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 피어난 꽃제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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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 연회에는 수많은 명문가 여식들이 참석했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꽃을 감상하곤 했는데 꽃보다 사람이 더 아름답다는 말이 과연 허언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태감이 목청을 높였다.
"현비 마마 납시오!"
나는 뒤쪽에 서서 사람들을 따라 외쳤다.
"현비 마마를 뵈옵니다. 마마, 만수무강하시옵소서."
현비.
바로 태자의 생모였다.
"됐다. 오늘 너희들을 부른 건 그저 꽃이나 보며 경치를 즐기자는 뜻이니, 너무 격식을 차릴 것 없다. 다들 편히들 있거라."
"망극하옵니다, 마마."
사람들은 서서히 흩어졌다.
나는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 숨어들어 조용히 연회장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적지 않은 귀족 여식들이 이번 연회의 진짜 목적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현비 마마의 눈에 들고자 기를 썼다.
당연히 고유진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유진은 사람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현비와 무슨 이야기를 그리 나누는지, 현비는 연신 웃음을 터뜨리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씨 가문 여식은 참으로 재미있구나."
"마마께서는 모르실 겝니다. 고씨 가문에는 본디 두 명의 여식이 있사온데, 다른 한 명도 한번 보시지요."
누군지 단번에 알았다.
고유진의 친구로, 평소 그녀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자였다.
지금 그녀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가 예를 갖췄다.
"소녀 고서현, 현비 마마를 뵈옵니다."
현비 마마는 내 인사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고유진을 돌아보며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같은 고씨 가문 여식이거늘, 하나는 꽃처럼 화사하고 다른 하나는 어찌 저리 노인네처럼 칙칙하게 입었는지. 참으로 하늘과 땅 차이로다."
이윽고 사람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마마께서 모르셔서 그렇사옵니다. 비록 같은 어머니 배 속에서 나왔다고 하나, 학식이나 용모나 천지 차이이옵니다. 소녀와 저 아이는 본디 격이 다르지요."
"마마께서는 그저 장난감이나 구경거리쯤으로 여기시옵소서. 저런 아이 때문에 마마의 흥을 깰 수는 없지 않사옵니까."
"네 입담이 제법 쓸 만하구나."
나는 속으로 훤히 꿰뚫어 보았다.
황후가 될 명운을 타고났다는 그 소문 때문에, 현비는 진작부터 고유진을 점찍어 둔 터였다.
지금 이리 유난을 떠는 건, 고유진에게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아끼는지 보여주려는 속셈일 뿐이다. 나아가 고씨 가문과 동궁을 단단히 옭아매려는 수작에 불과했다.
허나 저들은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아무리 얄팍한 수를 써도, 결국 선택은 가장 높은 곳에 계신 그분의 몫이라는 것을.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나직하고 유려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마마마, 무슨 이야기를 그리 나누십니까? 무척이나 소란스럽사옵니다."
"태자 전하 납시었사옵니다!"
"명문가의 영애들을 불러 꽃놀이를 즐기던 참이었다. 그중에서도 고씨 가문의 적녀가 퍽 눈에 띄는구나."
태자는 그 말을 듣고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어마마마 말씀이 백번 지당하옵니다. 소자 역시 그리 생각하옵니다. 그러하오니, 어마마마께서 나서주시어 아바마마께 성지를 청해주시옵소서. 고씨 가문의 적장녀를 태자비로 맞이하고 싶사옵니다."
"좋다! 네 뜻이 정 그러하다면, 이 어미가 저 아이의 의중을 물어보마. 아무리 네가 원한다 한들, 저 아이가 싫다 하면 나 역시 허락하지 않을 것이니."
이번에도 현비 마마는 한껏 모양새를 갖췄다.
대놓고 고유진의 체면을 세워주려는 속셈이었다.
그때, 고유진이 황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전하의 눈에 든 것은 소녀의 크나큰 복이옵니다. 소녀, 기꺼이 받들겠사옵니다."
두 사람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번졌다.
현비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묻어났다.
"두 사람의 마음이 이리도 통하였으니 내 내일 당장 폐하께 사혼을 청하겠노라!"
고유진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다.
방금 전까지 나를 조롱했던 일은 까맣게 잊은 듯, 그녀는 곧장 내게 달려와 옷소매를 쥐고 흔들며 호들갑을 떨었다.
"서현아, 내가 정말 태자 전하께 시집가게 되었어! 너도 나를 위해 기뻐해 줄 거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고유진의 손에 갑자기 손수건 하나가 들려 있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내 소매에서 흘러내린 모양새였다.
"어머? 서현아. 네 손수건이 떨어졌네."
고유진은 의아해하면서도 짐짓 난처한 기색을 꾸며냈다.
"어머나, 이게 웬일이람. 여기에 뉘 이름이 수놓아져 있는 게야? 설마 마음에 품은 사내라도 생겼는데 차마 말하지 못한 거니? 걱정 마. 마침 오늘 현비 마마께서도 자리하고 계시잖니. 마마께 부탁하여 사혼을 청하면 될 터이니, 이 언니도 한시름 덜겠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급히 그녀를 막아서려 했지만 한발 늦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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