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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겨울의 이별 이야기제1화

이 화는 약 2607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함께 살려고 마련했던 신혼집 계약을 해지하자 부동산 중개인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계약금까지 다 냈잖아요. 예비 신랑분 돌아오시면 같이 서명하시지 그래요?”

나는 웃으며 열쇠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안 기다릴래요. 그 사람은 첫사랑이랑 스키 타러 가야 하거든요.”

연애한 지 5년. 강도현은 해마다 겨울이면 일본에 갔다.

출장이라고 했지만, SNS에 올라오는 건 후지산의 눈 덮인 봉우리뿐이었다.

신혼여행은 언제 가느냐고 물을 때마다 도현은 ‘다음에’라고 했다.

그러다 어제, 집에 두고 간 도현의 낡은 카메라에서 사진 수백 장을 발견했다.

같은 여자, 같은 구도, 같은 배경...

벚꽃과 흰 눈, 그리고 후지산...

내가 강도현과 함께 멀리 나가 본 건 옆 도시로 신혼집을 보러 갔을 때가 전부였다.

그날 강도현은 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우리는 그런 겉치레 하지 말고, 착실하게 살자.”

내 손으로 직접 꾸민 신혼집을 바라보다가, 나는 끝내 무너져 소리 내 울고 말았다.

중개인이 조심스럽게 펜을 내밀었다.

“그래도 계약 해지하실 건가요?”

“네, 해지할게요.”

나는 웃으며 눈물을 닦았다.

퇴사 신청도 이미 승인됐다. 오늘이 이 도시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후지산이 내게 올 일은 없지만, 나는 멀리 떠날 수 있었다.

* * *

“인아야, 너 정말 계약 해지했어?”

부동산을 나오자마자 도은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응, 했어.”

“계약금이 6천만 원이잖아. 너 혼자 해지해도 되는 거야? 강도현은 알아?”

“일본에 있어.”

“출장 갔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은비가 2초쯤 말을 잃었다.

“인아야, 아무리 싸웠어도 집까지 이렇게 하면...”

“걔 낡은 카메라에서 사진 수백 장을 찾았어. 같은 여자, 같은 산을 5년 내내 찍었더라.”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유채린이랑 찍은 거야?”

도은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강도현이 사진 한 장을 보내 왔다.

흰 도자기 잔에 담긴 따뜻한 코코아, 잔 옆면에는 작은 사슴이 그려져 있었다.

사진에는 이런 글이 붙어 있었다.

[도쿄에 눈 온다. 추워 죽겠네.]

나는 그 잔을 알아봤다.

지난겨울에도 강도현은 똑같은 각도에서 찍은 사진을 보냈다.

어느 가게냐고 묻자 아무 데나 들어갔다며 기억이 안 난다고 했었다.

그런데 낡은 카메라 속에는 다른 사진이 있었다.

같은 가게에 앉은 유채린이 똑같은 코코아를 옆에 두고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었다.

내가 본 적 없는 와인색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5년 동안 해마다 겨울이면 같은 가게에서 같은 코코아를 마시고 같은 사람을 찍었다.

하지만 내게 보낸 건 언제나 음식과 풍경 사진뿐이었다.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아파트에 도착해 신발을 갈아 신다가 무심코 신발장을 내려다봤다.

강도현의 운동화 옆에 흰색 캔버스화 한 켤레가 더 있었다.

사이즈는 35, 내 신발은 37 사이즈였다.

허리를 숙여 깔창을 들춰 보니 안에 메모지가 끼워져 있었다.

[현아, 지난번 신발은 발이 아팠어.]

‘현아...’

5년이나 사귀면서도 도현에게 그런 애칭이 있다는 걸 몰랐다.

강도현은 나한테 그런 이름으로 부르게 한 적이 없었다.

신발을 제자리에 놓고 침실로 들어갔다.

강도현의 노트북 화면에는 여행 사이트 예약 내역이 떠 있었다. 홋카이도, 2월 14일 출발. 개인탕과 가이세키 요리가 포함된 2인 온천 패키지였다.

요청 사항도 적혀 있었다.

[채린이 생일.]

내 생일은 3월 9일.

유채린의 생일은 2월 15일이었다.

지난해 3월 9일, 저녁에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강도현은 회사 회식이 있다고 했다.

밤 11시까지 기다린 끝에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이제 집이야. 자? 생일 축하해. 다음에 챙겨 줄게.”

다음에.

그 말은 늘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었다.

나는 강도현의 휴대전화에 연결된 클라우드 사진첩을 열었다.

사진은 3천 장이 넘었다.

내 사진은 11장, 그중 7장은 연애 첫해에 찍은 것이었다.

그다음 4년 동안 찍힌 건 고작 4장이었다.

[도쿄의 눈]이라는 폴더를 열자 온통 유채린 사진뿐이었다.

기모노를 입은 모습, 눈밭을 걷는 모습, 일본 신사 앞에서 두 손을 모은 모습...

구도도 조명도 정성스러워서 잡지 화보처럼 보였다.

반면 내 사진은 늘 대충 찍었다. 각도도, 빛도 살피지 않았다.

“나도 좀 예쁘게 찍어 주면 안 돼?”

내가 투정 부리면 강도현은 늘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화보 찍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됐지.”

‘이 정도면 됐지.’

강도현이 내게 가장 자주 하던 말이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강도현이 영상 통화를 요청해왔다.

전화를 받았다.

화면 속 도현은 회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뒤로는 호텔 복도가 보였다.

“밥 먹었어?”

“응.”

“나 모레 돌아가. 오후 3시 비행기로.”

“알았어.”

“목소리가 왜 그래?”

“좀 피곤해서.”

“일찍 자.”

강도현이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불렀다.

“현아, 차 왔어.”

강도현은 고개를 돌려 대답하더니 다시 나를 봤다.

“채린이가 불러. 이만 끊을게.”

“채린이가 왜 네 호텔에 있어?”

“옆방에 묵어. 같이 밥 먹으러 나가려고.”

“해마다 같이 가는 거야?”

“그냥 일정이 겹친 거야. 이상한 생각 하지 마.”

강도현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을 설명한다는 듯했다.

“아, 맞다. 너 줄 마그넷 샀어. 이번엔 한참 골랐다.”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문에는 후지산 모양 마그넷이 5개가 붙어 있었다. 크기도, 구매한 해도 제각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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