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서 멈춘 아이의 시간제2화
이 화는 약 4187자. 본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2화 미리 읽기 중 마지막 화입니다. 이어지는 제3화부터는 공식 앱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젊은 경찰관이 연민의 눈빛으로 다가와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주더니, 부검 보고서가 그렇게 빨리 나오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는 잠시 나를 위로한 후, 집으로 보내주었다.
밤 12시쯤 중앙광장을 지나는데, 내일부터 연휴가 시작되기 때문인지 사람들이 광장에 북적이고 있었다.
나는 전화기를 내려다보았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갑자기 온 세상이 나를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파트마다 온통 불빛이 가득한데, 그중 나를 반기는 불빛은 없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들의 선물로 미리 준비해 두었던 로봇 장난감을 품에 안고, 멍하니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텅 빈 집안에서 아들의 숨결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들 유치원의 선생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입을 열자마자 흐느꼈다.
[종현이 아버님, 종현이 일 들었습니다.]
전화기 저쪽의 선생님이 울먹이는 소리에 내 마음도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엄밀히 따지면 남이라고 할 수 있는 선생님도 아내보다 아들에게 더 마음을 쓰고 있었다.
나는 쉰 목소리로 선생님에게 오늘 일어난 일을 말해주었다. 선생님은 아내가 아들을 베란다에 가두었다는 말에 몹시 놀라는 것 같았다.
[오늘 종현이가 유치원에서 가영이를 밀어 넘어뜨렸어요. 가영이가 한참을 울었기 때문에, 방과 후에 제가 종현이 어머님께 그 일을 말씀드렸어요. 어머님이 종현이에게 화를 많이 내셨고, 종현이를 많이 나무라셨어요.]
[사실은 가영이가 먼저 종현이가 쌓아 올린 블록을 밀어 넘어뜨렸고, 종현이를 엄마 없는 아이라고 놀렸거든요. 그걸 제가 다 설명했는데도 종현이를 그렇게 혼내시더라고요.]
[가영이가 어려서부터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 그런지 성격이 좀 강한 편인데다가, 종현이 어머님이 자기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알고는 자주 종현이를 괴롭히곤 해요. 그때마다 종현이 어머님은 괜찮다고 하시고, 종현이에게 가영이한테 양보하라고 하시더라고요.]
...
전화를 끊은 나는 마음이 싸해졌다.
이번에도 역시 가영이 때문이었다.
가영이는 왕지연의 첫사랑 박명우의 딸이다.
종현이가 가영이와 같은 유치원을 다니게 된 후로, 왕지연은 늘 가영이의 고자질에 아들을 혼냈고, 아들은 가영이를 아주 싫어했다.
왕지연은 교육학 석사로 육아 인플루언서이다. 그녀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과학적 육아를 주장해왔다.
그녀는 아들에게 엄격했고, 아들이 아주 작은 잘못을 하나 범해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벌을 내렸다. 내가 이것에 대해 그녀와 대화를 시도하면, 아내는 정색하며 이것이 심리 강화이고, 그렇게 해야 아들이 잘못을 고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신이 몰라서 그래요. 사람들은 항상 여자아이에게만 자신을 잘 보호하라고 가르치지, 남자 아이들의 부모에게 자기 아들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못하도록 교육하라고 가르치지 않아요.”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지금 아들을 잘 가르쳐놓으면, 아들이 평생 나에게 감사할 거예요.”
그녀는 자신의 이런 주장을 담은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빠른 속도로 지지자들을 모았고, 곧 육아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처음에 나는 그녀의 말을 믿었고, 아내가 그저 아들에게 좀 엄격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어디에 자기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엄마가 있겠는가?
그러나, 박명우의 딸이 나타난 후 모든 것이 변했다.
왕지연은 매일 유치원이 마치면 박명우의 딸을 집으로 데려왔고, 친절하게 그 아이와 놀아주고, 책을 읽어주고 하다가 박명우가 퇴근하면 아이를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거실은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바비인형으로 가득 찼고, 아들의 로봇 장난감은 아들의 방 한쪽으로 밀려났다.
가영이가 잘못을 범했을 때, 아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아이를 달랬다.
“여자 아이는 공주님처럼 돌봐줘야 해요!”
그러나, 아들이 잘못을 범하면, 아내는 엄하게 나무란 다음 자기 방으로 들어가 반성하라고 했다.
두 아이가 다툴 때면, 아내는 항상 종현이에게 말했다.
“가영이는 엄마가 없어. 불쌍하잖아. 종현이가 가영이에게 양보해야 해.”
“너는 남자 아이잖아. 여동생 걸 빼앗으려고 하면 안 돼.”
그녀는 모든 좋은 것, 모든 사랑을 다른 사람의 딸에게 주었고, 자기 아들은 고아처럼 내버려두었다.
