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의 가짜 딸이 나타났다제1화
이 화는 약 2238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 집 현관 앞에 웬 소녀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당혹스러운 광경이었다.
소녀는 울부짖으며 16년 만에 드디어 엄마를 찾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 ‘엄마’라는 사람이 하필 내 아내, 차수현이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콜라를 홀짝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야, 이거 완전 아침 드라마 한 편 뚝딱이겠는데?’ 재벌가의 자극적인 친자 확인 소동. 남의 일이라면 이보다 더한 꿀잼이 어디 있겠는가.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나는 재벌가의 남편으로서 아내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식들까지 훌륭하게 키워낸, 그야말로 ‘인생 승리자’의 대본을 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전개는 내 예상보다 훨씬 빨랐고, 화살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소녀가 갑자기 나를 향해 삿대질하며 독설을 내뱉은 것이다.
내가 감히 남의 자리를 꿰찬 가짜이며, 자기 아빠의 자리를 뺏은 도둑놈이라고. 심지어 내 애지중지하는 두 아이까지 ‘근본 없는 자식’이라며 몰아세웠다.
* * *
“엄마!”
한 소녀가 다이닝룸 입구에 털썩 무릎을 꿇더니, 상석에 앉은 차수현을 향해 절을 했다.
물 빠진 티셔츠에 대충 묶은 머리. 고개를 들어 수현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16년이에요. 16년 만에 겨우 엄마를 찾았어요!”
식당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사과를 베어 물던 시우의 손이 멈췄고, 커피를 마시던 도윤의 눈썹이 움찔했다. 곁에 서 있던 박 실장님조차 평소의 포커페이스를 잃고 눈을 가늘게 떴다.
상석의 주인, 수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 당장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
나는 그저 콜라를 홀짝이며 이 상황을 관조했다.
콜라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세상이 무너져도 입안을 톡 쏘는 탄산의 쾌감은 포기할 수 없으니까. 내 인생 철학은 간단하다. 하늘이 무너져도 먹고 마시는 게 제일이다.
소녀의 이름은 한지우, 열일곱 살이다. 그녀의 주장대로라면, 지우는 17년 전 강남의 어느 라운지 바에서 수현이 하룻밤 실수로 낳은 딸이었다.
지우의 아빠인 한기태는 당시 그 바의 웨이터였는데, 만취한 수현과 하룻밤을 보낸 뒤 아이를 갖게 되어 홀로 17년을 키웠다고 했다. 이제 그 아빠가 죽을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자, 용기를 내어 친엄마를 찾아왔다는 이야기다.
“엄마, 우리 아빠 정말 얼마 안 남았어요. 아빠 평생의 소원은 제가 제 자리를 찾는 거예요…….”
지우는 바닥에 엎드려 온몸을 떨며 오열했다. 쉰 목소리로 내뱉는 말들이 꽤 절절했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보며 몇몇 젊은 가사 도우미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수현이 슬쩍 나를 쳐다봤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일단 일어나렴.” 수현이 차분하게 말했다. “박 실장님, 아이를 객실로 안내해 주세요. 그리고 유전자 검사 절차도 준비해 주시고요.”
“감사합니다, 엄마! 정말 감사합니다!” 지우는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리고는 도우미의 부축을 받아 일어났다.
그녀가 몸을 일으킬 때, 찰나의 순간 내 쪽을 향한 시선에는 명백한 증오가 서려 있었다.
그러고는 도윤과 시우를 훑어보며 입가에 아주 미세한 미소를 지었다. 나만이 포착할 수 있었던 그 비릿한 미소.
마치 이미 승리자가 된 듯한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한지우가 차수현의 딸이라는 소식을 처음 들은 건 오늘 아침, 박 실장님을 통해서였다.
아침 일찍, 휴대폰이 울렸다.
수현의 메시지였다. [일어났어? 아침 차려놨으니까 내려와.]
나는 하트 이모티콘을 답장으로 보내고 느긋하게 씻고 옷을 입었다.
내 이름은 심민준. 차성 그룹 차수현 회장의 남편이다.
사실 5년 전, 내가 이 세계로 ‘빙의’했을 때 기억나는 건 내 이름 석 자뿐이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내가 빙의한 이 신분이 그야말로 ‘로또’라는 사실을.
아내 차수현. 차성 그룹의 장녀이자 현재 회장. 모델 뺨치는 175cm의 키에 전형적인 커리어 우먼의 정석.
성격은 좀 까칠했다. 과거의 상처 때문인지 타인에게 도통 마음을 열지 않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명색이 심민준 아닌가. 나는 자유로운 영혼과 재력을 동시에 거머쥐기 위해 이 차가운 여회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취향을 분석하고, 호감도를 높일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했다.
그 결과? 예전엔 눈길조차 주지 않던 그녀가 이제는 나 없으면 못 사는 지경이 됐다.
매일 아침 출근 전에는 꼭 입을 맞춰야 하고, 퇴근하자마자 “여보, 나 왔어”라며 나를 찾는다. 밤에는 내 품에 안겨야만 겨우 잠이 드는, 마흔 줄의 차수현은 지금 내 인생 최고의 여주인공이다.
단장을 마치고 내려간 식당에는 이미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짙은 네이비색 홈웨어를 입고 상석에 앉아 있던 수현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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