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그날 밤의 다른 선택제3화
이 화는 약 2569자. 본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3화 미리 읽기 중 마지막 화입니다. 이어지는 제4화부터는 공식 앱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번만큼은 다시는 내 남동생도, 우리 가족도 파멸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내가 사무실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복도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비명을 질렀다.
“누가 좀 빨리 올라가 봐요! 한유진 씨가 옥상 주차장 난간 끝에 서서 뛰어내리겠다고 하고 있어요!”
전생에서 나는 똑같은 말을 들었었다. 귀를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이명이 귓가를 가득 메웠다.
순간, 발밑의 공간이 기울어지는 듯했고 나는 하마터면 균형을 잃을 뻔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사람들을 따라 옥상 주차장으로 올라갔다.
여전히 빗줄기는 건물을 세차게 후려치고 있었다. 주변의 고층 빌딩 사이로 거센 바람이 울부짖었다. 전생에서 보았던 바로 그 장면이 다시 내 눈앞에 펼쳐졌다.
한유진은 옥상 주차장 가장자리 근처에 서서 구겨진 데다 빗물에 흠뻑 젖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떨리는 손에는 마치 증거물이라도 되는 듯 찢어진 천 조각을 꼭 쥐고 있었다.
한유진은 나를 발견하는 순간, 시선을 정확히 내게 고정했다. 그러자 눈가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서은영 씨... 서은혁 씨가 저를 성폭행했어요! 여기 그 사람의 정액이 묻어 있다고요!”
한유진은 손가락을 떨며 찢어진 천 조각을 들어 올렸다.
“서은영 씨, 저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정말 몰랐어요. 하지만 눈을 감을 때마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계속 떠올라서 무서워요. 당신 남동생 때문에 제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다고요”
사람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퍼져 나갔다. 점점 더 많은 직원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강도윤이 굳은 얼굴을 한 채 내 쪽으로 돌아섰다.
“서은영 씨, 동생한테 전화해 보세요. 지금 당장요.”
나는 강도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제 남동생은 어젯밤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어요. 한유진 씨를 성폭행했을 리 없습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서은혁의 이름을 눌렀다.
몇 번 신호음이 울린 뒤, 영상통화 화면에 은혁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누나?”
나는 휴대폰 화면을 한유진 쪽으로 돌렸다.
“은혁아, 지금 어디야?”
“집인데.”
“어젯밤에 밖에 나갔어?”
은혁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누나가 시키는 대로 계속 방에 있었어. 밤새 게임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한유진이 홱 고개를 들었다.
“거짓말이에요.”
한유진이 휴대폰 화면을 노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잖아요. 어젯밤에 검은색 재킷을 입고, 검은색 지프차를 몰고 나를 찾아왔었잖아요.”
눈물이 한유진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러고는 내 브래지어를 억지로 찢었잖아요. 내 목에 난 이 멍을 보라고요. 전부 당신이 한 짓이잖아요.”
은혁이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얼굴은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갑작스러운 성폭행 혐의와 주변에서 쏟아지는 경악 어린 시선에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인지, 은혁이는 몇 마디밖에 하지 못했다.
“거짓말이야! 난 밤새 집에서 게임하고 있었다고요!”
그러자 한유진은 마치 그 말이 자신에게 또 한 번 치욕을 준 것처럼 반응하며, 히스테릭하게 비명을 질렀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어젯밤 그 사람은 당신이었어요! 당신이 나한테 누나가 좀 차갑게 굴 수도 있지만 사실은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이고, 나를 데려다 달라고 당신을 보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내가 당신 차에 탔던 거라고요.”
눈물이 한유진의 얼굴을 타고 계속 흘러내렸다.
“나한테도 남자친구가 있어요. 내가 왜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 말을 듣자 동료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
“역시 돈 많은 집안에서 자란 애들은 다르구먼. 이런 짓을 해놓고도 죄책감 하나 없이 저렇게 서서 부정하는 걸 보니 말이야.”
“저런 사람은 반드시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해.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까지 전부 조사해야 한다고.”
“이번이 처음이 아닐지도 몰라. 세상에, 완전히 괴물이잖아.”
은혁이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사방에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의 시선에 둘러싸인 은혁이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겁먹은 아이처럼 보였다.
“난 밤새 내 방에서 게임하고 있었어요! 증인도 있다고요! 못 믿겠으면 직접 물어보면...”
하지만 은혁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한유진이 갑자기 터져 나오듯 울기 시작했다.
“서은영 씨는 당신 누나잖아요. 당연히 당신 편을 들겠죠.”
한유진은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울고 있었다.
“나는 성폭행을 당했다고요. 그런데 지금 여기서 당신들은 모든 상황을 뒤집어서 오히려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고 있잖아요? 내가 정말 죽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들 거예요?”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더욱 감정적으로 변했다.
“이건 너무하잖아! 한유진 씨가 고작 인턴이고, 당신들 가족처럼 돈도 인맥도 없다고 해서 이런 일을 저지르고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이제는 피해자를 죄인처럼 몰아가려고 하는데, 이게 말이 돼?”
화가 난 몇몇 남성 동료들이 주먹을 꽉 쥔 채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만해요. 누군가는 저 사람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죠.”
내가 앞으로 나서서 회사 동료들을 막으려던 순간, 등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내가 뒤를 돌아보자, 옥상 주차장 쪽으로 다급히 달려오는 내 부모님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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