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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이름의 주인제3화

이 화는 약 2168자. 본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3화 미리 읽기 중 마지막 화입니다. 이어지는 제4화부터는 공식 앱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정우진이 입항한 건 닷새 뒤였다.

나는 항구로 마중 나가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정우진이 돌아오기 사흘 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였을 것이다. 침대 시트를 새것으로 갈고 냉장고에는 정우진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가득 채워 놓고 차 안에는 숙취해소제까지 미리 챙겨 뒀겠지만 이번에 나는 집에서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현관문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나는 마르세유항 기록이 적힌 페이지를 컴퓨터에 스캔하고 있었다.

정우진은 아직 제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여행 가방을 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탁자 위에 놓인 장부를 발견하자마자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한희서, 지금 내 뒷조사를 하는 거야?”

“왜? 조사받는 게 무서워?”

정우진은 모자를 소파 위로 내던졌다.

“나 방금 배에서 내렸어. 오자마자 나랑 싸우자는 거야?”

“난 싸운 적이 없어.”

정우진이 성큼 다가와 내 앞의 장부를 낚아챘다.

“이거 어디서 났어?”

“가족용 장부 사본이야. 원래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거야.”

정우진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나를 노려봤다.

“앞으로 배와 관련된 서류는 건드리지 마.”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배에서 차린 돈으로 차세린한테 다이아몬드 세트 보낼 때는 배의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 안 들었어?”

정우진은 곧바로 말문이 막혔다. 한동안 침묵하던 정우진은 몇 분 뒤 말을 바꿨다.

“그 다이아몬드 세트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어떤 건데?”

“세린이가 예전에 나한테 도움을 준 적이 있어. 요즘 몇 년 동안 힘들게 지내기도 했고. 그냥 선물 하나 해 준 것뿐이야.”

나는 정우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차세린한테는 다이아몬드를 사 주고... 나한테는 뭘 사 왔는데?”

그 순간, 정우진의 얼굴에 짜증이 스쳤다.

“꼭 세린이랑 너를 비교해야겠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우진은 여행 가방을 뒤적이더니 작은 봉투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너 주려고 사 왔어.”

봉투 안에는 냉장고 마그네틱 하나가 들어 있었다.

항구 기념품점에서 파는 흔한 물건이었고 뒷면에는 가격표조차 떼지 않은 채 붙어 있었다.

[2유로.]

나는 냉장고 마그네틱을 다시 봉투 안에 넣었다. 그러자 정우진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

“또 마음에 안 들어?”

“우진 씨는 내가 이걸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해?”

정우진이 피곤하다는 듯 미간을 문질렀다.

“희서야, 바다 위에서 일하는 게 정말 힘들어. 세린이는 해운 쪽도 알고 내가 어떤 압박을 받는지도 이해해. 그런데 넌 맨날 이런 사소한 일만 붙잡고 늘어지잖아. 그게 그렇게 중요해?”

정우진에게는 물결 모양 다이아몬드 세트도 그저 사소한 일이었고 우리가 함께한 6년의 결혼 생활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해온 아파트의 출입 등록 내역을 보여 줬다.

“차세린이 거래처 사람이라며? 거래처 사람이 왜 당신 명의로 임시 출입 등록까지 된 아파트에서 살고 있어?”

정우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누가 알려줬어?”

“경비원.”

정우진이 내 휴대폰을 빼앗듯 가져갔다. 사진첩을 빠르게 넘겨 보던 정우진은 내가 이미 자료를 따로 백업해 둔 걸 발견하고 손을 멈췄다.

“대체 뭘 하려는 거야?”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혼하려고.”

정우진이 그대로 굳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한희서, 이혼 얘기로 날 겁주려 하지 마. 나랑 헤어지면 넌 어떻게 먹고살 건데?”

정우진은 비웃듯 말을 이었다.

“몇 년째 사회생활도 안 하고 집에만 있었잖아. 혼자 먹고살 능력도 없으면서 나 없으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나는 가만히 정우진을 바라봤다.

“우진 씨는 내가 뭘 가졌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잖아.”

정우진은 휴대폰을 탁자 위에 던졌다.

“네가 집에만 너무 오래 있어서 그래.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니까 생각도 그렇게 단순하지.”

그날 밤, 정우진은 알아서 손님방에 들어가서 잤다.

새벽 1시쯤, 벽 너머에서 낮게 깔린 정우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통화 내용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걱정하지 마. 희서가 뭘 어쩌겠어? 며칠 저러다 말겠지.”

잠시 뒤 정우진이 다시 말했다.

“그 다이아몬드 세트는 그냥 하고 다녀. 돌려줄 필요 없어. 원래부터 널 주려고 산 거니까.”

그리고 마지막 말까지 또렷하게 들렸다.

“우리 엄마가 알아서 희서를 다룰 거야. 걔가 진짜 나랑 이혼할 배짱은 없어.”

나는 복도에 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느낀 서운함과 상처는 정우진에게 고작 며칠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일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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