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 넌?제1화
이 화는 약 2497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폰 케이스에 자꾸만 기름기가 묻어나와 절친에게 하소연하자 인간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날 밤 누군가가 나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내 가죽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 걸로 해.”
가죽이 벗겨진 썩은 시체와 서로 비난하는 룸메이트, 그리고 둘도 없는 사이인 절친 중에 진짜 귀신은 과연 누구일까?
* * *
우정을 과시하려고 우리 룸메이트 넷은 같은 폰 케이스를 샀다.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게 전에 내가 사용했던 폰 케이스와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유일한 단점이 바로 기름기가 많다는 것이었다.
나는 손에 땀이 많아 그런 줄 알았다. 그날 해야 할 숙제가 많은 탓에 반나절 동안 휴대폰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밤에 봤을 때도 폰 케이스에 누런 기름기가 묻어있었다.
나머지 셋이 다 이 케이스를 사용하고 있어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반나절마다 닦아야 해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결국 나는 참다못해 절친 전희진에게 하소연했다. 그런데 그녀의 답장을 본 순간 마음이 움찔했다.
[기름기가 묻어나온다고? 인간의 가죽이니까 그렇지.]
화들짝 놀란 나는 하마터면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젠장. 놀라게 하지 마.]
그런데 전희진은 나더러 폰 케이스를 빼고 홀로 밖에 나와 얘기하라고 했다.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곳에 도착한 그때 전희진이 전화를 걸어왔다. 기숙사 룸메이트 네 명 모두 같은 폰 케이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소리에 그녀의 표정이 확 변했다.
“너희 기숙사에 죽은 사람이 숨어 있는 게 틀림없어.”
겁에 질린 나는 대체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다. 전희진은 나에게 여러 가지 원인으로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같이 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제는 죽었다는 걸 몰라야 한다는 것이다. 죽었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 무슨 수를 써서든 죽이려 할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또 나에게 기숙사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진 않았는지 물었다. 나는 너무도 놀라 손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며칠 동안 폰 케이스에 기름기가 묻어난다는 말을 한 것 말고는 딱히 없었다.
죽은 사람이 절대 알아차릴 리가 없다고 하자 전희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경찰에 신고하고 기숙사를 바꾸고 싶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혹시라도 죽은 사람을 잘못 찾아낼 경우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전희진은 이제 보름만 지나면 방학이니까 조금만 더 버티고 집에 온 다음에 같이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했다.
지금으로선 그 방법밖에 없었다. 아무리 두려워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나는 대화 기록을 전부 지운 후 과일 가게에 들러 딸기를 사 들고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들어갔다.
기숙사로 돌아갔을 때 기숙사장 박예은은 자리에 없었다. 박예은은 우리 반 반장이었는데 지도 교수를 도와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어 나머지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저녁에 소등하기 전에 돌아오곤 했다.
나는 범죄를 저지를 시간조차 없는 박예은을 바로 배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 사람도 공부하기를 싫어하는데 죽은 사람이 그렇게 공부에 미쳤을 리가 없다.
나는 딸기를 먹고 있는 두 사람을 몰래 관찰했다.
이민주와 유하늘 중에 대체 누가 죽은 사람일까?
반학기나 함께 지낸 룸메이트가 죽은 사람이라니,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둔감해서 문제다. 여름방학이 거의 다 돼서야 이상함을 감지했으니 말이다.
보름, 딱 보름만 더 버티면 되었다.
나는 더는 그들을 관찰하지 않고 속으로 나 자신을 응원했다.
조별 과제를 잠깐 한 후 이민주는 메이크업하기 시작했다.
이민주는 우리 반 퀸카였는데 키가 크고 다리도 긴 데다가 얼굴까지 반반해서 대시하는 남학생이 끊이질 않았다.
이따가 남자 친구와 데이트할 겸 밥 먹으러 간다고 했다.
셋일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왜냐하면 적어도 산 사람 한 명이 옆에 있으니까.
하지만 기숙사에 나와 유하늘만 남았을 때 나는 심장이 터져 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그녀가 혹시 눈치라도 챌까 봐 밥을 사러 나가겠다고 핑계를 댔다. 그런데 나의 팔을 잡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같이 가자.”
나는 유하늘의 표정을 살피려고 했지만 두꺼운 안경알에 가려져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그냥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같이 가자.”
가로등이 식당으로 가는 길을 밝게 비춰주었고 길옆에 끌어안고 있는 커플들이 가득했다. 그래도 사람이 많아 마음이 안정되면서 겁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유하늘은 뭔가를 두려워하기라도 하듯 긴장한 얼굴로 두리번거리면서 내 팔을 꽉 잡았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얘가 죽은 사람은 아니겠지? 날 죽이려고 사람 없는 곳을 찾는 건가?’
어느새 나의 손에 땀이 흥건했다. 전희진이 했던 얘기가 문득 떠올라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하늘아, 괜찮아? 몸이 안 좋으면 밥 사고 얼른 들어가자.”
유하늘이 고개를 돌렸는데 안색이 핏기라곤 없이 창백했다. 나는 그녀를 뿌리치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계속 걱정하는 척했다.
시간이 마치 한 세기가 지난 듯했고 나의 표정도 점점 굳어졌다. 그런데 그때 유하늘이 갑자기 나의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다연아, 민주 이미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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