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 김에 잘 살아보자제3화
이 화는 약 2215자. 본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3화 미리 읽기 중 마지막 화입니다. 이어지는 제4화부터는 공식 앱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나는 혼수품 상자를 열어 몇 장의 집문서를 꺼냈다.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 나에게 물려주신 물건들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챙기고 배씨 가문을 나섰고, 해가 저물 무렵에야 돌아왔다.
대문 옆을 지키던 문지기는 멀리서 나를 보고는 다급하게 달려와 말을 건넸다.
“미정 아가씨, 어르신께서 오늘 하루 종일 아가씨를 찾으셨습니다. 지금 한껏 화가 나 계시니 빨리 들어가 보셔야 할 듯합니다.”
나는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문을 지나 안뜰로 들어섰다.
여기는 한때 내가 평생을 보내며 살아온 곳이자, 동시에 나를 가둬 둔 족쇄 같은 곳이었다.
옛날을 떠올리며 다시 마주한 이 길이,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만큼 쓰라리고 허망했다.
“미정아, 드디어 돌아왔구나!”
배이경이 반가운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렇게 창피한 짓을 해 놓고도, 뻔뻔하게 바깥을 돌아다니다니!”
배씨 가문 어르신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고, 사모님 역시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넌 창피한 줄 모를 수도 있겠지만, 우리 배씨 가문은 달라!”
나는 문턱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영문을 모른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제가 무슨 창피한 일을 저질렀나요?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죠?”
사모님은 말문이 막힌 듯 얼어붙더니,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이경이가 다 털어놓았어. 어젯밤 너희 둘이...”
“사모님, 저는 어젯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오늘 아침엔 곧장 볼일을 보러 나갔습니다.”
나는 일부러 놀란 표정으로 배이경을 쳐다봤다.
“어젯밤이라니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아니, 어젯밤 우리 둘이 분명 함께 있었잖아!”
배이경은 당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미정아, 설마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아니겠지? 우리 이미...”
“도련님,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세요!”
나는 비웃음이 스치는 눈길로 그의 목덜미에 찍힌 붉은 자국을 보았다.
“아... 도련님께서 어젯밤 여성분과 정을 나누셨나 보군요.”
“하지만 전 어젯밤 도련님을 본 적이 없어요. 어쩌면 술에 취해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닐까요?”
배이경은 그 말에 크게 충격을 받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그럴 리가... 아니, 말도 안 돼.”
나는 소매 안에 감춰 두었던 옥패를 꺼내어 보이며, 고의로 목소리를 높였다.
“마침 모두 모인 자리이니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어릴 적 저와 도련님의 혼사는 양가 부모님께서 정해 주신 약조였죠.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고, 이제 두 집안은 격이 맞지 않아요.”
“저는 죄인의 집안에서 살아남은 고아고, 도련님은 앞으로 높은 관직을 누리게 될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저를 정실부인으로 맞아들이시지는 않을 테지요. 게다가 도련님께 곁을 지켜 줄 다른 아리따운 분이 있다면, 저 역시 첩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차라리 여기서 혼약을 깨버리고, 저도 제 길을 가겠습니다. 앞으로 저희 두 사람은 각자 갈 길을 가는 겁니다.”
나는 허리를 곧게 편 채, 딱 부러지게 선언했다.
“뭐, 뭐라고?”
배이경은 심한 충격을 받은 듯,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미정아,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두 분께서는 이미 결혼을 서두르는 걸 허락하셨잖아.”
김영애도 낯빛이 험악해지며 쏘아붙였다.
“우리는 이미 어젯밤 일을 문제 삼지 않기로 했는데, 왜 갑자기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거냐?”
나는 차가운 표정으로,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사모님께서는 대체 무슨 근거로 어젯밤 여자가 저라는 걸 단정 지으시는 겁니까? 이렇게 제 명예를 짓밟으시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요?”
나는 한 마디를 할 때마다 한 발씩 다가갔고, 이 악독한 여인의 코앞에 이르러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설마... 사모님께서 저를 해치려고 수작을 쓰신 건 아니겠죠? 그렇다면 저 주미정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억울함을 밝히겠습니다.”
김영애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황급히 손을 뻗어 나를 밀쳐내려 했다.
“너,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러나 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굳게 선 채로 호통쳤다.
“관아에 고발해, 관청에서 죄를 묻겠습니다. 이 억울함을 반드시 밝히고 말겠어요!”
“그, 그건 안 돼!”
김영애는 본능적으로 외치며, 다급하게 변명했다.
“이, 이런 일이 밖으로 알려지면, 체면이,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니...”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역시나 김영애도 사태가 커지는 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이 사건이 누구 짓인지는 뻔했다.
“이미 이렇게 된 이상, 더 할 말도 없습니다.”
나는 정적에 잠긴 배이경 일가를 차례로 훑어보며, 다시 한번 결심을 밝혔다.
“제 뜻은 변함이 없어요. 오늘부로 혼약은 끝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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