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가 막내 아가씨의 첫 한마디제3화
이 화는 약 1929자. 본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3화 미리 읽기 중 마지막 화입니다. 이어지는 제4화부터는 공식 앱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오빠는 글자 카드를 들고 몇 번이고 읽어 주었다.
나는 무심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결국 오빠는 카드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눈시울을 붉힌 채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됐어. 빈둥거리는 사람 하나쯤은 우리가 먹여 살릴 수 있으니까.”
내가 10살이던 해, 언니가 외국에서 최고의 뇌 전문의를 불러왔다.
차가운 기계들이 하나둘 내 머리와 이어졌다.
검사 결과, 내 대뇌 피질 활성도는 보통 사람과 달라서, 정상적인 언어 논리를 형성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니는 결과지를 들고 문밖에서 밤새 울었다. 그 뒤로는 아무도 나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말할 필요도 책임질 필요도 없었다.
이는 내가 가장 원하던 삶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새장이 남의 손에 의해서 산산조각 나려고 하고 있었다.
“데리고 나가.”
아빠가 마침내 사포에 갈린 것처럼 메마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허락 없이는 누구도 채윤이를 들여보내지 마.”
이 비서는 내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조금 더 주고 문밖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 두 발은 마치 카펫에 뿌리를 내린 것 같았다.
이 비서가 잠시 멈칫하더니 힘껏 나를 잡아당겼다.
“막내 아가씨, 떼쓰지 마시고 어서 가시죠.”
나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그저 탁자 위의 계약서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고연준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부드러운 표정을 유지한 채 내 곁으로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
“아빠를 화나게 해선 안 되시죠.”
“지금은 발작할 때가 아니에요. 말 들어요. 이따가 제가 사탕 사 줄게요.”
발작.
내 가족 앞에서는 막내 아가씨라고 부르더니, 가까이 다가와서는 내가 발작을 일으킨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안경 뒤의 고연준의 두 눈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고연준은 내 눈길에 등골이 서늘해졌는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마 바보라고 생각한 사람의 눈빛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자 흠칫했을 것이었다.
‘착각이야. 분명 착각이야.’
“아직도 안 나가고 뭐 해!”
아빠가 갑자기 탁자를 내리치자, 잔 속의 물이 튀면서 원목 탁자 위로 쏟아졌다.
“제가 직접 나가라고 할게요!”
오빠가 한숨을 내쉬며 다가와 나를 안으려 했다.
“채윤아, 오빠가 안고 나갈게.”
그 손이 내 어깨에 닿으려는 순간, 유태오가 손목시계를 한 번 바라보았다.
“이제 5분 남았어요.”
“회장님, 제 인내심도 한계가 있어요.”
“사인하지 않는 게 더 기개가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강요하지 않을게요. 법정에서 뵙죠.”
유태오가 몸을 일으켜 느긋하게 정장 재킷의 단추를 채웠다.
“다만 그때는 평화로운 인수가 아닐 거예요. 손씨 집안의 자산은 강제 청산될 거고요.”
“사모님과 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막내 아가씨는 아마 길거리에 나앉게 되겠지요.”
유태오의 말은 아빠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
곧 아빠의 어깨가 푹 꺾였고 순식간에 열 살은 늙어 버린 것 같았다.
“사인하죠.”
이 네 글자가 천근만근 같이 느껴졌다.
고연준이 곧바로 계약서를 아빠 앞으로 밀어주더니, 만년필 뚜껑을 열면서 공손하게 건넸다.
“회장님, 현명한 결정이세요.”
검은 몽블랑 만년필이 천장의 조명을 받아서 차가운 빛을 뿜었다.
아빠의 손은 허공에 오래 머물렀고 좀처럼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언니도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끝내 눈물이 손등 위로 떨어졌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는 거예요? 고 변호사님?”
언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고개를 들어 고연준을 바라보았다.
고연준의 눈에 지극히 은밀한 안쓰러움이 스쳤지만, 이내 그 특유의 부드러운 표정에 의해 가려졌다.
“아가씨,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었다면 절대 회장님이 사인을 하시게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유 대표님 뒤에 있는 해외 자본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우리한테는 이제 아무런 카드도 없어요.”
고연준은 이내 몸을 돌려 유태오를 향해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유 대표님, 손 회장님께서 사인하신 뒤에는 약속을 지켜 주시기 바랄게요. 손씨 집안 사람들 명의로 된 신탁기금 몇 개는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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