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시 뼛속까지 스며든 아픔 · 제1화설정≡

뼛속까지 스며든 아픔제1화

이 화는 약 3118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셋째 황자 강도현이 유배되던 해, 아버지는 나와 함께 시체 더미에서 그를 업어 데려왔다.

그제야 아버지가 한때 그의 태부(太傅)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추격을 피하고자 강도현과 나는 시골에 숨어서 금슬 좋은 부부로 살아갔다.

닭과 물고기를 키우며, 해가 뜨면 함께 밭일했다.

그는 허름한 사철의 보살님 앞에서 이마가 깨지도록 머리를 조아리며 맹세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서라는 내 유일한 부인이다."

"권세도 부귀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우리 셋이 평안하게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선황이 승하하시고 나라에 주인이 사라지자, 그는 역심을 품어서 검을 들고 경성으로 쳐들어갔다.

떠나기 전 그는 나를 꼭 끌어안고, 일이 성사되면 반드시 나를 경성으로 데려가 함께 천하를 누리겠다고 약속했다.

두 해가 지나자, 우리 아들 지민도 옹알이를 시작했다.

마침내 나를 경성으로 데려갈 마차가 왔다.

하지만 경성에 도착하고서야 알았다. 재상의 딸 백유리가 이미 중궁의 주인이 되어 황후가 되어 있었다.

나는 가장 낮은 품계인 답응(答應)에 봉해졌을 뿐이었다.

* * *

지민마저 내 품에서 빼앗겨 황후의 손에서 자랐다.

강도현은 내게 온갖 호사를 베풀었지만, 아들만큼은 끝내 내게 보여 주지 않았다.

나는 날마다 봉의궁(鳳儀宮)에 문안드리러 갔다. 내 친아들이 백유리의 곁에서 "어마마마"를 부르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궁에 들어온 지 다섯 해째 되던 해, 나는 백유리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황후마마, 부디 은혜를 베푸시어 제가 궁을 나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영남(嶺南)으로 돌아가 설을 보내고 싶었다.

아버지의 묘 곁에 묻히고 싶었다.

...

백유리는 높은 자리에 앉아 손톱에 끼운 장식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라야, 대체 왜 이러느냐?"

"이 넓은 후궁에는 우리 둘뿐이잖니?"

"폐하께서도 내 뜻대로 너를 외면하시지 않고 매달 한 번씩 네 처소에 드시지 않느냐?"

"대체 무엇이 그리 불만이냐?"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총애는 그저 의례적인 일에 불과하며 시골 아낙인 나에게 베푸는 은혜였다.

나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피비린 맛을 삼키며 머리를 더욱 깊이 조아렸다.

"저는 천한 팔자라 궁에서 누리는 복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부디 마마께서 허락해 주십시오."

나는 아무런 이유도 말하지 않고 계속 머리를 조아렸다.

백유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고집을 더는 어찌할 수 없다는 듯했다.

"됐다. 네가 이미 마음을 정했다면 나도 더는 붙잡지 않겠다."

"내일 밤, 내 곁의 최 상궁에게 너를 경성 밖까지 데려다주라 이르겠다."

"마마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출궁패를 받아 나는 별전으로 돌아왔다.

밤이 되자 등불을 밝혀 놓고 마지막 한 땀까지 꿰매 마무리했다.

지민에게 주려고 만든 새 신발 한 켤레였다. 전에 밤을 새워 지어 둔 노란 비단 두루마기까지 갖추니 꼭 한 벌이었다.

다음 날, 궁을 나가기 전 나는 몰래 상서방(尙書房) 밖에서 지민을 기다렸다.

지민이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키가 이미 내 허리까지 자라 있었다.

"지민..."

나는 지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혔다.

지민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나는 황급히 옷과 신발을 내밀며 조심스레 웃어 보였다.

"이 옷감은 반년 동안 받은 월봉을 아껴 마련한 것이다. 내가 직접 지었으니 한번 입어 보고 잘 맞는지 보거라."

지민은 옷을 한 번 바라보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 바닥에 세게 내던졌다.

옷은 진흙탕에 떨어져 엉망이 되었다.

"천한 주제에 내 옷 만들어 줄 자격도 없다."

고작 여덟 살인 지민이 차갑게 얼굴을 굳힌 모습은 강도현을 쏙 빼닮아 있었다.

"나는 네..."

"네가 내 친어머니라고 뭐 어때서?”

지민은 목소리를 높였고, 어린 얼굴이 수치심과 분노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내 어마마마는 지금 황후마마다!"

"상서방의 모든 벗이 내가 시골 아낙을 친어미로 두었다고 비웃게 만들 셈이야?"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칼에 찔린 듯 아파 온몸이 떨렸다.

나는 변명하고 싶었다. 죽기 전에 지민이 내게 한 번만이라도 "어머니"라고 불러 주는 걸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민은 질색한 듯 소매를 뿌리치고 돌아서 버렸다.

나는 그 자리에 굳어 버린 채 주저앉아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들었다.

"한서라, 또 지민에게 무슨 짓을 하라고 부추긴 것이냐?"

그때 머리 위에 차갑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렸다.

등줄기가 굳어지며 나는 고개를 들었다...

강도현이 밝은 황금빛 곤룡포를 입고 봉황 무늬 예복을 차려입은 백유리와 나란히 서 있었다.

그의 눈빛이 칼날처럼 서늘하게 번뜩이며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아직도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리지 않는 것이냐?"

나는 멍하니 차가운 청석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강도현은 몇 걸음 다가와 내가 손수 지은 옷을 그대로 발로 짓밟았다.

"한서라, 내가 지민의 출생을 함부로 밝히지 말라고 몇 번이나 경고했느냐?"

"정녕 네가 친어미라는 이유로 지민이 열등감을 느끼게 만들 셈이냐?"

"황후가 지민을 예의도 바르고 사리도 분명하게 가르쳤잖니?”

"그런데 너는 오히려 모자 사이를 이간질하는구나!"

"한서라, 설마 지민을 이용해 총애와 권력을 차지하려는 것이냐? 똑똑히 일러두마. 지민에게는 절대로 태자의 자리를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차오른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

그에게는 아들을 한 번 더 바라보는 것도 총애를 탐하는 일이었고, 친자식을 그리워하는 것조차 권력을 탐하는 일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가 황위에 오른 순간부터 나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지워 버리고 싶은 오점이 되어 버렸다.

백유리가 때맞춰 강도현의 팔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폐하,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서라도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니 방법을 잘못 택했을 뿐입니다.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강도현은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고, 눈빛이 순식간에 다정해졌다.

다시 나를 바라볼 때는 뼛속까지 시린 냉정함으로 돌아와 있었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정말 그런 마음이 있다면 분수나 지키고 조용히 살 것이지!"

"짐의 명을 전하거라. 오늘부터 한 답응을 별전에 가두고, 내 허락 없이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거라!"

"앞으로는 황후에게 문안드릴 필요도 없다. 눈에 거슬리니!"

나는 궁인들에게 거칠게 끌려 일어났다.

백유리가 내 곁을 지나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걱정 마. 네가 궁을 나가는 일은 내가 알아서 마련해 두마."

세로쓰기 표시 중: 본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스크롤합니다(← → 키로도 이동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