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은 황후 자리, 뒤늦게 미쳐버린 황제제3화
이 화는 약 2384자. 본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3화 미리 읽기 중 마지막 화입니다. 이어지는 제4화부터는 공식 앱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대전 안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류여진의 얼굴에 있던 미소가 굳어졌다.
내가 이런 상황에서도 감히 황후로서의 위엄을 내세울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류여진은 순식간에 눈시울을 붉히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폐하께서 이런 궁중 예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희가 초원에 있을 때는…”
“이곳은 대주의 황궁이지 초원이 아니다.”
나는 찻잔을 탁자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여봐라! 류 낭자에게 예법을 가르쳐 주거라!”
두 명의 늙은 몸종이 즉시 다가와 류여진의 어깨를 짓누르려 했다.
그때 문밖에서 우렁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멈추거라!”
소인혁이 눈부신 황금빛 용포 자락을 휘날리며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는데, 온몸에서 서슬 퍼런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늙은 몸종들을 거칠게 밀쳐 내고 휘청거리는 류여진을 부축하더니, 실망과 혐오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심소희, 어쩌다 이리도 매정해진 것이냐? 여진이는 그저 순진하고 꾸밈이 없어서 궁중의 복잡한 속사정을 모를 뿐인데, 기어코 여진이를 죽여야만 속이 시원하겠느냐?”
류여진을 감싸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은 차갑게 식어내렸다.
그가 예전에 부패한 관리의 일가를 몰살하며 관료들을 바로잡으려 했을 때, 밤새 잠도 이루지 못한 채 그의 곁을 지키며 그를 대신해 온갖 욕을 먹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때는 나더러 큰 뜻을 안다며 치켜세우더니, 이제는 궁의 법도를 지키는 것이 매정한 짓이 되었단 말인가?
소인혁은 류여진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그 자리에서 명을 내렸다.
나를 한 달 동안 청우헌에 근신시키고, 황후의 인장인 봉인마저 거두어 류여진에게 임시로 맡겨 관리하게 했다.
아무런 지위도 없는 여인이 황후의 인장을 맡다니, 이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없을 터였다.
조정의 어사들이 올린 탄핵 상소가 끊임없이 올라왔지만, 소인혁은 모두 무시했다.
그는 조정에서 심씨 가문이 거느린 군대의 공이 너무 커 황제를 위협할 정도라고 질책하며, 어사들이 내 아버지의 사주를 받아 황제를 핍박하려는 것이라고 은근히 몰아갔다.
아버지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고, 병권 일부를 내놓았다.
나는 설아가 울먹이며 전하는 바깥소식을 들으며, 손에 쥐고 있던 원앙 무늬 자수를 가위로 갈기갈기 잘라버렸다.
그 한 달 동안 후궁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렸다.
류여진은 궁중의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 태비들이 불경을 읽는 소리가 시끄럽다며 그들에게 주는 땔감과 소박한 채식마저 줄여버렸다.
성대한 꽃구경 연회를 열겠다며, 원래 강둑을 보수하는 데 쓰려고 마련해 둔 돈까지 멋대로 가져다 썼다.
궁녀와 내시들은 화가 나도 감히 말하지 못했고, 후궁 전체가 온통 어수선하고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차갑게 지켜보기만 했다.
근신이 풀리던 날은 마침 추석을 맞아 가족 연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소인혁은 황제와 황후의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나의 근신을 풀어주고, 저녁 연회에 참석하게 했다.
연회에서 류여진은 소인혁의 오른쪽에 앉았는데, 그 자리는 나 다음으로 높은 자리였다.
그녀는 오늘은 한결 차분하게 연분홍빛 궁중 예복을 입어 유난히 가녀려 보였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류여진이 제비집 죽 한 그릇을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언니, 며칠 동안 제가 궁중의 일을 대신 맡아보니 언니가 평소에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이제야 알겠습니다. 이건 폐하께서 특별히 사람을 보내 영남에서 가져오게 하신 최상급 제비집인데, 저도 아까워서 못 먹고 언니께서 몸보신하시라고 일부러 남겨뒀습니다.”
그녀는 아무런 악의도 없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빛에는 서늘한 기색이 감돌았다.
나는 그 죽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나는 장군 집안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군의관을 따라다니며 약초를 구별하는 법을 배웠다.
계화청의 짙은 향으로 냄새를 덮었으나, 나는 희미하게 풍기는 쓴 살구씨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게다가 피부에 붉은 발진을 일으키고 심하면 호흡 곤란까지 일으키는 옻나무 가루도 섞여 있었다.
류여진은 나를 사람들 앞에서 망신시키는 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빼앗으려는 것이었다.
“류 낭자, 마음은 고맙구나.”
나는 받지 않고 덤덤히 말했다.
“허나 본궁은 요즘 속이 좋지 않아 몸에 좋은 음식도 많이 먹지 못한다.”
“언니, 저를 용서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류여진은 눈시울을 붉히더니, 죽 그릇을 든 채 무릎을 꿇으려 했다.
“언니께서 마시지 않으신다면, 아직도 저를 원망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녀는 말하며 무릎을 꿇는 척 몸을 갑자기 앞으로 기울였다.
하지만 나는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기울이는 찰나, 나는 소매 속에 감춰둔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고, 은침 하나가 빠르게 날아가 그녀의 손목 마비혈을 찔렀다.
“아악!”
그 순간 류여진의 손이 움찔하더니, 뜨거운 제비집 죽이 담긴 그릇이 그녀도, 나도 아닌, 마침 그녀를 부축하려 다가오던 소인혁에게 그대로 쏟아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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