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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피어난 꽃제2화

이 화는 약 2153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자, 자, 때를 놓칠라. 어서 가거라!"

아버지가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나를 스윽 훑어내렸다.

"자매끼리 서로 이끌고 밀어주어야 더 멀리 갈 수 있는 법이다."

"아버지도 참, 무슨 섭섭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전 신분도 고귀하고 어려서부터 피나는 노력을 다하였사옵니다. 어찌 곁다리의 도움이 필요하단 말이옵니까!"

"오냐오냐, 내 딸의 말이 다 맞다. 그럼 이 아비는 집에서 좋은 소식이나 기다리고 있겠다!"

내 가슴속에는 티끌만 한 파문도 일지 않았다.

지독하게 익숙해져 버린 삭막한 평온뿐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후작부의 마차가 대문 앞에 당도해 있었다.

큰 마차 한 대, 작은 마차 한 대.

선두의 마차는 넓고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발판에조차 푹신한 융단이 깔려 있었다.

반면, 뒤쪽의 마차는 비좁고 남루했다.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이라도 삐거덕대며 부서질 것만 같았다.

차별은 늘 이토록 노골적이었다.

나는 묵묵히 낡아빠진 마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고유진이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녀의 눈동자엔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그저 억누르지 못한 오만함과 우월감이 뚝뚝 흘러넘칠 뿐이었다.

덜컹이는 마차 안.

나는 쉴 새 없이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고서현, 이런 삶을 사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야. 앞으로의 길은 네가 직접 정하는 거야.'

상념이 잦아들 무렵, 소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씨, 궁문에 당도하였사옵니다."

나는 짧게 대답하고는 마차에서 내렸다.

황궁의 정문 앞.

나는 멈춰 서서 안쪽을 바라보았다.

눈부시게 화려하고 웅장한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서현아, 무얼 그리 넋을 놓고 보느냐?"

고유진이 빙그레 웃으며 다가왔다.

하지만 그 웃음기 띤 낯짝 뒤로는 숱한 계산과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악독함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녀는 능숙하게 내 팔짱을 끼며 다정하게 굴었다.

멀리서 보면 아무런 앙금 없이 그저 함께 연회에 참석한 사이좋은 자매처럼 보였을 것이다.

"저 두 분이 고씨 가문의 영애들이시지?"

"두 자매의 우애가 참으로 깊어 보이는군."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은 온통 우리가 사이좋은 자매라는 칭찬뿐이었다.

고유진의 입가에는 가식적인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인적이 드문 후원 구석에 다다랐을 때.

고유진은 거칠게 내 손을 뿌리쳤다.

"됐다, 되도 않는 광대 짓은 접어야지. 네년의 그 궁상맞은 냄새가 내 옷자락에 밸까 역겨우니까. 오늘 하루, 쥐 죽은 듯 엎드려 있는 게 좋을 거다."

고유진은 무언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떠오른 듯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가벼운 웃음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짙은 악의가 서려 있었다.

"명심하거라. 오늘 밤 무슨 일이 생기든 넌 군말 없이 받아들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 어머니를 졸라 널 백정의 첩으로 시집보내 버릴 테니까. 어차피 난 미래의 황후야. 네년의 목숨줄 따위는 내 손끝 하나에 달려 있다는 뜻이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뼛속까지 시린 한기가 발끝에서부터 사지로 퍼져나갔다.

그제야 나는 똑똑히 깨달았다.

지난 세월 동안 고유진은 단지 나를 이기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

아예 나를 철저히 짓밟고 망가뜨리려 했다는 것.

나는 그런 고유진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어떻게 그런 짓을!"

내 목소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못 할 건 또 뭐란 말이냐?"

"이 거대한 황궁의 주인이 바로 내가 될 터인데!"

"나는 이 천하에서 가장 고귀한 여인이 될 몸이다!"

그랬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고유진까지 내게 얌전히 굴라고 강요했다.

그들은 고유진이 오늘 밤 궁중 연회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기필코 태자비가 될 것이고, 반드시 황후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여긴 황궁이야! 어떻게 그런 불경한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어! 폐하께서는 아직 강건하시거늘 그런 말을 지껄이다니! 이건 폐하를 능멸하는 크나큰 불경이야! 경거망동하지 마. 이 천하는 폐하의 것이니 네가 오만하게 혓바닥을 놀릴 자리가 아니야."

고유진은 코웃음을 쳤다.

"흥, 말은 제법 번지르르하게 하는구나. 허나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내 가엾은 동생아. 똑똑히 새겨두거라. 운명은 정해졌고 절대 바꿀 수 없다는 걸. 내가 오늘 한 말 뼛속 깊이 새겨둬. 네 미래가 어찌 될지는 온전히 네 태도에 달렸으니까."

"알았어."

내게 경고를 마친 고유진은 잔뜩 신이 나서 앞장서 걸어갔다.

한편, 후미진 모퉁이 그늘.

그곳에 은밀히 숨겨져 있던 황금빛 도포 자락을, 고유진은 끝내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똑똑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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