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은 황후 자리, 뒤늦게 미쳐버린 황제제1화
이 화는 약 2323자. 본 사이트에서는 제1~3화를 미리 읽을 수 있습니다.
후궁을 맡아 다스린 지 3년째 되던 해, 황제의 소꿉친구이자 아버지를 따라 변방으로 유배를 떠났던 류여진이 돌아왔다.
그녀는 문무백관이 보는 앞에서 금란전(金鑾殿)에 들이닥쳐 풀로 만든 반지 하나를 소인혁에게 건넸다.
“이건 제가 초원에서 엮은 것입니다. 폐하, 그때 하셨던 약조를 아직 기억하십니까?”
용상에 꼿꼿이 앉아 있던 소인혁은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고, 눈에는 그녀를 향한 애틋한 미련이 가득했다.
류여진은 오만하게 내 앞으로 걸어와 내 봉황 무늬 비녀를 뽑아 자신의 머리에 꽂았다.
“이 황후 자리는 원래 제 것이었습니다. 이제 주인이 돌아왔으니, 언니는 떠나셔도 됩니다.”
3년 전 소인혁은 류씨 가문을 위해 선처를 구하고자 태묘 앞에서 사흘 밤낮을 무릎 꿇고 빌었다.
나 역시 궁금했다.
지금의 냉정한 황제 소인혁이 과연 류여진의 요구대로 나를 황후의 자리에서 폐위할 것인지.
* * *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은 채, 아무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류여진은 새하얀 옷을 입고, 손에는 삐뚤빼뚤하게 엮은 풀반지 하나를 들고 있었다.
“오라버니, 어릴 적 오라버니께서 말씀하셨잖습니까. 제가 이걸 약조의 증표로 가지고 있으면, 제가 무엇을 원하든 다 들어주겠다고요.”
그녀는 애교 섞인 어조로 말했다.
“이제 제가 돌아왔으니 약조를 지켜주십시오.”
나는 비녀가 뽑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소인혁을 바라보았다. 평소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던 소인혁은 지금 용상 손잡이를 꽉 쥔 손등에 핏대가 불거져 있었다.
그는 떨고 있었다.
소인혁은 한 걸음씩 아래로 내려와, 그 볼품없는 풀반지를 소중하게 받아 들고 왼손 엄지에 끼웠다.
“기억하고 있다.”
그의 낮고 무거운 한마디에 내 마음은 싸늘하게 식었다.
류여진은 울음을 그치고 활짝 웃더니, 의기양양하게 소인혁의 어깨너머로 나를 바라보았고, 눈빛에는 도발과 경멸이 가득했다.
그 눈빛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보십시오, 언니께서 3년 동안 지킨들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지경이었고, 그 통증 덕분에 나는 마지막 남은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3년 전, 소인혁이 황위를 두고 가장 치열하게 다투던 그날 밤, 내 아버지와 오라버니가 심씨 가문의 군대를 이끌고 목숨을 걸고 길을 뚫어 그를 궁으로 호위했다.
그날 밤 반란군이 쏜 독화살이 그의 등을 향해 날아왔고, 내가 몸을 던져 대신 화살을 맞았다.
독이 골수까지 스며들어 뼈를 깎아 독을 제거하는 치료를 받는 고통에 사흘 밤낮을 의식 없이 누워 있었고, 지금도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어깨가 쑤셔 붓을 쥔 손이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때 류여진은 아버지가 군량과 군비를 횡령해 변방으로 유배되는 마차 안에 숨어 있었다.
소인혁이 비밀리에 호위무사를 파견해 류여진을 지키게 하고, 그녀가 다칠까 봐 전전긍긍한 탓에 그녀는 험한 꼴 한번 겪지 않았다고 들었다.
“폐하.”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류 낭자는 법도에 따라 대리시(大理寺)에서 죄인의 가족인지 신분을 확인한 뒤 따로 처소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만하거라!”
소인혁이 홱 돌아보았고, 다정했던 그의 눈빛은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했다.
류여진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그의 품에 기대며 말했다.
“오라버니, 괜찮습니다. 변방의 혹독한 추위도 견뎌냈는데, 고작 대리시가 뭐가 무섭겠습니까?”
소인혁은 안쓰러운 듯 그녀의 두 손을 끌어당겨 살피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내게 명을 내렸다.
“황후, 후궁은 나랏일에 관여하지 말거라.”
“봉란궁(鳳鸞宮)은 볕이 잘 들고 난방도 가장 잘 되니, 봉란궁을 비워 여진이에게 내어주도록 하거라.”
대전 안에서 순간 여기저기서 놀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봉란궁은 황후가 머무는 처소인데 이름도 지위도 없는 죄인의 딸에게 내주라니?’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봉란궁은 선대부터 정해진 법도에 따라 황후가 아니면 머물 수 없는 곳입니다.”
“폐하께서 이러시면 황실의 위엄과 신첩의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
“법도라고?”
소인혁이 비웃으며 오만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짐이 곧 법도다! 이 나라는 짐이 직접 세운 것이니, 네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이 아니다.”
류여진이 때마침 소인혁의 품에 기대며 가냘프게 기침을 했다.
“오라버니, 저 때문에 언니와 다투지 마십시오.”
“저는 추위 따위 두렵지 않으니 장작 창고라도 내어주시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저 오라버니 곁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있을 수 있다면…”
소인혁은 그 말을 듣고 더욱 가슴 아파하며, 나를 혐오감이 가득한 눈길로 쏘아보았다.
“여진이는 변방에서 3년 동안 모래바람을 맞으며 고생했다. 이는 짐이 빚진 것이다.”
“한마디라도 더 거역한다면, 황명을 어긴 죄로 다스릴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지난 3년 동안 흘린 피와 눈물이 그저 웃음거리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세로쓰기 표시 중: 본문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스크롤합니다(← → 키로도 이동할 수 있습니다)