그래서, 가영이는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종현이를 엄마가 없는 아이 같다고 놀리곤 했다.
이것 때문에 나는 왕지연과 자주 싸웠고, 그때마다 그녀는 화를 내며 이혼하자고 했다.
아들은 우리가 이혼을 말할 때마다 놀라서 며칠 동안 잠을 잘 못 잤고, 나는 그런 아들을 보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아들을 위해 참고 참았는데, 결국 오늘 이렇게 아들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거실에 가득한 바비인형을 보며, 마음에 분노가 솟구쳤다.
나는 가영이의 장난감을 모조리 한군데 모아 복도에 내놓은 다음, 텅 빈 거실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왕지연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해맑은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왔고, 그 뒤로 그녀의 전 남자친구 박명우가 따라들어왔다. 그 친밀하고 다정한 모습이 마치 한 가족 같아 보였다.
“의처증도 아니고, 전화를 왜 이렇게 해대요?”
들어서면서 왕지연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투덜댔다. 그 뒤로 따라들어오는 남자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분노가 솟구친 나는 왕지연에게 크게 소리쳤다.
“어디 갔다 와? 종현이가 베란다에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자아이의 비명소리가 내 말을 끊고 들어왔다.
“내 바비 인형! 내 바비 인형 다 어디 갔어?”
“양종현 이 나쁜 녀석이 내 바비 인형 다 가져갔지? 양종현 이 도둑놈!”
가영이의 말이 내 머리를 세게 한 대 치고 가는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앉아 울고불고하는 여자아이를 쳐다보며, 달려가 그 아이를 한 대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 아들이 이렇게 무시당하고 멸시당하며 살고 있었구나!
왕지연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여자 아이를 부드럽게 품에 안아 주었다.
“공주님, 울지 마. 아줌마가 내일 새걸로 사줄게! 종현이 그 나쁜 놈한테는 주지 말자.”
품에 안은 가영이를 부드럽게 위로하는 그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자기 아들을 말할 때는 목소리와 표정이 싸늘해졌다.
“종현이 이 녀석은요? 이 녀석 오늘 유치원에서 가영이를 밀어놓고, 끝까지 미안하다고 안 했어요.”
“가영이가 너그럽게 넘어가 줬는데, 그 녀석 또 가영이 케이크를 집어던졌다고요! 이게 다 당신이 너무 오냐오냐해서 그런 거예요.”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내가 도대체 어떤 여자와 결혼을 한 거지?
그녀는 남의 딸은 애지중지 보배처럼 챙기면서, 자기 아들은 원수처럼 대했다.
내 눈빛이 무서웠는지, 제발이 저린 왕지연이 몸을 움츠리며 뒤로 물러섰다.
내내 아무 말 없이 있던 박명우가 겸연쩍게 웃으며 아이와 왕지연 앞으로 나섰다.
“형님, 오늘 제가 야근을 하는 바람에, 지연이한테 가영이를 좀 돌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지연이가 가영이하고 백화점에 갔다가 좀 늦은 거예요. 다른 오해는 하지 마세요.”
왕지연이 품 안의 가영이를 더욱 꼭 안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투에서 비웃음이 묻어났다.
“길게 변명할 필요가 뭐 있어? 우리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그녀가 말하면서 시선을 나에게로 옮겼다. 눈을 부릅뜨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나하고 명우 씨는 당당해요. 남자 혼자 딸 키우는 게 힘들어 보여서, 좀 도와주는 것뿐이잖아요.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우릴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말아요.”
“이 녀석은 어딨어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겠대요? 가영이가 착해서 이미 용서했어요. 이제 나와도 된다고 해요.”
화가 난 나는 테이블 위에 있던 꽃병을 집어 들어 바닥에 던졌다. 한 쪽에 있던 가영이가 ‘으앙’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조금 분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뭐 하는 거예요? 녀석이 잘못을 저질렀는데, 엄마가 혼내지도 못해요? 당신이 매번 그렇게 오냐오냐하니까 그 녀석이 어른 무서운 줄 모르는 거라고요.”
“그 나쁜 놈이 지금 어린애들을 괴롭히도록 내버려두면, 나중에 어른이 돼서는 흉악범이 될 거라고요!”
가슴에서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왕지연을 노려보며 한마디씩 또박또박 말했다.
“그 나쁜 놈 죽었어. 어른이 될 수 없어. 앞으로는 절대 네 전 남자친구 딸 못 괴롭혀.”
왕지연이 멍하니 쳐다보다가 갑자기 화를 내며, 내 얼굴에 삿대질을 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해요? 자기 아들을 그렇게 저주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나는 목소리를 높여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종현이 죽었다고, 네가 반성하라고 베란다에 가두는 바람에, 18층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네 아들 죽었어! 왕지연, 네가 죽인 거야! 알아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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