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시작되기 두 시간 전제1화
이 화는 약 2858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윤지원이 술에 취한 윤주혁과 하룻밤을 보낸 날, 윤주혁은 전 여자 친구와 막 헤어진 상태였다.
윤주혁은 책임을 지겠다며 윤지원과 결혼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별다른 문제 없이 평온하게 흘러갔다.
윤지원은 이런 나날이 영원히 이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윤주혁의 전 여자 친구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윤주혁은 전 여자 친구를 추모하러 갔다가 뒤늦게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거 전 여자 친구가 자신과 윤지원이 하룻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완전히 마음을 접은 채 떠났다는 것을.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윤지원은 남몰래 윤주혁을 좋아하며 써 온 일기장까지 윤주혁에게 들키고 말았다.
윤주혁은 윤지원이 두 사람의 관계를 일부러 망가뜨렸다고 단정했다.
윤지원을 뼛속 깊이 증오한 윤주혁은 결국 이혼을 요구한 뒤 윤지원을 빈손으로 내쫓았고 사사건건 앞길을 가로막았다.
죽음을 앞둔 순간, 윤지원의 귓가에는 윤주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맴돌았다.
“네 사랑은 정말 역겨워.”
다시 눈을 떴을 때, 윤지원은 윤주혁이 이별의 아픔을 잊으려 술을 마시던 날, 두 사람이 하룻밤을 보내기 두 시간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윤지원은 외투를 집어 들자마자 방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곧장 윤주혁의 전 여자 친구가 머무는 방으로 달려가 망설임 없이 문을 두드렸다.
* * *
윤지원을 본 신아영은 순간 굳어졌다. 벌겋게 부은 눈을 보니 조금 전까지 울었던 모양이었다.
“지원아? 네가 여긴 어떻게...”
“아영 언니...”
윤지원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차분하게 물었다.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해도 돼요?”
거실은 어수선했고 테이블 위에는 먹다 만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윤지원은 옅게 웃으며 곧장 본론을 꺼냈다.
“오빠 대신 사과하러 왔어요. 언니 생일을 잊은 건 오빠가 잘못한 거예요.”
신아영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빠가 언니를 사랑하지 않는 건 절대 아니에요. 오빠는 어릴 때부터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어요. 언니가 헤어지자고 했다면서... 지금 혼자 술집에서 속상한 마음을 달래고 있어요.”
윤지원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언니, 오빠한테 가 봐요...”
지난 생에서 윤주혁은 윤지원과 결혼한 뒤에도 해마다 신아영의 생일이 돌아오면 혼자 술을 마시며 괴로운 마음을 달랬다.
윤주혁은 단 한 번도 신아영을 마음에서 지운 적이 없었다.
신아영은 윤지원을 바라보다가 문득 입꼬리를 올렸다. 하지만 눈물은 여전히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주혁 씨처럼 무뚝뚝한 사람한테 어떻게 너처럼 살가운 동생이 있을까. 지금 바로 갈게. 고마워, 지원아.”
윤지원이 윤주혁이 있는 술집을 알려 주자 신아영은 곧바로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윤지원은 집을 나서는 신아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번 생에는 윤주혁과 하룻밤을 보내는 일도 없을 터였다.
집으로 돌아온 윤지원은 옷장 깊숙한 곳에 숨겨 두었던 일기장을 꺼냈다.
윤지원이 열 살이던 해, 갈 곳 없이 거리를 떠돌던 윤지원을 열여덟 살이던 윤주혁이 집으로 데려갔다.
윤주혁은 다른 사람에게는 차갑고 무뚝뚝했지만, 윤지원에게만큼은 한없이 다정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알게 되었을 무렵, 윤지원은 자신이 윤주혁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평생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짝사랑이었다.
윤지원은 일기장을 펼친 뒤 한 장씩 뜯어 갈기갈기 찢었다. 잘게 찢은 종잇조각들을 변기에 버린 뒤 물을 내려 흔적도 없이 흘려보냈다.
두 시간쯤 지난 뒤, 현관문이 열렸다.
신아영은 술에 잔뜩 취한 윤주혁을 부축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윤주혁은 신아영을 품에 꽉 끌어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혀가 꼬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영아... 헤어지자고 하지 마... 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
신아영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몇 번이고 윤주혁을 달랬다.
“알았어, 알았어. 헤어지자고 하지 않을게.”
윤지원을 발견한 신아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원아, 미안한데 해장국 좀 끓여 줄래? 나는 주혁 씨부터 방에 눕히고 올게.”
“네, 언니.”
신아영은 윤주혁을 부축해 침실로 들어갔다.
윤지원은 주방에서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침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응석을 부리는 윤주혁의 목소리 사이로 신아영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난 생에서 윤주혁이 윤지원에게 신아영을 처음 소개했을 때, 윤지원은 두 사람이 무척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신아영은 밝고 당찬 데다 좋은 집안에서 자라 교양까지 갖춘, 완벽에 가까운 여자였다.
게다가 윤주혁의 동생인 윤지원에게도 늘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아영 언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나 때문이 아니었다면 아영 언니는 죽지 않았을 거야. 오빠와 아영 언니도 행복하게 살았겠지. 이번 생에는 꼭 만회할 거야.’
...
신아영은 밤새 윤주혁의 방에 머물며 윤주혁을 보살폈다.
다음 날 아침, 윤지원이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윤주혁은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윤주혁은 계란 프라이를 만들고 우유를 데운 뒤 식빵을 삼각형으로 잘라 접시에 담았다.
아침 식사를 모두 준비한 윤주혁은 신아영 앞에 음식을 차려 놓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식기 전에 얼른 먹어.”
신아영은 웃으며 윤주혁의 팔을 쿡 찔렀다.
“언제부터 이렇게 다정해졌어? 아침 식사도 챙길 줄 알고?”
윤주혁은 신아영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지난 생에서 윤주혁은 윤지원과 결혼한 뒤에도 종종 윤지원을 위해 요리해 주곤 했다.
윤지원이 생리할 때면 진통제를 사다 주기도 했다.
윤지원은 계단 앞에 멈춰 서서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지원아, 이리 와서 아침 먹어.”
신아영이 윤지원을 불렀다.
윤주혁은 고개를 들어 윤지원을 무심히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고, 표정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윤지원이 식탁 앞에 앉자, 윤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 칸 떨어진 의자로 옮겨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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