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블루: 가면의 법칙제1화
이 화는 약 1918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여배우다.
소속사는 내게 새로운 야생 생존 리얼리티 쇼의 출연 계약서를 내밀었다. 조건은 딱 하나. 철저하게 악역을 자처하며, 그들이 새로 밀어주는 ‘국민 여동생’을 돋보이게 만드는 발판이 될 것.
하지만 진짜 문제는 촬영 첫날 발생했다. 제작진 전체와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어 버린 것이다. 대본이 있던 리얼리티 쇼는 순식간에 날 것 그대로의 진짜 생존 상황으로 변해버렸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임시 거처를 짓고, 야생 동물을 덫으로 잡고, 불을 피웠다. 그곳은 내게 지옥이 아니라 완벽한 놀이터였다.
반면, 카메라 앞에서 그토록 ‘무결점’을 연기하던 아이돌들은 서로 소리를 지르고, 보급품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며 밑바닥을 드러냈다.
그리고 우리 중 누구도 알지 못했던 사실 하나.
숲속에 숨겨진 카메라들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고, 우리의 모든 추태와 생존기는 24시간 내내 전 세계로 실시간 스트리밍되고 있었다.
* * *
“2억. 내 최종 제안이야.”
“3억,” 내가 차분하게 받아쳤다. “단 한 푼도 깎을 수 없어.”
내 매니저인 민 실장은 금방이라도 뒷목을 잡고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서윤아! 너 지금 제정신이야? 네 이미지는 이미 바닥을 쳤어. 제작사에서 너 같은 애를 써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감사한 줄을 몰라!”
그 바닥을 친 이미지라는 게 대체 누구 때문인데.
투자자와 단둘이 ‘술자리’를 가지라는 제안을 거절했을 때, 소속사는 내가 촬영장에서 갑질을 일삼는 안하무인이라는 찌라시를 퍼뜨렸다. 눈병에 걸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을 때는 선배 배우에게 눈을 흘겼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났다. 같은 소속사의 남동생 뻘인 신인 아이돌이 대기실에서 내 몸을 더듬기에 밀쳐냈더니, 나는 순식간에 ‘신인 괴롭히는 무서운 선배’가 되어 업계에서 매장당했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머금고 천천히 삼켰다. “단순히 출연하는 대가로 2억이라면 받아들일게. 하지만 전국민이 보는 방송에서 온갖 밉상 짓은 다 해가며 당신들이 새로 키우는 채유리를 천사로 만들어주는 값이라면, 1억은 더 받아야지.”
내 전속 계약 만료는 두 달 뒤였다. 민 실장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씩씩거리며 콧김을 뿜었지만, 결국 계약서에 서명했다.
의 출연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오며,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완벽했다. 계약이 끝나면 이 더러운 바닥을 완전히 뜰 생각이었다. 연예계 은퇴.
내 첫 번째 목적지는 이미 정해두었다. 남미의 깊은 아마존 우림.
아, 생각만 해도 온몸의 피가 도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아는 여배우 ‘한서윤’이 되기 전, 나는 구독자 100만 명을 거느린 익명의 야생 생존 전문 스트리머 ‘하늘’이었다. 일 년에 두 번, 나는 문명의 발길이 닿지 않는 오지 한가운데로 들어가 홀로 생방송을 진행하곤 했다.
그러다 길거리 캐스팅이라는 덫에 걸려 이 지옥 같은 연예계에서 꼬박 2년을 썩은 것이다.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다. 거친 야생의 냄새가 그리웠다. 내게 이 쇼는 돈까지 쥐여주는 달콤한 휴가나 다름없었다.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야,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좀 봐.]
보지 않아도 뻔했다. 소속사의 홍보 기계들이 어떻게 톱니바퀴를 굴리고 있을지 안 봐도 눈에 선했으니까.
#악녀_한서윤 #채유리 #야생_열흘_밤낮
댓글창은 예상대로 양극단을 달렸다.
절반은 채유리를 향한 맹목적인 주접이었다.
[헐, 우리 유리 도현 오빠랑 같이 예능 나오는 거야? 대박!]
[근데 생존 예능이라니? 우리 애기 살도 연하고 눈물도 많은데 어떡해ㅠㅠ]
[유리야, 언니들이 지켜줄게!]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나를 향한 저주였다.
[한서윤은 아직도 안 망함? 대체 누구 백이길래 계속 기어 나오는 거임?]
[진짜 쟤 얼굴 볼 때마다 토나옴. 하차 청원 안 올라오냐?]
[한서윤 야생 나가면 애들 음식에 독 탈 듯ㅋㅋㅋ]
[우리 유리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라, 미친년아.]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화면을 쓸어 넘긴 뒤, 편안하게 낮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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