든 점을 하나 꼽자면, 밤마다 좀처럼 김소아를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김소아가 얼굴을 붉히며 그만하라고 하면 서준우는 귓불을 살짝 깨물며 웃었다.

“자기야, 너무 사랑해서 그래.”

서로 가장 뜨겁게 사랑하던 때에는, 김소아의 손을 잡고 타투 숍까지 찾아가서 쇄골에 그녀의 이름을 새겼다.

타투이스트가 아프지 않겠느냐고 묻자, 서준우는 김소아를 바라보며 웃었다.

“아파야 좋죠. 그래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안 잊을 테니까.”

김소아는 두 사람이 영원히 이렇게 행복할 거라고 믿었다.

서준우가 기억을 되찾기 전까지는.

그제야 알았다.

서준우는 길거리를 떠돌던 가난한 남자가 아니었다.

J시에서도 손꼽히는 재력가 집안인 서씨 가문의 후계자이자, 금융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당시 경쟁 세력의 계략에 휘말려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채 거리를 떠돌게 된 것이었다.

기억을 되찾은 뒤 서준우는 김소아를 데리고 거대한 집으로 들어왔다.

욕실 하나만 해도 김소아가 예전에 살던 집보다 열 배는 컸다.

하지만 그날 이후 서준우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름조차 들어 본 적 없는 명품 맞춤 정장을 입었고, 값비싼 시계를 찬 채 수백억 원대 계약을 논의하는 사람이 됐다.

밤새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았다.

김소아는 애써 스스로를 달랬다.

그저 일이 바빠서 그런 거라고.

그러던 어느 날, 연예 뉴스에는 온통 서준우와 JS그룹의 딸 임지연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사진 속 서준우는 직접 차 문을 열어 주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며 웃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김소아는 차마 눈을 떼지 못했다.

댓글에는 하나같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말뿐이었다.

그날 밤 김소아는 혼자 창가에 앉아서 밤새 달을 바라봤다.

그리고 마침내 인정했다.

눈보라를 뚫고 퇴근길에 데리러 오던 서준우.

막노동까지 하며 자신에게 목걸이를 사 줬던 서준우.

쇄골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던 서준우.

그 사람은 기억을 되찾은 날 이미 사라졌다.

지금의 서준우와 자신은 애초부터 살아온 세계가 달랐다.

서준우가 있는 곳에 김소아가 설 자리는 없었다.

그에게는 자신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온, 그만큼 눈부신 사람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더 버틸 이유도 없었다.

이제는 놓아주자.

서준우도, 자신도.

그날 밤에도 넓은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서준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김소아는 예전처럼 새벽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 날 아침이 밝자 곧장 대사관 비자 발급 센터로 향했다.

급행으로 신청하면 비자를 일주일 안에 받을 수 있었다.

센터를 나왔을 때는 이미 정오였다.

김소아는 근처에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문을 여는 순간, 걸음이 멈췄다.

창가 자리에 앉은 서준우가 휴지로 임지연의 입가를 다정하게 닦아주고 있었다.

그 눈빛은 너무도 다정했다.

예전 단칸방에서 김소아를 바라보던 눈빛과 똑같았다.

순간 가슴이 꽉 조여들었다.

김소아는 그대로 돌아서려다 입구에 놓인 화분을 건드리고 말았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서준우가 고개를 들었다.

김소아를 발견한 순간, 눈빛에 남아 있던 온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서준우가 천천히 다가왔다.

“나 미행했어?”

김소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차가운 말이 이어졌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은 사업 얘기하다 찍힌 거라고 설명했잖아.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건데?”

김소아는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목이 막힌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제 한미정이 했던 말이 다시 귓가에 맴돌았다.

“준우와 지연이 결혼은 두 집안에서 진작에 얘기가 끝난 일이야. 준우도 지연이를 좋아하고...”

사업 얘기라더니.

정략결혼도 사업에 포함되는 걸까?

“준우 씨, 그렇게까지 화내지 마.”

임지연도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듯 말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앉아요.”

김소아가 거절하기도 전에 임지연이 팔을 잡아서 식탁으로 데려갔다.

김소아는 얼떨결에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차갑게 굳은 서준우의 얼굴이 보였다.

“소아 씨는 뭐 드실래요?”

임지연이 메뉴판을 내밀었다.

“여기 요리가 꽤 괜찮아요.”

메뉴판은 온통 알아볼 수 없는 외국어로 적혀 있었다.

김소아는 난처함을 숨기며 메뉴판을 다시 밀어 놓았다.

“배 안 고파요.”

“그럼 수프라도 드세요.”

임지연이 해산물 수프를 한 그릇 떠서 앞에 놓았다.

“맛있어요.”

국물 위에 떠 있는 새우를 보는 순간 속이 뒤틀렸다.

김소아는 해산물 알레르기가 심했다.

막 거절하려는데 서준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서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으러 갔다.

훤칠한 뒷모습 위로 고급스러운 정장이 눈에 들어왔다.

잡지에서 본 적이 있는 그 옷은 예전에 살던 집을 통째로 사고도 남을 만한 엄청나게 비싼 가격이었다.

“어서 먹어 봐요.”

임지연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췄다.

“김소아 씨 형편으로는 평소에 이런 비싼 음식 먹어 볼 기회도 없잖아요.”

김소아가 고개를 들었다.

임지연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설마 준우 씨랑 잠깐 만났다고 서씨 가문에 들어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죠?”

임지연은 손끝으로 잔 가장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준우 씨가 기억을 잃지 않았으면, 김소아 씨 같은 사람은 애초에 준우 씨 근처에도 못 갔어요.”

김소아는 냅킨을 꽉 움켜쥐었다.

가난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모욕당해도 되는 건 아니었다.

“임지연 씨, 저희는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데 왜 이런 말씀을...”

“어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지연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서 손으로 해산물 수프 그릇을 일부러 엎었다.

뜨거운 국물이 임지연의 손등을 덮치면서 김소아의 손에도 그대로 튀었다.

소리를 들은 서준우가 급히 돌아왔다.

곧바로 임지연의 손을 잡았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임지연은 눈시울을 붉혔다.

“내가 잘못했어. 준우 씨랑 둘이 밥 먹는 걸 봤으니 김소아 씨 입장에서는 화가 날 만하잖아...”

서준우의 시선이 곧장 김소아에게 향했다.

“김소아, 내가 몇 번이나 설명해야 해?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내가 그런 게 아니라, 지연 씨가...”

“됐어!”

서준우가 말을 끊었다.

“내 눈으로 직접 봤는데 뭘 더 말해? 너 언제부터 이렇게 말이 안 통했어?”

서준우는 임지연을 감싸안고 그대로 식당을 나갔다.

임지연은 그의 어깨 너머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김소아를 향해 보란 듯이 미소를 지었다.

김소아는 그 자리에 서서 떨리는 손을 내려다봤다.

붉게 덴 피부 위로 벌써 물집이 올라오고 있었다.

바늘로 찌르는 듯 욱신거렸다.

하지만 서준우의 눈에는 임지연의 살짝 붉어진 손등만 보이는 듯했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예전의 서준우는 김소아가 조금만 다쳐도 견디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3년 전, 김소아가 요리를 하다 손을 뎄을 때는 눈시울까지 붉힌 채 한밤중에 약국으로 뛰어갔다.

돌아오자마자 직접 약을 발라 주면서 몇 번이고 물었다.

“소아야, 많이 아파?”

그때 서준우의 눈에는 오직 김소아만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서준우는 더 이상 김소아를 보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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