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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가 막내 아가씨의 첫 한마디제1화

이 화는 약 2548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나는 20조 자산의 재벌가 손씨 집안의 막내 아가씨이자 업계에서 소문난 바보다.

어릴 때부터 멍하니 있는 일이 많았고, 아무리 다그쳐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손씨 집안 사람들은 하나같이 타고난 인재였다.

오빠는 만 18살에 월가를 휩쓸었고 언니는 만 20살에 박사 학위를 두 개나 따냈다.

그랬기에 부모님은 도무지 내가 손씨 집안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친자 확인 검사만 무려 18번을 했고, 이름난 의사와 전문가란 전문가도 모두 불러들였다.

십여 년을 그렇게 난리를 치고 나서야, 가족들은 결국 하는 수 없이 결과를 받아들였다.

사실 내가 말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말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전생의 나는 한 번도 패소한 적 없는 유능한 변호사였다.

평생 할 말을 전생에 다 해 버렸으니, 이번 생에는 조용히 벙어리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오늘, SS그룹이 악의적인 공매도에 시달리며 파산 위기에 몰렸다.

경쟁사에서 인수합병 계약서를 들고 회사까지 들이닥치자, 아빠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오빠도 계약서 조항을 샅샅이 뒤졌지만 도무지 허점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룹에서 거금을 들여 10년 동안 고용했던 수석 변호사는 진작에 상대방에게 매수된 상태였다.

변호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처럼 의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회장님, 사인하시죠. 이것이 손씨 집안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계약서는 제가 검토했고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아빠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떨리는 손으로 펜을 들었다.

듣고 있자니 속이 답답해서 더는 연기를 이어 갈 수가 없었다.

온 가족이 경악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가서 계약서를 세 번째 장으로 넘겼다.

“계약서와 첨부한 문서 사이에 관할권 충돌이 있네요? 여기에 사인하면 손씨 집안은 빈털터리로 쫓겨나는 데다가 20조원 채무까지 떠안게 되고요.”

그런 뒤 고연준을 바라보았다.

나는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고 변호사님, 원래 이렇게 손해 보는 장사도 잘하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엔 너무 후하게 나오시는 것 같은데요?”

* * *

고연준의 목소리는 봄물처럼 부드러웠다.

고연준은 재단이 잘된 맞춤 정장을 입고 있었고, 금테 안경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심지어 살뜰하게 미지근한 물까지 한 잔 따라서 아빠 손정욱 앞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룹 최상층의 회의실 전체는 쥐 죽은 듯 고요했고, 공기에는 숨이 막힐 듯한 절망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

나는 구석 소파에 앉아서 손에 든 큐브를 기계적으로 돌리고 있었다.

딸깍, 딸깍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 사람들의 눈에 나는 그저 머릿수를 채우는 용도이자, 사람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바보였기 때문이었다.

내 맞은편에 앉은 유태오는 커피잔을 들어서 한 모금 홀짝였다.

오늘 이 자리를 밀어붙인 장본인이었다.

동시에 재계에서는 사람을 잡아먹고도 뼈 하나 남기지 않는 웃는 얼굴의 늑대로 악명 높은 인물이기도 했다.

“손 회장님,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아요.”

“오늘 밤 12시가 지나고 내일 아침 장이 열리면, SS그룹의 주가는 바닥을 뚫고 곤두박질칠 거예요.”

“그때가 되면 이 몇천억 원조차 손에 넣지 못하실 거고요.”

유태오의 나른한 말투는 마치 내일의 날씨라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빠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렸고 이마에는 핏줄이 불거졌다.

아빠는 탁자 위에 놓인 두툼한 인수합병 계약서를 마치 혀를 날름거리는 독사라도 되는 것처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한쪽에 서 있는 오빠 손재우는 밤을 새운 탓에 눈이 새빨갰다.

만 18살에 월가를 휩쓴, 손씨 집안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사업의 천재였다.

그런데 지금은 만년필을 꽉 움켜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린 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계약서의 글자 하나하나를 샅샅이 훑었지만 그 어떤 빈틈도 찾아내지 못했다.

“오빠, 다시 한번 봐. 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

언니 손시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늘 차갑고 도도하던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눈시울마저 붉어져 있었다.

오빠가 맥없이 손을 풀자, 만년필이 매끈한 탁자 위를 굴러가며 맑은 소리를 냈다.

“저쪽 자금이 우리 세 배야. 공매도 수법이 너무 은밀해서 우리가 반격할 최적의 시기를 놓쳤어.”

“지금은 자금줄까지 끊어졌고 은행에서는 대출을 회수하고 있어. 신이 내려와서 우리를 돕지 않는 한 방법이 없어.”

오빠는 눈을 질끈 감았고 목소리는 심하게 잠겨 있었다.

이윽고 고연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오빠 곁으로 걸어가서 어깨를 토닥였다.

“도련님, 도련님 마음이 어떤지 저도 잘 알아요.”

“SS그룹은 저한테도 집이나 마찬가지예요. 여기서 10년을 일했고요. 오늘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저예요.”

“하지만 법은 증거와 조항을 근거로 하고 사업은 실력으로 말하죠.”

“유 대표 쪽 조건이 가혹하긴 해도, 적어도 앞으로 체면치레를 하면서 살 수 있을 거예요.”

“산이 남아 있는 한 땔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법이고요.”

고연준의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손씨 집안을 위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런 말들을 구석에 앉아 듣고 있자니 내 속이 메스꺼웠다.

전생에 나는 한 번도 패소한 적 없는 업계 최고의 변호사였다.

그렇기에 이런 위선적인 얼굴의 인간들은 지겹도록 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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