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녀가 나를 불륜녀라 부른다제1화
이 화는 약 2338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가문의 장례식에 불청객이 들이닥쳤다.
선두에는 내 남편의 여자 친구라고 자칭하는 여자가 나를 노려보면서 불륜녀를 직접 찢어 죽이러 왔다고 했다. 나는 굳이 내가 아내라고 설명하기 싫었기에 장례식이 끝난 후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화를 억누르지 못한 채 나를 덮쳤고 함께 온 사람들과 힘을 합쳐 나의 옷을 가위로 마구 잘랐다.
큰 소동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가문 사람들은 그저 차가운 눈빛을 하고 지켜볼 뿐이었다. 그런 눈빛에 익숙해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골함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당신이 아무리 날뛰어도 소용없어요, 도현이는 나한테 아낌없이 주는 남자거든요. 저 유골함 보여요? 도현이가 16억을 주고 사준 건데, 그것도 박살 내보지 그래요?”그러자 그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미친 듯이 부르짖으면서 유골함을 바닥에 던졌고 다른 물건을 집어 들고 유골함이 산산조각 날 때까지 내리쳤다.
“뻔뻔스러운 불륜녀의 집안 사람들도 똑같이 추잡해! 내 남자 친구 돈에 손댄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 여자는 이 장례식이 내 남편의 어머니 즉 나의 시어머니 장례식인 줄 꿈에도 몰랐다. 그 여자가 난동을 부린 이곳에서 시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었고 산산조각 나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이 물건은 시어머니의 유골함이었다.
* * *
나는 진도현과 몇 년 전부터 별거했다. 그런데 오늘 이 사실을 아는 진씨 가문 사람이 나한테 전화를 걸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예린아, 네 시어머니 돌아가셨어. 도현이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 너라도 와서 장례식을 치러야지.”
나는 시어머니가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슬픈 마음보다는 팽팽하게 늘어져 있던 줄이 툭 끊긴 것처럼 마음이 느슨해졌다.
3년 전, 진도현은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갔다. 별거 후, 진도현은 이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처럼 나의 문자와 전화를 무시했고 온종일 비즈니스 파티거나 클럽을 돌아다니면서 유흥을 즐겼다. 나는 어머니가 세상을 떴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는 진도현이 미웠다.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큰 결정을 내렸다. 이번 주 회의를 모두 미루고 진도현의 본가로 내려가기로 했던 것이다. 비서 박서연은 보디가드 열 명을 데리고 나와 함께 본가로 향했다. 가는 길 내내 진도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얼마나 바쁘기에 전화를 받지 않는지 궁금했던 나는 진도현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았다. 진도현은 새로 구입한 스포츠카 사진을 한 시간 전에 게시했다.
진씨 가문 사람 말로는 시어머니가 생전에 자신이 세상을 뜨면 꼭 특별 제작한 유골함을 준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자그마치 20억 정도 되는 유골함이 욕심나서 한참 고집을 부렸지만 세상을 뜬 뒤, 비통한 표정으로 슬퍼하는 가문 사람들은 유골함에 관한 말을 꺼냈다가 돈을 뜯길까 봐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고민 끝에 진도현의 카드로 결제했다. 그러자 전화를 받지 않던 진도현이 결제 내역 문자를 확인하고 곧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뭘 샀길래 그 많은 돈을 쓴 거야? 당장 환불해.”
나는 간만에 연락이 닿은 진도현과 말싸움하기 싫어서 차분하게 타일렀다.
“얼른 본가로 와, 장례식을 치르는 중이니까.”
진도현은 장례식에 조문하러 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멈칫하다가 물었다.
“누구 장례식인데?”
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가문 어르신 장례식이야.”
진도현은 아무 말 없이 바로 전화를 끊었다. 만약 진씨 가문 어르신이 아니라 지씨 가문 어르신의 장례식이라고 말했다면 진도현은 올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장례식 준비를 끝내고 블로그를 보고 있었는데 한 블로거가 새로운 게시물을 올렸다.
[남자 친구 카드 결제 내역 문자를 보니 16억이 긁혔어요, 의심할 만한 상황 맞죠?]
자극적인 제목으로 시선을 끄는 게시물이라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 블로거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호기심에 들어가 보니 내 예상대로 진도현 회사 직원 정윤지가 맞았다.
진도현이 회사를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서로를 많이 사랑했다. 주요 업무를 제외한 다른 업무, 면접과 직원 교육을 내가 직접 맡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인의 추천으로 회사에 들어오게 된 정윤지를 조사하다가 블로거로 활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게시물을 클릭하니 댓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블로거의 남자 친구가 돈을 밝히는 여자랑 바람나서 카드까지 준 것 같으니 조심하라는 댓글을 보고 뻔한 내용이 시시해서 다른 블로그를 보려고 했는데 정윤지가 답글을 달았다.
[정윤지: 여러분, 불륜녀가 있는 게 확실해요. 남자 친구가 불륜녀랑 데이트하러 간 것 같은데, 지금 불륜녀 잡으러 가려고요.]
답글 아래에 커플 전용 앱을 캡처한 사진도 있었는데 정윤지 남자 친구가 내비게이션에 찍은 주소가 적혀있었다. 그곳은 바로 진도현의 본가가 있는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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