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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궁 속의 낯선 존재제1화

이 화는 약 2315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의사가 내 앞으로 리포트 한 장을 밀어 놓았다. 그의 손가락 끝이 마지막 줄에서 멈췄다.

“임서윤 씨, 아이의 DNA 대조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망설임이 섞여 있었다. “남편분이신 강민준 씨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내 시선이 그 문장에 박혔다.

친권 지수: 0.

배제.

지난 3년의 세월, 다섯 번의 시험관 아기 시술, 5천만 원에 달하는 비용, 그리고 내 몸을 찔러대던 백여 차례의 주삿바늘.

그 고통의 끝에 돌아온 대답이, 이 아이가 그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나는 의사를 바라보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 * *

첫 번째 시험관 시술은 3년 전 여름이었다.

시어머니 박명숙 여사는 직접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서윤아, 네 몸이 약하니까 내가 같이 가야지.” 어머니는 내 팔짱을 꽉 끼며 말씀하셨다. “민준이는 일하느라 바쁘잖니. 이런 건 내가 챙기면 돼.”

그때는 그 배려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결혼하고 2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자 시어머니는 조급해하셨고, 나는 그보다 더 절박했다.

검사 결과 내 쪽은 문제가 없었지만, 민준 씨의 정자 활성도가 다소 낮게 나왔다.

의사는 시험관 시술을 권했다.

첫 채취를 위해 14일 동안 과배란 유도 주사를 맞았다.

배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걸을 때마다 벽을 짚어야 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시어머니는 그 모든 과정을 함께하며 수시로 물과 차를 챙겨주셨다. 친정엄마보다 더 지극정성이셨다.

“다 우리 집안 잘되라고 하는 일이다.” 어머니는 늘 그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다. “너희 둘이 얼른 아이만 낳으면 내 인생에 더 바랄 게 없다.”

난자 채취 날, 수술대에 누운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통증을 견뎠다.

어머니는 밖에서 기다리셨고, 민준 씨는 회사 회의 중이었다.

이식 후 14일째, 피검사 날.

실패였다.

HCG 수치는 고작 0.8.

나는 밤새 울었다.

다음 날 시어머니는 씨암탉 한 마리를 고아 오셨다.

“괜찮다, 다시 하면 돼. 돈이 아까운 게 아니니까.”

두 번째 시도는 3개월 뒤였다.

이번에는 12개의 난자를 채취해 5개의 배아를 만들었다.

두 개를 이식했다.

14일째 피검사.

또 실패였다.

시어머니의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나를 위로하셨다. “네가 너무 긴장해서 그런가 보다. 다음엔 마음 좀 편하게 먹자.”

세 번째 시도 때는 병원을 옮겼다.

시어머니는 대학 병원 산부인과에 센터장으로 있는 동창이 있다며 그쪽으로 가자고 하셨다.

“이 센터장 실력이 워낙 좋으니 내 말만 믿어라.”

그때부터 시어머니는 시술의 모든 단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주사, 채취, 정자 수취, 그리고 이식까지.

내가 혼자 병원 다니기 힘들까 봐 그런다며 그림자처럼 따라붙으셨다.

세 번째 정자 수취 날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민준 씨는 반차를 내고 병원에 와서 샘플을 남겼다.

그가 검사실에서 나올 때, 시어머니가 마침 복도 저편에서 걸어오고 계셨다.

“다 끝났니?” 어머니가 물으셨다.

“네, 다 됐어요.” 민준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미소 지으셨다. “그래, 그럼 내가 이 센터장한테 가서 얘기 좀 해두마.”

어머니는 뒤를 돌아 연구실 방향으로 가셨다.

그때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아는 분이니 인사하러 가시는 줄로만 알았다.

세 번째 이식 후, 마침내 아이가 찾아왔다.

피검사 날, 수치는 1,200이었다.

나는 결과지를 안고 30분을 울었다.

시어머니는 나보다 더 흥분해서 그 자리에서 민준 씨에게 전화를 거셨다. “아들! 너 이제 아빠 된다!”

전화기 너머 민준 씨는 몇 초간 멍하니 있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3년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임신 기간 내내 시어머니는 우리 집으로 들어와 함께 지내셨다.

삼시 세끼 내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하셨다.

정기 검진 때마다 빠짐없이 동행하셨다.

“다 우리 집안 잘되라고 하는 거란다.” 어머니는 또 그 말씀을 하셨다. “애 낳고 나면 넌 이제 호강할 일만 남았어.”

열 달 후, 딸아이가 태어났다.

2.9kg.

간호사가 아이를 내 품에 안겨주었을 때, 나는 눈물을 쏟았다.

다섯 번의 시도.

3년의 시간.

5천만 원의 비용.

백 번이 넘는 주사.

그 모든 게 가치 있게 느껴졌다.

정말 그랬을까?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째 되던 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정기 검사 결과에 대해 대면 상담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신생아 선별 검사에 문제가 있나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내게 돌아온 건 유전자 검사 결과였다.

아이의 혈액형이 우리 부부의 조합에서 나올 수 없는 형태라 병원 절차에 따라 DNA 대조를 했다고 했다.

결과가 나왔다.

아이는 내 자식이 맞았다.

하지만 강민준의 자식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병원 복도 의자에 앉아 두 시간 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질문만이 맴돌았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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