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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그날 밤의 다른 선택제1화

이 화는 약 2522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신입직원 연수 과정에 참여 중인 인턴 한유진은 태풍이 몰아치던 밤, 부서 단톡방에 도움을 요청했다.

태풍으로 아파트가 침수되고 있는데 어디로도 갈 수 없다며, 내 남동생인 은혁이에게 근처 호텔까지 태워다줄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전생의 나는 결국 그 부탁을 들어주며 은혁이를 한유진에게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한유진은 찢어진 브래지어를 움켜쥔 채 나타나 눈물을 흘리며 내 남동생이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고발했다.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은혁이는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고, 결국 학교에서 정학 처분까지 받았다.

우리 가족도 무너졌다.

가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데다,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지셨고, 어머니 역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반면 한유진은 쏟아지는 동정 여론을 등에 업고, 우리 가족에게서 13억 원의 합의금을 받아내며 회사에서 정규직 전환에도 성공했다.

심지어는 내게 돌아올 승진 자리까지 차지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내 앞에 나타나 비웃듯 말했다.

“서은영 씨, 지금의 내가 있는 건 전부 당신 덕분이에요. 그날 당신이 은혁 씨를 보내지만 않았어도, 내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없었겠죠.”

그렇게 모든 것을 잃은 뒤 눈을 떴을 때, 나는 다시 태풍이 몰아치던 그날 밤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부서 단톡방에는 전생과 똑같은 메시지가 올라와 있었다.

‘집이 침수되고 있어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어디로도 갈 수가 없어요.’

‘은영 씨, 혹시 동생분이 근처 호텔까지만 태워다줄 수 있을까요?’

나는 차 키를 집어 들고 나가려는 은혁의 손을 즉시 붙잡으며, 부서 단체 채팅방에 답장을 보냈다.

“은혁이는 가지 않을 거예요. 주소를 보내세요. 제가 직접 긴급구조대와 시 재난대응팀에 연락하겠습니다.”

* * *

부서 단톡방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몇 초 후, 한유진이 음성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메시지 너머로 거센 빗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전 정말 긴급 구조대까지 개입시키고 싶지는 않아요. 오늘 밤에는 정말 생명이 위험한 다른 사람들도 있을 텐데, 제가 괜히 도움을 요청해서 그분들에게 가야 할 지원을 빼앗게 된다면 너무 죄책감이 들 것 같아요.”

“제가 사는 아파트가 아직 그렇게 심각한 상황인 건 아니거든요. 그냥 은영 씨 집이 여기서 차로 10분밖에 안 걸리고, 은혁 씨가 지프차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혹시 근처 호텔까지만 데려다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그러자 거의 기다렸다는 듯 동료들이 하나둘 의견을 보태기 시작했다.

[오늘 밤 긴급구조대는 아마 정신없이 바쁠 거야. 우리가 굳이 신고를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안 하는 게 낫지.]

[사륜구동 지프차라면 침수된 도로도 우버보다 훨씬 잘 지나갈 수 있을 거야.]

나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시에서는 이미 외출 금지 긴급명령을 내렸어요. 제 남동생은 아직 19살에 긴급구조대원도 아니고, 그 아이의 지프차 역시 구조 차량도 아니에요. 만약 은혁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누가 책임지실 건가요?]

한유진이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맞아요. 제가 괜한 부탁을 했네요. 다른 방법을 찾아볼게요.]

나는 이제야 대화가 정말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잠시 후, 또 다른 메시지가 올라왔다.

[내일 아침 출근 시간까지 제가 나타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 주세요.]

부서 단톡방이 순식간에 난리가 났다. 다른 사람이 미처 답장하기도 전에, 상사인 강도윤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서은영 씨, 한유진 씨는 당신 팀원이잖아요. 저는 우리 회사의 관리자들이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기 팀원이 아무도 도움 없이 방치되는 일이 없도록 책임 있게 챙길 거라고 믿습니다.]

소파에 앉아 있던 은혁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누나, 그냥 내가 갈까?”

은혁은 겨우 19살이었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이 설마 자신의 인생을 망쳐놓을 수도 있다고는 아직 생각하 못할 만큼 어린 나이였다.

나는 은혁이 집으려던 차 키를 조용히 다시 테이블 위로 밀어놓았다.

“앉아.”

“그래도 유진 씨 집이 침수되고 있다고 했잖아. 오늘 밤에는 거기서 지낼 수도 없다고 하고. 정말 아파트가 침수되고 있다면...”

내가 은혁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은혁이 네가 아니라, 그 사람을 도와줄 사람들이 따로 있어.”

나는 다시 부서 단톡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은혁이는 오늘 밤 개인적인 일정이 있어서 갈 수 없습니다.]

[한유진 씨, 만약 정말 위험한 상황이고, 내일 아침까지 아무 연락도 되지 않는다면 제가 직접 신고해서 누군가가 한유진 씨의 상태를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누군가 답장을 보냈다.

[서은영 씨... 너무 냉정한 거 아닌가요?]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의견을 잇달아 보냈다. 알림은 쉴 새 없이 계속 울렸다.

그러던 중 강도윤이 나를 직접 태그했다.

[정말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겠죠? 위기 상황에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그 사람의 인성을 잘 보여주는 법입니다.]

잠시 후, 한유진이 사진 한 장을 올렸다. 검게 탁해진 침수된 물이 나무 바닥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침대 옆에는 분홍색 슬리퍼 한 켤레가 물 위에 둥둥 떠 있었고, 물은 이미 매트리스가 놓인 침대 프레임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가 하나 올라왔다.

[팀장님, 서은영 씨를 탓하지는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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